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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이 문제는 영영 풀지 못할 것이다, 이래도 되나?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5월 15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에 사는 외국인에게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미국 문화를 꼽아보라 하면, 대부분 첫손에 총기 문화를 꼽을 겁니다. 미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총기의 숫자는 미국 인구보다 많습니다. 미국 인구가 약 3억 3천만 명인데, 미국인들은 4억 정 안팎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군대나 경찰, 경호 업체의 총기를 제외한, 개인이 소지한 무기의 숫자가 이렇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총기 판매량이 늘었으니, 지금은 그 숫자가 더 커졌을 겁니다.

총을 사놓고 장식용으로 진열만 해두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산 총이라고 해도 총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쓸 일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는 사건, 사고로 이어져 끔찍한 통계를 낳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 사고로 인한 희생자를 집계하는 “총기 폭력 자료(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글을 쓰는 5월 11일 현재 미국에서 올 한 해 총기로 숨진 사람은 15,209명입니다. 하루에 100명 이상이 총기로 목숨을 잃는 셈이며, 미국에선 12분에 한 명꼴로 어딘가에서 사람이 총으로 죽는다는 뜻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희생자 15,209명을 다른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살해당한 사람과 자살로 죽은 사람으로 나눴을 때 총기를 이용한 자살로 숨지는 사람(8,646명)이 살해당한 사람(6,563명)보다 많다는 점입니다. 총기 문제를 떠올릴 때 사람들은 흔히 수많은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총기난사 사건을 떠올리지만, 오히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건 자살 수단으로 쓰이는 총기입니다. 자살 수단에 접근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건 기본적인 자살예방법 가운데 하나로, 치명률이 높은 총기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건 중요한 과제입니다.

다만 오늘은 자살보다 총기를 이용한 타살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할 예정이니, 통계 가운데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빼고 5월 11일까지 다른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살해당한 사람 6,563명만 놓고 생각해 봅시다. 15,209명보다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아주 큰 숫자입니다. 2001년 9.11 테러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가 3천 명 정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에선 총기를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탓에 두 달에 한 번꼴로 9.11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라고 한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말이 떠오를 만큼 총기로 인한 사건, 사고는 너무 자주, 매일, 쉼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총기 사망자만 보면 미국은 내전 중

퓨리서치 센터가 최근에 펴낸 새로운 통계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총기에 있어 얼마나 예외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퓨리서치 센터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통계를 인용해 가장 최근에 발표된 2021년 총기사고 통계를 인용했는데, 2021년 한 해에 미국에선 총기로 48,83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사망자는 23%, 총기로 살해된 사망자는 무려 45%나 증가했습니다.

인구가 꾸준히 늘어났으니, 사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덩달아 늘어나는 거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죠. 인구 10만 명당 총기로 목숨을 잃는 사람의 숫자를 살펴보면, 그래도 여전히 미국은 소위 선진국 중에는 유별나게 총기로 사람이 많이 죽는 나라입니다. 나라별 총기 사고 통계를 모아 비교해 놓은 자료를 보면, 미국은 총기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인구 10만 명당 10.89명입니다.

미국보다 많은 사람이 총기로 죽는 나라는 대개 치안이 불안하기로 악명이 높은 중남미 국가들입니다. 유럽연합 국가 중에 가장 사망률이 높은 프랑스가 10만 명당 3.24명, 핀란드가 2.90명, 스위스가 2.72명 순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0.08명으로 싱가포르, 일본, 중국과 함께 총기에 관한 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분류됐습니다.

전문 번역: 168명 살해한 테러리스트의 꿈이 어느덧 현실이 됐다

 

총기로 목숨을 잃는 사람 숫자만 놓고 보면, 미국은 내전 상태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데도 미국에서 총기를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건 갈수록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미국인이 미국에서 일으킨 테러 가운데 가장 끔찍했던 공격 중 하나인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연방 정부청사 건물 폭탄 테러의 범인 티모시 맥베이를 언급합니다. 맥베이는 백인 우월주의를 신봉하던 극단주의자로 정부의 압제에 맞서 정부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정부에 맞서는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던 맥베이의 폭탄 테러로 16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맥베이는 1997년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형은 2001년 6월에 집행됐습니다.

그런데 맥베이가 죽고 난 뒤 미국 사회의 발자취를 보면, 총기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대로이거나 늘어나는데도 총기 규제는 계속해서 완화됐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골드버그는 총기 규제에 실패한 원인으로 극우 세력의 총기를 향한 맹신과 공화당의 우경화를 꼽았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는 총기를 시민사회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무기로 보고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으로 통하는 이들과 반대로 총기를 자유롭게 소지할 권리를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는 이들이 공존하게 됐습니다. 총 때문에 자꾸 사람이 죽으니, 총기를 더 강력히 규제하자는 주장은 제가 볼 때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주장이지만, 또 다른 평행우주 속 미국에서는 끔찍한 압제의 선전포고처럼 들린다는 말입니다.

