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죄로 1년 금고형을 받은 이탈리아의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의원직을 내놓지 않겠다며 연정을 위협해, 이탈리아에는 또 다시 정치적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위기는 곧바로 경제에 타격을 입힙니다. 임기 중 두드러지는 성과라고는 독창적인 불륜 스캔들 뿐이었던 전 총리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라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는 아직도 이와 같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베를루스코니의 정치적 생명은 오래 전에 끝났어야 말이 되지만, 아직도 이탈리아 국민 4명 중 1명은 그에게 표를 줄 의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끊임없는 스캔들, 공약 폐기, 마이너스 성장률, 개혁 지체라는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정도의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부는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 왕국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인기가 오로지 언론에 의한 여론 조작 때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너무 단순한 풀이입니다. 언론을 통한 영향력이 없었던 야당 시절부터 쭉 인기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정답은 바로 세금입니다. 베를루스코니의 절대적인 지지기반은 이탈리아의 정치와 법 체계, 특히 세법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들의 비관을 적대심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지지층을 다졌죠. 지지층은 국내외의 권위에 도전하는 뻔뻔한 포퓰리스트, 희극 오페라에 등장하는 불량배같은 이미지에 끌리기 때문에, 탈세 사실조차 오히려 그의 매력을 고조시켰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탈리아의 세법은 복잡하고, 엉망입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세율이 훨씬 높은데 반해, 탈세자들에 대한 단속은 느슨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탈리아 사회에는 불평등에 대한 냉소주의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2024년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대중들의 반응이 싸늘했을 정도입니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돈 벌 기회가 될 것이고, 연줄 있는 회사들만 계약을 따내리라 예상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무조건 최소한으로 하겠다는 베를루스코니식 포퓰리즘이 먹혀들어가는 것입니다. 지난 2월 총선 때도 베를루스코니가 당과 협의도 안 된 세금 인하 정책을 들고 나오자 인터넷은 이 정책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됐고, 결과는 불편한 대연정의 성립이었죠.
베를루스코니의 정치적 생명은 일견 라이벌들의 행동에 달려있습니다. 세금 제도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이해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베를루스코니의 커리어를 연장시켜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세금 인하와 장기적인 경제 개혁 정책, 여기에 대중의 불만을 파고드는 “캐릭터”를 지닌 대항마가 나타난다면, 베를루스코니를 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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