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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정부-FARC 협상, 평화의 정착이 정의 구현보다 더 시급한 때

평화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콜롬비아에서는 반 세기 넘게 정부군과 무장게릴라 콜롬비아 혁명군 FARC (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 사이의 국지적인 내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평화협상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관련 NP 기사보기)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지난주 협상에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양측이 협의하기로 한 다섯 가지 사안 중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오랫동안 줄다리기를 벌여 온 농지개혁안에 합의한 겁니다. 공정한 토지분배 문제는 1960년대 FARC가 결성된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FARC의 정치참여 문제와 이들의 테러로 인한 희생자에 대한 피해보상 문제, FARC 지도자들의 처벌과 사면 수위 문제 등 합의해야 할 사안이 많이 남아있지만, 양측이 적어도 이번 협상을 세력을 규합해 다시 무장투쟁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시간 벌기용으로 악용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협상의 걸림돌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우선 지난 우리베(Álvaro Uribe) 정권 하에서 미국의 지원을 업고 진행한 반군 토벌작전을 계속해야 한다는 우파 내 세력들이 있습니다. 정부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FARC 지도자 여러 명이 사살됐고, 4만여 명이던 게릴라 대원의 숫자는 절반 이상 줄어든 1만 8천 명으로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세를 줄이는 것보다 흩어져 있는 게릴라들을 완전히 토벌하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일뿐더러 FARC는 오랜 세월 정부군과 끈질기게 맞서 왔기에 완전한 토벌은 끝없는 피의 보복을 부를 뿐입니다. 협상을 비판하는 다른 이들은 산토스(Juan Manuel Santos) 대통령이 내년 3월 총선, 5월 대선을 앞두고 FARC와의 협상 성과를 재선의 도구로 삼으려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는 내내 선거정국일 것이므로, 정부와 FARC가 올해 말까지 협상시한을 정해놓은 건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이 두 가지 걸림돌을 극복한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문제가 평화와 정의 사이의 딜레마입니다. 정부군과 반군은 지난 50년간 잔혹한 테러와 보복테러를 계속해 왔습니다. 특히 FARC는 대규모 마약거래와 함께 반인권의 상징인 대인지뢰를 사용하거나 소년병을 징용했다는 비난을 받아왔고, 적지 않은 콜롬비아인들이 FARC의 지도자들은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몇몇 국제인권단체들은 FARC 지도자들을 국제사법재판소 같은 곳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처벌을 강조할 경우에는 FARC가 평화협상 자체를 깨버릴 수도 있는 우려가 있는 거죠. 산토스 대통령은 정치력을 발휘해 정부와 반군의 협정은 전부 다 국민투표 또는 그에 준하는 국민의 비준을 받아야 최종적인 효력을 갖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평화협상은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해줄 겁니다. 협상이 타결되면 경제성장률이 1.5%P 오를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치열한 전투 탓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난민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엄청난 차이입니다. 폭력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지금은 합의되지 않은 정의를 내세우기보다는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힘써야 할 때입니다.(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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