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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점점 더 커지는 불평등의 ‘사각지대’가 있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2월 26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해 말 보통 사람들이 체감하는 경기와 거시경제 지표 사이에 드러나는 간극에 관한 을 쓴 뒤로 관련 주제의 글에 더 눈길이 가곤 합니다. 폴 크루그먼 교수가 쓰는 칼럼들은 주로 체감 경기가 결국엔 경제 지표를 따라올 것이라는 예측을 담고 있습니다. 크루그먼 교수와 칼럼니스트 피터 코이의 문답을 정리한 글을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죠.

미국 경제 지표는 대체로 호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체감 경기가 눈에 띄게 좋아졌느냐 물어보면 부정적인 답변이 여전히 많을 겁니다. 특히 대선 경선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선거 정국이 되면서 지지하는 정당, 정치적인 성향이 경제 상황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모습도 보입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에 낙제점을 매길 테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아무래도 좀 더 관대한 편이겠죠.

어쨌든 경제 지표와 체감 경기 사이의 간극은 여전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실마리가 될 만한 글에는 좀 더 관심이 갑니다. 그러다 소설가 아델 왈드먼이 쓴 칼럼을 접했습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 차 대형 마트에서 반년 동안 일한 뒤 느낀 바를 정리한 글입니다.

시간제 근무로 일하는 비정규 계약직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생생히 소개한 이 글은 경제 지표와 체감 경기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명백한 근거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몇십 년 만의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도 그만큼 올랐는데,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은 인상폭이 컸는데 왜 이렇게 다들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글입니다.

전문 번역: 직접 체험한 마트 노동… 노동자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 임금만이 아니다

 

시간제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더 깊은 사각지대에서 이중으로 간과되고 외면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필수 노동’을 우대하지 않아서 문제라는 지적을 많이 받는 미국 사회가 그나마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 때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강력한 봉쇄 조치가 취해졌을 때, 그리고 노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실력을 행사할 때일 겁니다.

사실 지난해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노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노동조합의 쟁의가 주목받은 한 해였습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전형적인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꾸린 조합이고, 미국작가조합에 속한 영화 작가, 방송 작가들은 정규직은 아니지만, 애초에 작가들이 많지 않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단결해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시간제 근무로 일하는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들의 상황은 훨씬 녹록지 않습니다.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말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 보니, 노동조합은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뼈대 있는” 노조의 화려한 부활 못지않게 스타벅스나 아마존 물류창고 노조가 특히 큰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노조가 없다는 건 목소리를 낼 창구가 없다는 겁니다. 개별 노동자가 단체 협상에 나설 때보다 높은 협상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갈수록 원하는 걸 말 못하고 점점 더 불리한 조건에서 일하게 되죠. 결국, 회사가 창출하는 이윤 가운데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렇게 줄어들다 못해 없어지는 덫에 빠지게 됩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풀지 못한 숙제처럼 안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도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없다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닙니다. 임금도 낮고, 해고하기 쉽고, 노조를 조직하기는 어려운 미국 노동 환경은 대체로 노동자보다 기업에 훨씬 우호적인 편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미국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특히 팍팍하고 힘들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의료비가 말도 안 되게 비싸므로, 직장을 통한 의료보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의료보험이 없으면 아파도 치료를 받을 엄두를 낼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대체로 부실한 편이라서 고용을 통한 혜택이 중요한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보통 다양한 혜택에서 배제됩니다. 기업으로서는 비용을 절감하는 ‘효율적인 경영’일지 몰라도 노동자들에게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막히고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그나마 덜 드러났던 이유는 시간제로 일하는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의 비중이 높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업 간의 경쟁이 어느 정도 있어서 더 조건이 좋은 일자리가 생기면 이직하는 사례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었다는 뜻이죠. 그런데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는 대기업들이 잇따라 비정규직 비중을 늘리면서 문제가 커졌습니다. 기업들은 높은 시급과 수당을 앞세워 구인 광고를 하지만, 노동 시간을 관리하며 노동자를 통제하는 강력한 권한을 손에 꼭 쥔 채 인건비를 절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주주 자본주의 시대에 전혀 문제 될 것 없는 경영 방침이지만, 정작 필요한 일을 한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조차 없는 현실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선에서도 외면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노조를 조직하기 어렵다는 건 고용주와 협상할 때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또 선거를 앞두고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자동차 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 바이든 대통령이 현대 미국 대통령으로선 최초로 파업에 나선 노조의 시위 현장에 노조의 요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동참했던 거 기억하실 겁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전미자동차노조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직접 연대의 뜻을 표시하진 않았지만, 대신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과거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이 융성했던 러스트벨트 지역은 최근 선거 때마다 누가 이기든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갈리는 격전지입니다. 미국 대선은 주 단위로 한 표라도 더 받으면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다 확보하는 승자독식 방식을 따르므로, 후보들은 경합주에 사활을 걸고 달려듭니다. 지나칠 정도로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는 행위를 뜻하는 팬더링(pandering)이란 비판도 있지만, 표를 얻을 수 있다면 후보들은 관행이나 오래된 금기를 기꺼이 깨려 할 겁니다.

이 지점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경합주에 모여있지도 않고, 단합해서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조직도 없다 보니, 정치인들이 잘 보이고 싶어도 어디에 잘 보여야 할지 모를 겁니다. 게다가 이들은 투표율도 낮습니다. 고용 형태에 따른 투표율을 직접 집계한 데이터는 없지만, 대신 연령, 교육 수준, 소득 등을 통해 추정해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표율이 낮은 편에 속합니다. 정치인들에게는 매력적인 집단이 아닌 셈입니다.

게다가 시간제 노동자들의 들쭉날쭉한 노동 시간도 문제입니다. 미국은 아시다시피 선거일이 공휴일이 아닙니다. 직원들이 선거일에 반차나 월차를 쓰고 투표할 수 있도록 유급 휴가를 인정해 주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도 정규직 노동자들뿐입니다. 시간제 노동자들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회사는 사치입니다. 우편 투표나 사전 투표를 확대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이는 주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우편 투표나 사전 투표를 확대하고, 유권자 등록도 쉽게 해놓은 주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주들도 있습니다.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것이 선거에 나선 정당과 후보가 내세운 경제 정책의 목표라면 이들은 경제적으로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표가 안 된다고 외면할 게 아니라, 선거라는 장을 활용해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창구를 만들어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막대한 선거자금과 정치 후원금을 내는 기업의 입김을 무시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올해 선거에서 지난해 많은 주목을 받은 노동운동, 노동조합이 얼마나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겁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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