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12월 13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헌법에 어긋나는 계엄령을 공표하고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관위를, 군경을 앞세워 장악하려 한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 표결 시도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벌어지는 여야 당 지도부와 각 정치인, 정부 각료, 계엄령에 관여한 핵심 인물들의 증언, 여러 셈법에 관한 뉴스들은 국내 언론에서 자세히 전하고 있는 만큼 뉴욕타임스 칼럼이나 기사를 통해 더 보탤 말이 없습니다.
오늘은 몇몇 정치인과 일부 언론에서 미국의 사례를 인용해 “민주주의 역사가 훨씬 긴 미국에서도 몇 번 안 일어났던 탄핵이 너무 자주 벌어지는 건 문제”라는 주장의 타당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년 넘은 미국 역사에서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한 사례는 분명 몇 번 없지만, 단지 횟수만 놓고 비교할 문제는 아닙니다. 두 나라 탄핵 제도의 취지와 각각의 정치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비교해 봐야 합니다.
미국: 하원이 탄핵소추, 상원이 탄핵심판
미국 대통령 탄핵의 새 역사를 쓴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에 두 차례 탄핵심판을 받은 대통령이란 기록을 가지고 있죠. 2021년 1월 6일 일어난 의사당 테러를 방조하고 부추긴 혐의에 대한 탄핵심판이 가장 최근의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살펴봤듯 계엄령을 내리자는 일부 극단적인 참모의 제안을 뿌리친 덕에 트럼프는 법적 처벌을 피했지만, 대통령 자리에 한시도 더 앉아 있을 자격이 없다는 하원의 의결까지 막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탄핵 제도를 먼저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미국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은 의회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탄핵을 소추하는 권한은 하원에만 있고, 하원이 의결한 뒤 탄핵심판을 하는 권한은 상원에 있습니다. 하원의 과반이 찬성하면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상원의 2/3(현재 상원 의석이 100석이므로, 67명 이상)가 탄핵 사유가 정당하다고 판결하면 대통령은 곧바로 탄핵당합니다.
미국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탄핵 요건은 반역(Treason), 뇌물 수수(Bribery), 그리고 기타 중범죄 또는 경범죄(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 세 가지입니다. 관습법 체계를 따르는 나라답게 미국 헌법은 기타 중범죄나 경범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연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반역이나 뇌물 수수 혐의로 탄핵당한 대통령은 없습니다. 의회는 지금껏 매번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 혐의를 이유로 대통령직을 더 수행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을 때 탄핵에 나섰습니다. 역사학자와 법학자들은 대통령이 공공의 신뢰를 심각하게 잃으면 탄핵당할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지금껏 미국 대통령 중에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상원에서 탄핵심판을 받은 대통령은 앤드루 존슨,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까지 총 3명입니다. 트럼프는 두 차례 탄핵심판을 받았으므로, 미국 역사상 상원에서 탄핵심판은 총 4번 있었는데, 상원의원 2/3 이상이 탄핵 사유가 정당하다고 판단해 대통령이 실제로 탄핵당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때 부통령이던 앤드루 존슨은 곧바로 대통령 자리를 승계했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재건 시기 구체적인 노선, 정책을 두고 의회가 사사건건 충돌하던 존슨 대통령은 1868년 전쟁부 장관을 상원 동의 없이 해임합니다. 의회가 대통령이 함부로 주요 부처 장관을 해임하지 못하도록 임기를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켰었는데, 이를 어긴 겁니다. (존슨 대통령은 앞서 이 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의원 2/3 이상이 찬성해 거부권을 무력화시키고 법이 제정됐습니다.) 탄핵소추안은 법이 보장한 임기를 무시하고 장관을 해임한 점과 의회를 노골적으로 폄하하고 비난한 점을 탄핵 사유로 들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상원의 탄핵심판에서 한 표 차이로 가까스로 탄핵을 면했고, 1868년 재선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패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탄핵심판을 받은 건 빌 클린턴 대통령이었습니다. 백악관에 인턴으로 일하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에 관해 위증을 교사했고, 특별검사의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점이 하원이 꼽은 탄핵 사유였습니다. 상원의원 가운데 45명은 위증 교사에 대해, 50명은 수사 방해에 대해 탄핵 사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정족수의 2/3에는 미치지 못해 클린턴 대통령은 업무에 복귀했고, 임기를 마쳤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탄핵심판을 받은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습니다. 먼저 임기 3년 차에 나온 내부 고발이 도화선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에서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인 바이든의 약점을 캐는 데 협조해야 우크라이나를 향한 군사 지원을 승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의회가 승인한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국가 권력을 남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데 쓴 건 범죄라고 하원은 주장했습니다. 대통령의 외교권을 정치적인 거래 수단으로 썼다는(quid pro quo) 지적도 이때 나왔습니다. 하원에선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지만, 공화당이 53석으로 다수당이던 상원에서 부결됐습니다.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부추긴 내란 방조 혐의에 대한 탄핵심판은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해 백악관을 떠난 뒤 표결에 부쳐졌습니다. 공화당 의원 7명이 탄핵 사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지만, 여전히 상원 2/3에는 10표가 모자랐습니다.
