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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국민 동원 강제 노동이?

해마다 이맘때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하던 일을 내려놓고 목화밭으로 가 목화를 땁니다. 해고나 퇴학의 위협, 나아가 물리적인 폭력에 시달리며 끌려나가다시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준봉건제도와 다름없는 강제 동원의 행태가 여전한 가운데,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오는 해외 원조가 이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일까요?

유니세프와 세계은행은 우즈베키스탄 정부를 대신해 농촌 지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한 해외 원조 단체에 5000만 달러 규모의 교육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이 신청서에는 학생들이 정부에 동원되어 목화를 따느라 1년 중 2개월 간은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빠져있습니다. 그 어떤 지원보다도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저 매일매일 학교에 나가는 것인데도 말이죠. 우즈베키스탄에서 오래 활동한 한 활동가는 유니세프가 다른 UN기구나 NGO들처럼 우즈베키스탄에서 쫒겨날까봐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아동 강제 노동에 반대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잊은 것 같다고 비난합니다. 해외 원조가 목화밭 강제 동원이라는 인권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지난 9월 우즈베키스탄의 관개시설 현대화 비용으로 2억2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는데, 인권 운동가들은 이것이 강제 노동의 원흉인 목화 재배 산업을 위한 지원이라고 주장합니다.

목화밭 강제 동원의 역사는 소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련 붕괴 이후 농지는 이론적으로 사유화되었지만, 여전히 지방 정부가 재배 목표량을 정해주고 수확량 전체를 형편없는 가격에 사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들인 목화를 세계 시장에 시가대로 내다 파는 것이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중요한 외화벌이 창구입니다. 농가에서 할당받은 재배량을 맞추지 못하면 농지를 빼앗기게 되는데 일손을 고용할 돈은 없으니 정부가 의사, 간호사를 포함한 공무원과 학생들을 끌어다가 일을 시키는 것이죠.

우즈베키스탄은 올해도 미국 국무부가 발표하는 세계 인신매매와 강제 노동 순위에서 최하위권에 위치하고 있고, 전 세계 130여 의류 업체가 우즈베키스탄산 목화에 대한 불매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목화의 83%를 수입하는 중국과 방글라데시는 이 움직임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올해는 오랜 협상 끝에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세계노동기구의 모니터링을 허용했지만,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이 사안에 접근했다가 체포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마당에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난 달, 목화 농장을 취재하던 한 독립 언론인은 본 적도 없는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12일 간 외부와 연락도 하지 못한 채 구금당했습니다. 취재를 계속했다면 목화밭에서 일하다가 목화 더미에 깔려 숨진 여섯 살 소년 아미르벡 라크마토프의 이야기도 기사로 쓸 수 있었겠지요.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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