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8월 16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8월 11일 금요일 현재, 공교롭게도 국내외 뉴스의 머리기사는 모두 이상기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8월 10일 한국은 종일 제6호 태풍 카눈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있었습니다. 여름부터 초가을에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가며 영향을 주는 건 매년 있는 일입니다. 그 자체로는 전혀 이상할 게 없죠. 특이한 건 보통 동해상으로 빠져나가며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던 여느 태풍들과 달리 카눈은 경상남도에 상륙해 충청도와 수도권을 지나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이동했다는 점입니다. 즉, 한반도를 남에서 북으로 종단한 셈인데, 이런 태풍은 기상청이 태풍을 관측해 기록한 1951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미국 언론, 아니 외신 대부분은 머리기사로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 소식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산불이야 기후에 따라 건조한 계절에 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큰 피해가 난 마우이섬은 원래 산불이 잦지 않은 곳인데, 평균 강수량이 꾸준히 줄어들면서 숲이 건조해졌고, 동시에 평균 기온은 높아지면서 산불에 취약해졌습니다. 또 외래종이 늘어나 숲의 식생이 급격히 바뀌고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진 것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지난 6월 미국 동부 하늘빛을 바꿔버렸던 캐나다 산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불길이 워낙 센데 비는 오지 않아서 끌 엄두조차 못 내는 실정인데, 지역의 강수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우기가 와도 불이 완전히 꺼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남부 유럽과 중국은 폭염에, 그밖에 전 세계 곳곳이 비가 너무 오지 않거나 너무 많이 와서 몸살을 앓습니다.
“예년 같지 않은 날씨”를 전부 기후변화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를 빼놓고는 갈수록 자주, 극심한 형태와 규모로 일어나는 이상기후를 설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산업 활동과 난개발 등 인간이 시작한 변화에 대한 지구의 반응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건 온난화입니다. 지구의 연 평균 기온은 실제로 꾸준히 높아졌고, 최근 들어 상승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세부 체계와 구조가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으므로, 지구가 더워지면, 자연히 전에는 볼 수 없던 이상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기후와 날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 번역: 8월에 폭염과 산불과 스키장이 공존하는 그곳, 캘리포니아
이상기후가 반드시 끔찍한 재해의 다른 말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번역해 소개한 칼럼에서 작가 다니엘 듀앤이 전한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이상기후로 인해 지난해 겨울 눈이 예년보다 몇 배 많이 내린 캘리포니아 내륙 산간지방에서는 여름까지도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됐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아직도 스키를 타러 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자, 뜻밖의 행운 같은 여름일지 모릅니다.
듀앤은 앞으로 기후변화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지구 곳곳에서 펼쳐지는 기후 재해를 보기 괴로운 와중에 조금이나마 즐거운 소식 아니냐는 말로 글을 맺었습니다. 한여름의 설산을 만끽하는 스키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싶진 않지만, 도대체 어떻게 산 너머 남동쪽 애리조나나 텍사스는 폭염, 가뭄, 산불로 고통받는 가운데 캘리포니아의 산에는 소빙하기처럼 눈이 쌓여있는 건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듀앤도 인정하고 있듯이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는 갈수록 자주,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뭐든 지나치면 화를 낳기 마련인데, 아직 스키를 탈 수 있을 만큼 많이 내린 눈도 사실 내릴 때부터 너무 많이 와서 직접적인 피해를 끼쳤습니다. 지난겨울 폭설을 동반한 눈폭풍에 캘리포니아에서만 최소 22명이 숨졌습니다. 점점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엉뚱한 날씨,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측하지 못하면 대비가 늦어지거나 부족하고, 그럼 이번 하와이 산불처럼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는 극한 기후
사실 칼럼을 읽고 기후변화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하와이 산불이 나기 전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서 꺼지지 않는 캐나다 산불 관련 에피소드를 듣고 나서였습니다. 지난봄에 시작된 산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약 1,200만 헥타르 이상의 숲이 불에 탔습니다. 남한 면적이 1천만 헥타르가 좀 넘으니, 몇 달 사이 우리나라보다 넓은 땅이 전소됐다는 뜻입니다.
