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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전쟁 중인 나라보다 낮은 출생률,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은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2월 6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대한민국은 ‘집단 자살 사회’다(South Korea is a collective suicide society).”

지난 2017년,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방한했을 때 한국의 저출생 문제에 관해 한 말입니다. 현재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인 라가르드 박사는 당시 기준으로 최근 통계를 참고했을 텐데, 2016년 한국의 출산율이 1.17이었습니다. 1.17이란 숫자도 이미 저출생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만한데, 2017년 이후 한국의 출산율은 다들 아시다시피 더 급격히 내려갔습니다. 결국, 5년 만에 2/3로 줄어 지난해 출산율은 0.78에 그쳤죠. 전문가들은 올해 합계출산율이 지난해보다 10%가량 더 감소한 0.7 정도에 머물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5년 사이에 이토록 더 심각해진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접하면, 라가르드 총재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2017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바뀐 수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20대의 자살률입니다. 한국이 OECD 자살률 1위 국가인 것은 지난 20년간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별로 새롭지 않은 뉴스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늘 노인 자살률이 특히 높은 나라였습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자살률이 1위였던 가장 큰 원인은 높은 노인 자살률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의 청년 자살률도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10만 명당 16.4명이던 20대 자살률은 2021년이 되면 23.5명으로 늘어납니다. 불과 4년 만에 40%나 늘어난 겁니다. 같은 시기 10대 자살률은 51%, 30대 자살률도 11% 증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살은 한국의 10대, 20대, 30대에서 모두 사망 원인 1위가 됐습니다.

전문 번역: 대한민국은 사라지고 있는가?

 

뉴욕타임스의 “대한민국이 사라지고 있는가?” 칼럼이 화제입니다. 우선 눈길을 사로잡는 건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중세 유럽의 흑사병에 비유한 대목입니다. 글을 쓴 로스 더우댓은 한국이 2023년 3분기 출산율인 0.7에서 반등하지 못하면 한 세대 만에 인구 200명이 70명으로 줄어들 거라며, 이는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와 같은 인구 감소 추세라고 썼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사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국가의 미래에 끼치는 영향만 놓고 본다면 저출생 문제는 흑사병보다도 더 큰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흑사병은 어린이, 노인 할 것 없이 인구가 고루 빠르게 줄어듭니다. 그러나 저출생은 노인 인구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청년, 유소년 인구만 줄어듭니다. 인구 구조가 피라미드를 뒤집어놓은 꼴로 바뀌는 과정이 급격히 진행되는 겁니다.

더우댓은 저출생이 지속되는 한국 사회에 관해 상상하기도 싫은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그립니다.

“노인을 온전히 부양할 수 없게 되고, 곳곳에 유령 도시와 폐허로 변한 고층 빌딩이 속출한다. 노인들을 부양하는 일을 빼면, 경제 전반에 제대로 된 생산 부문이 어느 하나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몇 안 되는 젊은이들은 사회를 등지고 다른 나라로 떠나려 할 것이다.”

물론 남의 나라 미래를 두고 너무 비관적인 전망만 하기 미안했는지 자신은 낙관주의자라고 강조하기도 하고, 글 곳곳에 낙관적인 전망을 끼워넣기도 했지만, 오히려 근거는 빈약해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저출생 문제에 관해 우리가 품고 있던 막연한 낙관론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똑똑히 경험했습니다. 저출생 문제에 안이하게 대처한 결과, 1~2년 뒤 출생률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표라 할 수 있는 혼인 건수는 지난 3분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2%나 감소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보다도 낮은 한국의 출산율

어쩌면 한국의 저출생 문제와 청년층의 자살률이 급격히 오른 건 뿌리가 같은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문제 모두 청년 세대가 전반적으로 경험하는 불행과 그 세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회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사리 믿기 어려운 통계를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한국의 출산율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2년 가까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출산율보다도 낮습니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원래 유럽 내에서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축에 드는 나라였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저출생 문제가 없던 1990년대부터 낮은 출산율이 국가 차원의 고민이었습니다. 1993년부터 매년 평균 30만 명씩 인구가 줄었고,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 이전에 2050년이면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UN의 경고를 받기도 했죠. 그런 우크라이나의 2021년 출산율은 1.16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한국의 2016년 출산율 1.17과 공교롭게도 거의 같습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1년이 지난 올해 상반기 우크라이나의 출산율은 0.8이 조금 넘었습니다. 2021년 1.16에서 급격히 낮아진 건 맞지만, 우리나라 출산율보다는 여전히 높습니다. 라가르드 총재가 ‘집단 자살 사회’를 언급한 지 약 5년 만에 한국은 어쩌면 전쟁터보다도 더 아이를 낳지 않는, 낳기 싫은, 낳을 엄두도 못 내는 사회가 된 겁니다. 물론 단순히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지난 5년간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전쟁터에 비견할 만한 스트레스와 절망을 경험하며 산 건 아닐지 묻게 됩니다. 오히려 진짜 전쟁을 겪는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면 삶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라도 가지고 살 텐데, 2023년을 사는 한국 청년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국 사회의 자살률을 봐도 한국 사회가 가히 전쟁과 유사한 수준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미국에서 가장 자살 위험이 높은 집단인 전역 군인의 자살률과 비슷합니다. 참고로, 미국 전역 군인들은 세 명 중 한 명꼴로 전장에서 직접 전투에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파병됐던 젊은 장병들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실 지금 어떻게 하면 젊은 세대가 아이를 더 낳게 할지 고민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이기도 한 청년과 젊은 세대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다음 세대가 살아가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누군가 살아 있는 생명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에서 새로운 생명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물었을 때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꽃이 아니라 꽃이 자라는 환경을 고쳐야 한다”

우리는 피지도 못하고 저버린 수많은 꽃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꽃들이 피지 못했는지, 왜 필 수 없었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꽃들이 만개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꽃밭을 건강하게 가꿔야 합니다. 이미 핀 꽃이 더 활짝 피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는 새로운 꽃들도 자연히 피어날 겁니다.

더우댓은 한국에서 저출생 문제가 심각해진 원인 중 하나로 성별 갈등을 꼽았습니다. 사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는 성별 갈등을 해소하고, 청년 세대의 스트레스를 줄여 궁극적으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는 자리였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새삼 아쉽습니다. 어떻게 하면 분열된 젊은 세대를 통합할 수 있을지 논의가 절실했지만, 정작 우리는 오히려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혐오의 정치적 언어가 난무하는 현실을 씁쓸하게 바라봐야 했습니다.

현재 정치인들 가운데 청년 세대의 절망에 온전히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을까요?  결국, 젊은 세대의 성별 갈등은 계속 더 심각해졌고, 이는 지금의 저출생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정치권 전반은 물론이고, 청년 세대를 대변한다는 정치인 중에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건 우려스럽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젊은 세대 스스로 더 많이 정치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텐데, 어느덧 중위 연령이 45세가 된 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투표로 행사할 수 있는 실력은 중장년층의 그것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출생 문제는 복잡다단한 문제입니다. 정책적인 노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것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더우댓도 한국의 지나친 교육열과 잔인한 입시 경쟁을 저출생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들이는 노력은 결국, 사회 전반에 걸쳐 정말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를 수반해야 합니다. 그저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저출생 위기를 흑사병에 비유했다더라.”는 가십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온 국민이 역사상 최악의 역병에 맞서 싸우는 정도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에 진지하게 맞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만 건너뛸 수 없는 문제 해결의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ruka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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