총기 소지권을 맹신하는 이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탄한 지지 기반이자, 친트럼프 성향의 정치인들을 대거 의회로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경화된 공화당은 판사를 임명하는 상원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법원을 보수화시켰고, 보수 6대 진보 3의 압도적인 보수 우위 대법원은 수정헌법 2조를 더욱 신성시하며, 사실상 모든 총기 규제를 백지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NRA와 총기안전법

총기 규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많은 사람이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를 꼽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힘이 센 로비 단체 중 하나로 여겨지는 NRA는 그런데 로비에 쓰는 돈만 놓고 보면 로비 단체 중 상위권에 명함도 내밀지 못합니다. 기업이나 기업연합, 직능 단체들이 로비에 훨씬 많은 돈을 씁니다.

NRA의 힘은 돈보다도 수백만 명 회원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 이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때 가장 잘 발휘됩니다. 총기 규제에 나서려는 정치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항의 전화하고, 이메일, 문자 메시지를 끝없이 보내며, 유권자들과 만나는 타운홀 미팅에 도시락 싸 들고 쫓아다니며 총기 규제는 미국 시민의 자유를 앗아가는 악법이라고 정치인들의 귀에 못질을 하는 겁니다. 결국, 정치인들은 일종의 착시에 빠집니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 가운데 자동소총 등 전쟁에서나 쓰일 공격용 무기를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여론은 멀고, 내 앞에 확성기 들고 쫓아다니는 유권자는 가깝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일은 새로운 법을 만드는 지극히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1년 전 텍사스주 유발디의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22명이 죽고 난 뒤 오랫동안 총기 규제를 추진해 온 크리스 머피(민주, 코네티컷) 상원의원이 주축이 돼 총기안전법이 통과됐습니다. 평행우주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정치적으로 갈라진 미국 의회에서 두 당이 공통 분모를 찾아낸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머피 의원은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세부 조항에서 많은 걸 양보해야 했고, 여러 번 좌초될 위기를 간신히 넘긴 법은 어렵사리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NRA로서는 규제가 부실한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의원들에게 정치적인 압력을 가해서 총기 규제에 관한 논의를 우선순위에서 내리기만 해도, 그래서 논의를 지연시키기만 해도 목표를 어렵잖게 이룰 수 있습니다. 보통 총기난사 사건 직후에는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다가 이내 식어버리곤 합니다. 공격보다 수비가 쉬운 상황인 거죠. 주지사, 주의회, 주 법원이 모두 보수 진영이 장악한 주에서는 총기를 소지하는 데 아무런 인가도 필요 없고,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총기를 드러내놓고 다녀도 되는(open carry) 곳도 있습니다.

 

어린이가 죽어도 바뀌지 않는다면…

골드버그는 총기난사가 너무 자주 일어나서 일상이 돼버린 현실을 개탄합니다. 정말로 미국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또 다른 총기난사 사건에 둔감해졌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누군가의 비극에 공감하고 같이 슬퍼하기보다 쉼 없이 늘어나는 사망자 숫자를 멍하니 바라보는 거죠. (글을 쓰는 1시간 사이에 총기 폭력 자료의 집계도 4명 더 늘어 6,567명이 됐습니다.)

사실 텍사스주는 제가 사는 뉴욕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모두 먼 곳이라서 지난주 쇼핑몰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어쩌면 저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말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 한국 친구 한 명이 가족과 함께 총기난사 사건이 난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쇼핑몰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총소리를 들었고, 서둘러 쇼핑몰을 빠져나와 화를 면했습니다. 우선은 친구가 무사했다는 얘기를 듣고 다행이라고 마음을 놓았다가 8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또 희생자 중에 3살 난 어린이와 일가족도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며칠을 깊은 무력감에 빠져 지냈습니다.

제가 미국에 온 이듬해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린이와 교사 26명이 목숨을 잃은 최악의 사건이었죠. 하필 사건이 일어난 날이 제 생일이었어서 그날의 장면과 감정들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슬퍼하고 공감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다시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행동에 나서는 일이겠죠. 앞서 언급한 정치적 양극화와 여러 환경을 고려하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럴수록 크리스 머피 의원이 지난해 통과시킨 총기안전법의 경험에서 최대한 많은 걸 배워야 할 겁니다.

크리스 머피는 샌디훅 총기난사 사건이 났을 때 해당 지역구를 대표하는 하원의원이었습니다. 이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유권자의 바람을 담아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온 정치인입니다. 그가 1년 전 텍사스주 유발디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의회 연단에 서서 동료 의원들을 향해 했던 말로 오늘 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 아침 등교하면서, 교실에 들어서면서 ‘나한테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불안해하고 있어요. 이래도 되는 겁니까 진짜? 우리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이 나라 최고 의회 기관인 상원에서 우리 진짜로 뭐 하는 건지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봅시다. 만약 우리가 열심히 일했는데도 오늘 같은 끔찍한 학살이 계속 일어나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매일 불안 속에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가 기울인 많은 노력은 모조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수고인 겁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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