꺼지지 않는 산불, 아니 끌 방도를 찾기 어려운 산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20세기 인간은 자연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법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역설적으로 인간의 활동으로 극심해진 기후변화 때문에 더 강력해진 산불은 통제하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걸 다시 일깨워 준 듯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20세기 대부분 산불을 진화하는 원칙은 주로 벼락을 맞아 시작된 자연적인 산불을 포함해 모든 산불을 발견 즉시 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방관 등 인명 피해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통제할 수 있는 산불은 민간인의 인명이나 재산에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어느 정도 타게 내버려 두는 원칙이 자리를 잡습니다. 사람은 무조건 구하는 게 원칙이고, 중요한 전력선이나 발전소 등 기반 시설이 산불에 노출될 위험이 있지 않다면, 불을 그냥 두는 겁니다. 이 원칙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처럼 국토 면적이 넓어서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많은 나라에서 특히 잇따라 채택됩니다. 그렇게 했을 때의 장점은 또 있습니다. 한 번 자연적으로 불이 붙었다가 꺼진 지역은 한동안 불이 붙을 만한 나무가 자라지 않아 산불이 나지 않는, 일종의 자연 방화선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르고 강수량이 줄어 불에 타기 좋은 나무들이 더 바싹 마른 상태로 숲 전체에 자랐습니다. 높은 기온에서 번지는 불은 기세도 워낙 세고, 불길의 온도도 예전 산불보다 더 뜨겁습니다. 헬기에서 소방용수를 뿌려봤자 물이 불길에 닿기도 전에 다 증발해 버릴 정도죠. 또한, 예전에는 한 번 불타고 나면 그 일대에 다시 불에 탈 만큼 식생이 자라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적어도 5년, 길게는 10년 넘게 한 번 불탄 지역은 한동안 산불 걱정을 안 해도 됐었죠. 이 공식도 바뀌었습니다. 식생과 생태계가 변하면서 심하면 작년에 불탔던 곳에서 올해 또 불이 나기도 합니다. 자연적인 방화선 혹은 산불이 번지는 걸 막을 저지선을 구축하기도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산불에 맞서는 대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도록 압박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화보다 통계를, 과거의 경험보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귀 기울여야
캐나다에서 난 산불은 엄청난 면적을 태우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숲을 태울지 모르지만, 그래도 인명 피해만 놓고 보면, 20세기 말에 정립한 새로운 원칙에 따라 “잘 막은 산불”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조건에서 예측을 뚫고 갑자기 발생한 거센 산불이 라하이나 지역의 민가를 덮치면서 하와이 산불은 끔찍한 피해를 낳았습니다.
다니엘 듀앤의 칼럼을 재미있게 읽은 뒤에도 뜻밖의 즐거움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두고 덜컥 걱정이 앞섭니다. 많은 눈 덕분에 올여름은 8월에도 스키를 즐길 수 있게 된 캘리포니아지만, 지난 10년 가까이 거의 매년, 심지어 올여름도 주의 다른 곳에서는 가뭄과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캘리포니아주의 면적만 해도 한반도 면적의 두 배가 넘을 만큼 큰 주이긴 합니다. 그래도 8월의 스키와 기후 재해로 인한 피해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상기후에 관한 논의를 할 때 생각해야 할 점 두 가지만 짚어보려 합니다. 우선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일인 만큼 나나 내 주변의 일화를 보고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통계를 보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여름이 예년보다 선선하고, 올해 겨울 기온은 평년보다 낮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기후변화의 거대한 흐름을 판단하는 데 근거로 사용해선 안 됩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기후변화의 실체는 더는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기후 과학자들은 올해 여름이 유달리 덥지만, 아마도 그런 올여름이 당신이 앞으로 겪을 여러 번의 여름과 비교하면 시원한 축에 들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이상기후로 어떤 날씨가 갑자기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가 특히 기후변화 대책을 세우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거나 방해만 될 수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정치적으로 가장 크게 대립하는 정책 분야가 기후변화인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수없이 경고해 왔고, 많은 사람이 상황을 악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인류 전체로 보면 그 노력이 부족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진단은 아닐 겁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나아가 자연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커다란 오만이자 오판이었습니다. 지구가 내놓은 답에 우리가 다시 주어진 환경과 자원을 가지고 답을 내려면,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과학자와 전문가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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