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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이런 ‘최초들’도 함께 겪게 될 것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8월 2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두고 재선에 도전하지 않기로 한 초유의 사태가 가져올 수 있던 혼란을 고려하면, 짧은 시간 내에 러닝메이트를 지명하고, 유권자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다듬어 공약을 발표하고, 유세에 돌입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등 선거캠프를 성공적으로 꾸려 전당대회까지 치러낸 카멀라 해리스의 지난 한 달은 일단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컨벤션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당대회 기간 혹은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에는 그 당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자연히 지지율도 오르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때 오른 지지율이 계속 유지될지 다시 내려갈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전당대회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지율이 다시 내려가는 게 보통입니다. 이번에도 8월은 해리스의 시간이라는 분석처럼 전당대회 앞뒤로 해리스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예상대로 반등하거나 올랐지만, 이 흐름이 선거 때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민주당은 제때 후보를 교체한 덕분에 트럼프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쟁하는 선거 구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 다시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거리까지 다가왔습니다.

해리스가 대통령이 된다면 자연히 함께 탄생할 다양한 “최초”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제시카 베넷은 이러한 “최초”가 가능한 원동력으로 해리스 주변에서 해리스가 돋보이도록 지원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남성들에 주목했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상이 바뀌었는지도 함께 고민해 본 칼럼입니다.

전문 번역: 남성성 뽐낼 필요 없는 ‘진짜 사나이’의 등장? 이것은 “한 발짝 진보”

 

오늘은 칼럼에 언급한 해리스의 남편 더그 엠호프와 민주당 부통령 후보 팀 월즈, 그리고 미식축구 선수 트래비스 켈시가 주목받는 이유, 그리고 이들의 행동이 공화당과 트럼프 캠프에서 드러나는 “전통적인 남성상”과 어떻게 대비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해리스의 부군 엠호프는 미국 최초의 세컨드 젠틀맨이자,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을 꿈꾸는 인물입니다. 250년 가까이 된 미국 헌정사상 여성 부통령은 해리스가 처음이었습니다. 여성이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도 해리스가 최초입니다. 후보를 돕는 배우자가 남성인 상황 자체가 그래서 매우 낯선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남성 대통령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영부인'(令夫人)이란 단어는 남의 아내를 일반적으로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대통령의 부인이라 ‘영(領)부인’으로 부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영(領)부인’은 사전에도 없는 말입니다. 여성 대통령의 남편을 ‘영남편’이라 부르는 건 근거 없는 일이고, 남의 남편을 일반적으로 높여 부르는 말은 부군이니, 영부인의 대칭어는 부군이 맞습니다. 처음이라 입에 붙지 않는 만큼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영어로 읽는 대로 퍼스트 젠틀맨이라 부를지, 부군이라 칭할지, 아니면 다른 칭호를 정할지는 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호칭이 정해질 때까지는 ‘부군’과 영어 호칭을 섞어 쓰도록 하겠습니다.)

엠호프는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에 연단에 올라 짧지만, 인상적인 지지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뿐 아니라 유세 현장에서, 해리스가 부통령 후보가 된 순간부터 늘 배우자의 곁을 지키며 해리스의 “대표 치어리더”를 자처했습니다. 잘 나가던 할리우드의 변호사직을 내려놓고, 정치인 아내의 내조(內助)에 전념해 온 것부터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입니다.

내조라는 말 자체가 “(집안일 하는) 아내가 (바깥일 하는) 남편을 돕는다”는 뜻인데, 해리스와 엠호프 부부의 내조는 더 공적인 바깥일이 될 수밖에 없는 선출직 정치인에 도전하는 아내를 남편이 돕고 있으니,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설명하기 복잡한 커플입니다. 물론 전통적인 관점에서나 그렇지, 성별을 빼놓고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정치에 헌신한 뒤 능력을 인정받아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을 그 배우자가 돕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해리스와 엠호프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해 얘기하려면, 해리스가 결혼을 통해 꾸린 가족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리스가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한 지난 22일은 해리스와 엠호프 부부의 결혼 10주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혼은 카멀라 해리스에겐 첫 번째 결혼이지만, 더그 엠호프는 앞서 한 번 결혼했다 이혼한 적이 있고, 전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자식도 둘이 있습니다. 엠호프의 딸 엘라와 아들 콜에겐 해리스가 새엄마인 셈이죠.

