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20대)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나이가 들어서(40대) 보수적이지 않은 사람은 뇌가 없는 사람이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 식상해진 처칠의 저 격언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으로 변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지난주 영국 사고방식 조사(British Social Attitude Survey)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동성애나 여성의 사회활동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 나이 든 사람들이 부정적이고 보수적인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분명 많긴 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를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시각은 훨씬 관대해졌는데, 30년 전에는 응답자의 50%가 동성애는 무조건 나쁘다고 답했지만 이제는 그 비율이 22%로 줄었습니다. 특히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46%가 동성애는 나쁘다고 답했고, 1980년대 생들 가운데에는 18%만이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연령대별 시각 차이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보수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연구자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60대, 70대 노년층의 의견이 언제나 비슷한 게 아니라, 각 세대별로 젊은 시절 정치적, 사회적 시각이 형성된 뒤로는 이 의견이 대개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노년층들이 젊었을 때에는 사회적으로 동성애 자체가 굉장히 금기시되던 때였습니다. 그 때 형성된 신념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온 거죠. 현재 동성애나 성적 소수자 문제에 보다 개방적이고 관대한 사회에서 의식을 형성한 20대들은 나이가 들면서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죽을 때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확률이 높습니다. 한 세대가 공유했던 사고방식은 대개 그 세대와 평생을 함께 하고, 세대의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2차대전을 겪으면서 유럽 국가들끼리 전쟁을 벌이는 것만은 절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고히 한 당시 젊은 세대들이 유럽 통합을 지지했던 사실, 1960년대 사회적으로 자유방임의 분위기가 팽배하고 성 관념에 개방적이던 시절 20대를 보낸 지금의 70대들이 이전의 어떤 세대보다도 노년이 되어서도 많은 이들이 성병을 앓고 있는 사실 등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핵실험 반대 운동,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라크 전쟁 등 세계 질서는 물론 영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은 언제나 특히 당시 젊은 이들의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맞닥뜨리는 상황에 따라 관심사나 사고방식이 변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정부의 육아 지원책이나 교육정책에 자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직장에서 은퇴를 앞둔 시점이 되면 연금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이가 들면서 반드시 정해진 방향으로 사고방식이 변하는 거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육아 지원책이나 연금 정책에 대한 반응은 나이보다는 경제력에 따라 갈린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나이가 든다고 반드시 보수적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기성세대가 내리는 각종 결정들이 사회적 현상을 만들고, 이는 어린 세대의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사회적인 결정을 내리고 지혜를 모을 때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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