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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에게도 캐릭터가 필요해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이면서 신을 찾고 선한 뜻을 가진다면, 내가 어떻게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근 발언은 속세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계산된 수로 읽힐 수 있습니다. 동석했던 기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수사적 질문이었고, 뒤이어 가톨릭 교회가 동성애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는 기사가 봇물처럼 쏟아졌죠.

가톨릭 교회가 중요한 교리 해석의 변화를 이렇게 즉석에서 기자들에게 밝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중대 발표를 처리하는 정식 절차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는 지난 수 개월 간 언론을 장식했던 “게이 로비” 스캔들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게이 로비로 인해 사생활이 지저분한 사제를 중요한 자리에 앉혔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런 의혹에 대해 교황은 “탐욕스러운 자들”이 로비를 하는 사례가 많기는 하지만 자신이 게이 로비를 직접 경험한 바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보도된 임명건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 해당 사제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냉소적인 시각을 갖고 보면, 이번 사건은 헤드라인에 걸기 딱 좋은 동성애 관련 유화 발언으로 당혹스러운 루머를 중화시키려는 교묘한 전략처럼 보입니다.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은 많은 속세인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여성 사제에 관해서도 교황은 여성이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동시에 여성의 역할이 복사(服事)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해 전임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 바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발언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외된 약자를 돌볼 줄 아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맨발의 교황”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존중받을 수 있는, “호감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핵심 교리에 타협의 여지가 없는 종교의 수장으로서, 개인적인 스타일은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우리가 위선과 거만함을 금방 알아보는 것 처럼, 진정성과 겸손함도 어떻게든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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