엠호프와 해리스는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흔한 혼합 가족(blended family, 전 결혼에서 자녀와 새로 만난 파트너가 함께 사는 가족)”이라며, 어떻게 꾸린 가족이든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가족이라고 말했습니다. 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사랑으로 이어진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많아진 상황에서 지지자들은 반색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가족의 범주를 확장하는 시도가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불편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도 두 차례 이혼해 현재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세 번째 배우자이므로, 트럼프 지지자들로선 엠호프의 이혼 이력을 비판하기 어렵습니다. 누워서 침 뱉기나 다름없으니까요. 논란은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가 앞서 했던 발언이 다시 조명받으면서 커졌습니다. 밴스는 2021년 상원의원 후보 시절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멀라 해리스나 피트 부티저지, AOC를 보면 모든 게 분명합니다. 민주당의 미래로 불리는 사람들이 죄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도대체 나라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아이를 낳거나 길러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긴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밴스는 ‘자녀가 없어 고양이나 키우며 사는 나이 든 여성’이란 뜻으로,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cat ladies”란 단어를 쓰기도 했습니다. 정치 성향, 지지 정당을 떠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이 세상의 가족을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으로 나눠버린 편협한 세계관에 실망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해리스를 향해 ‘사랑꾼의 면모’를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는 엠호프가 더 돋보일 뿐이었습니다.

 

J.D. 밴스와 직접 맞붙는 팀 월즈도 “전형적이면서도 새로운 아빠, 남편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습니다. 월즈가 보여주는 “남성성”의 핵심은 자신의 물리적인 힘이나 권력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것보다 남을 돕고 챙겨주는 데 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에 얘기하는 거 좋아하고, 좋은 의미로 오지랖도 넓어서 남의 일인데도 자기 일처럼 나서서 진심으로 도와주려 하는 게 특징이죠.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이자 미식축구 코치로 일하면서 육군 주 방위군(우리나라 현역 군인과 예비군의 중간 정도)으로 24년을 복무하더니, 정치인이 되고 나서는 전역 군인 건강 돌보기 위해 의료보험 혜택 확대하고, 주지사가 돼서 아이들에게 무상급식 제공하고, 여학생을 비롯한 청소년, 젊은 여성에게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런 월즈에게 “남성성”이란 표현을 붙이는 게 전통적인 관점에선 마찬가지로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돌보고 돕는 일이,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주거나 함께 비를 맞아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공감의 힘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강력히 어필할 수 있는지를 이번 전당대회와 최근 유세를 통해 월즈는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앞세우기보다 반려자의 성취에 더 열광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 유명인은 또 있습니다. 프로 미식축구(NFL)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타이트 엔드 트래비스 켈시입니다. 미식축구는 미국에서 압도적으로 인기가 높은 스포츠입니다. NFL의 스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인이죠.

하지만 켈시에게는 선수로서의 수식어보다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대중음악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남자친구”라는 수식어가 먼저 붙곤 합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마뜩잖을 수도 있지만, 켈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 이미 ‘남자답지 못하게 질질 짜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이는 등 감정을 억지로 숨기려 하지 않은 켈시에게 ‘사나이 콤플렉스’는 확실히 없어 보입니다.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을 수 있게 그림자에 머물며 숨어있는 역할도 줄곧 잘해왔습니다.

칼럼에서 제시 베넷은 ‘운동선수 보험(Jock Insurance)’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특히 월즈와 켈시가 전형적인 사내들이 했을 미식축구에서 이미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남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았다’는 분석을 전합니다. 하지만 운동선수 보험이란 용어를 고안한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의 미국은 또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더욱 다양해졌고, 특히 남의 인생을 딱 잘라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 평가하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공직에 나서는 이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이 (성별을 불문하고) 공감 능력일지 모릅니다.

인류 역사 전체를 논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적어도 현대사에서 정치 권력은 여성보다 남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성별에 따라 권한과 권력이 달리 주어진 경우, 언제나 더 많은 권력과 권한을 누린 건 남성이었습니다. 약자의 아픔과 설움을 본능적으로 더 잘 이해하는 쪽이 아무래도 여성인 이유도 여기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성 최초의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는 시점에 여성 대통령을 보좌하기에 적합한 ‘새로운 남성상’이 주목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자동으로 엠호프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이 됩니다. 팀 월즈는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이 됩니다. 이인자 역할을 잘하는 데 필요한 자질은 나를 잘 드러내는 것보다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일 겁니다. 민주당 전당대회 내내 주요 연사들은 해리스가 여성이라는 점을 굳이 부각하기보다 그가 여타 어느 후보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준비된 후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대통령 앞에 굳이 붙이고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그 세상은 유리천장을 또 한 층 깬 진보한 세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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