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영산 후지산은 수도 도쿄에서 10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맑은 날 시야가 확보되는 날이면 도쿄 어디서든 눈 덮인 후지산 정상부를 볼 수 있죠.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 후지미자카(富士見坂, 후지산이 보이는 언덕 또는 비탈길이라는 뜻의 지명)라는 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 전체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지상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한 진짜 후지미자카는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도시가 사실상 초토화됐을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고개만 돌리면 늘 그곳에 있던 후지산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쿄의 마지막 남은 후지미자카도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았습니다. 일본의 부동산 회사가 근처에 45층 높이의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겁니다. 전통과 유산을 지키자는 도쿄 시 정부와 시민단체는 물론 유네스코까지 가세해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11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내년 초에는 지상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는 곳이 사라질 예정입니다. 한 지역 주민은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후지미자카가 사라지는 건 아쉬운 일이죠. 하지만 634m 높이의 스카이트리 타워 전망대에서 보면 후지산이 훨씬 더 잘 보이긴 하더라고요.”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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