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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비만과의 전쟁”

세계에서 탄산음료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 멕시코.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가장 성행하는 나라 페루. 과일을 비롯한 농수산물의 대표적인 수출국인데도 국민들은 먹을거리의 절반 이상을 가공식품으로 때우는 나라 칠레. 나라마다 사정은 조금씩 달라도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국들의 허리 치수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건 더이상 굶주림이 아닙니다. 비만입니다. 비만 때문에 생기는 고혈압, 당뇨, 암 등 성인병으로 인한 사망자도 늘어나고, 그만큼 의료비 지출도 높아졌습니다. 멕시코에서 당뇨로 숨지는 사람은 연간 7만 명. 2008년 670억 페소(5조 8천억 원)였던 비만으로 인한 의료비용은 2017년이면 두 배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브라질, 칠레,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멕시코, 페루, 우루과이 등 7개 나라 정부들은 학교 급식에서 가능한 한 가공식품을 제외하고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탄산음료 대신) 물을 마시도록 장려하는 규제안을 도입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또 높은 범죄율, 심각한 오염 탓에 밖에서 뛰어놀 곳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을 장려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정부의 노력은 대개 식음료 기업들의 막강한 로비에 직면합니다. 헌법상의 자유를 운운하며 소송을 불사한 기업들은 2010년 브라질에서 규제를 무력화시켰고, 지난 5월 학교에서 정크 푸드 광고와 판매를 금지시킨 페루의 법도 다시 휴지조각으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 급식과 매점 메뉴에 있는 주스에 포함된 당, 지방 함유량 규제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던 멕시코 기업들은 의회가 탄산음료에 20%의 높은 소비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 알려지자 헛수고일 뿐이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세금을 통해 가격에 미치는 영향 정도로는 이미 고착화된 식습관을 바꾸기 어려우니, 차라리 운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쪽이 낫다는 주장이죠. 특히 멕시코의 경우 식음료 대기업들이 쌓아놓은 자본과 구축해둔 판매망이 워낙 탄탄해 아무리 건강한 먹을 거리를 모토로 내세워봤자 지역 중소기업들이 상대할 수 없습니다. 영아기부터 깨끗한 물 대신 탄산음료를 마실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빈곤층에게 건강은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건 정부의 몫이지만, 네슬레(Nestlé)를 “건강식품 기업”으로 인증해 네슬레 제품으로 만든 푸딩으로 굶주림을 타개하자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아직 정부는 규제 대상과 지원 대상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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