관습법 체계를 따르는 미국은 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지닌 사법부에 강력한 힘이 있지만,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견제하고 탄핵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입법부에만 있습니다. 제헌 회의 때부터 견제 장치를 이렇게 만들어둔 건데, 하원이 단순 과반으로 탄핵을 제기할 수 있게 했고, 동시에 상원의 2/3라는 넘기 어려운 벽을 세워 탄핵이 남발되지 않게 해뒀습니다. 200년 넘는 역사에서 탄핵심판이 겨우 네 번밖에 없었던 걸 보면 건국의 아버지들이 의도한 바가 통했다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그 보기 어렵던 탄핵심판을 임기 중에 두 번이나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앞둔 점은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의회와 행정부가 제 기능을 한다면 탄핵 정국이 오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죠.
사실 탄핵심판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탄핵당할 것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한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입니다. 실제로 하원은 당시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고 특별검사의 수사를 집요하게 방해한 닉슨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탄핵소추안 초안을 썼습니다. 공화당 상원의원 중에도 하원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 심판에서 탄핵에 찬성하겠다고 밝힌 사람들이 나오자, 닉슨 대통령은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왔습니다. 부통령이던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았고, 이미 정치적인 처벌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 법적 처벌까지 받는 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닉슨 대통령을 사면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제에도 적용할 수 있을) 탄핵 제도의 취지를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사람입니다. 헌법을 지키고 헌법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마찬가지로 선거로 구성된 의회에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긴 했지만, 이를 정치적 무기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실제 통과는 까다롭게 해뒀습니다. 탄핵까지 가지 않게 정치적인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취지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의회의 다수당이 무리해서 탄핵을 추진하다가는 역풍을 맞는 경우가 더러 생기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한국: 국회가 탄핵소추, 헌재가 탄핵심판
대한민국 헌법 제65조는 탄핵에 관한 법령을 담고 있습니다. 탄핵소추권은 국회에 있는데,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의 발의와 재적 의원 2/3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합니다. 현재 국회의원이 300명이므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려면 200표가 필요한 건 이제 거의 상식이 됐습니다.
우리나라 탄핵 제도가 미국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 중 하나는 탄핵심판이 사법부(헌재)의 법리적 검토에 따른 판결이라는 점입니다. 탄핵 사유만 보면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라고 폭넓게 규정돼 있으므로, 탄핵소추까지는 정치적인 과정으로 두고, 이후 탄핵심판에 법리적 검토를 추가해 탄핵이 정치적으로 남용되지 않게 장치를 마련해 둔 겁니다. 이는 탄핵심판도 입법부인 상원에 정치적으로 판결하도록 맡겨둔 미국의 제도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물론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은 대통령이 임명, 3명은 대법원장이 임명, 3명은 국회가 추천한 사람을 임명하고, 임기도 6년으로 제한돼 있으므로, 헌재의 구성은 미국 대법원과는 다릅니다.
어쨌든 탄핵 제도를 두되, 탄핵이 남용되기보다는 정치적인 해결책을 찾는 쪽을 더 권장한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제도도 비슷한 취지로 설계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무리하게 탄핵을 추진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아 이어진 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한 사례도 있죠.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 직무를 더는 수행하기 어렵다는 국회의 판단과 여론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역풍이 없거나 미미했고) 헌법재판소도 법리적인 검토 끝에 탄핵을 결정하면서 탄핵이 최종 확정됐습니다.
어떤 제도의 효용을 판단할 때 그 제도가 많이 쓰였느냐 안 쓰였느냐를 단순히 비교, 측정하면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 쉽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제도를 비교할 때는 맥락을 잘 따져서 공평하게 비교해야 하죠. 탄핵 제도의 경우 탄핵 사유, 판결 요건이 다르면 무엇이 다른지, 또 탄핵 제도를 둔 취지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선거 주기와 정치인의 책임을 규정하는 법 체계, 규범은 무엇이 다른지를 다 따져봐야 합니다.
미국의 제도는 대통령 탄핵을 발의부터 심판까지 전부 의회의 정치 과정에 맡겨 놓았습니다. 의회에 대통령을 마음만 먹으면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기보다는 역설적으로 탄핵 제도를 굳이 쓰지 않고도 행정부와 잘 협의해 통치할 수 있도록 입법부가 권한을 잘 사용해 달라는 취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250년 가까운 미국 정치사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이 이토록 드물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탄핵이 확실시되자 하야한 닉슨 대통령의 사례도 어떤 의미에선 정치가 작동한 결과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4번밖에 안 되는 탄핵심판 중에 2번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에 있었다는 건 정치적 양극화 차원에서 봐도, 관습에 전혀 구애받지 않다 보니 자꾸 마찰을 일으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을 고려해도 우려스러운 점입니다.
민주화 이후 지금의 헌법을 개정한 지 40년이 채 되지 않은 한국에서 세 번째 탄핵심판이 일어난다면, 미국보다 훨씬 자주 대통령이 탄핵당할 위기에 처하는 건 명백한 사실이 됩니다. 하지만 탄핵심판이 자주 일어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 자꾸 탄핵 정국이 오는 건지 개탄하기 전에 탄핵이 불가피하게 헌정 질서를 흔들어 놓는 자, 즉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지를 당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탄핵 사유가 명확한 경우에는 탄핵이 추진되더라도 역풍이 없을 겁니다. 오히려 역풍을 걱정해야 하는 건 압도적인 다수의 국민 여론을 외면하는 쪽입니다.
탄핵 제도가 없다면 어디까지 폭주할지 모를 대통령을 견제할 장치가 있고, 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해서 천만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내란죄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한다면 역풍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과 여론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정파적인 판결을 내리기엔 여론의 압박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법리적 사실관계가 명확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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