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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너 혼자 그런다고 뭐가 바뀌니”에 대한 답은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5월 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의식주(衣食住). 옷과 음식과 집.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 세 가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옷, 음식, 집을 생산하고 조달하는 방법은 각각 많이 다릅니다. 가장 마지막 항목인 집부터 생각해 볼까요? 집은 세 가지 가운데 생산과 이용이 가장 지역적입니다. 기본적으로 옮길 수 없는 재산이란 뜻의 부동산(産)이다 보니, 당연한 일입니다. 부동산 투자나 거래를 할 때도 돈과 사람이 오갈 뿐 집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음식은 집보다는 이동이 잦습니다. 다만 품목에 따라 신선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큰 제약입니다. 신선도를 유지하며 음식을 옮기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물 건너온 먹을거리는 비싸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신토불이”하는 게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만, 돈을 아끼는 방법일 때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옷은 어떤가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생산지를 확인해 보시죠. 한국에서 생산한 옷보다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옷을 입고 계신 분이 더 많을 겁니다. 옷의 원단이나 원료의 산지까지 따지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브랜드는 국산 브랜드여도 옷을 어디서 만들었느냐를 따져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옷은 집보다 옮기기 훨씬 쉽고, 음식처럼 상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히 옷은 의식주 가운데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공급망이 가장 글로벌화된 항목입니다. 수입한 식재료는 보통 국산보다 비싼데, 옷은 외국에서 만든 옷이 보통 더 쌉니다. 값싸고 편리하니, 그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요?

전문번역: 1만 5천 원짜리 티셔츠 한 장 만드는 데 드는 진짜 비용

 

의류 산업 공급망 곳곳에 만연한 강제 노역과 인권 유린의 실상을 폭로해 온 E. 벤자민 스키너는 위 칼럼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30년 전보다도 훨씬 싼 값에 옷을 살 수 있는 건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심한 경우 목숨까지 앗아가며 유지해 온 현실이므로, 심각한 문제라고 스키너는 지적합니다.

지난 4월 24일은 방글라데시에서 라나 플라자라는 의류 공장 건물이 무너지면서 1천 명 넘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 건물에 심각한 균열이 보였고, 평소와 달리 건물이 이상하게 떨리고 흔들리는 걸 느낀 노동자들이 이를 사측에 알렸지만, 사측이 이를 철저히 묵살한 사실이 사고 이후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공분했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뒤 대응 단계를 크게 둘로 나눠 보면, 첫째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둘째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를 마련하는 일일 겁니다. 왜 사고가 났는지 확인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까지는 비교적 잘 이행됩니다. 특히 라나 플라자 참사처럼 세상의 공분을 사는 일은 더 그렇죠. 하지만 두 번째 과제, 즉 비슷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는 일까지 잘 해내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대리인 문제가 더 두드러지는 글로벌 공급망

의류 산업은 거대한 글로벌 공급망 안에서 굴러갑니다. 그러다 보니, 넓고 복잡한 공급망 어딘가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책임 소재를 밝혀내기가 어렵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리인 문제”가 의류 산업에서 더 두드러지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주문을 처리하고 옷을 만들어 주는 나라의 공장에 물건을 발주하는 의류 브랜드들은 약속한 기일 안에 주문한 제품을 받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또 하청 업체는 발주하는 브랜드에서 원만히 돈만 받으면 됩니다. 전체 산업이 값싼 노동력에 기대고 있다 보니, 인건비가 오르는 것만큼은 노동자를 제외한 모두가 원치 않습니다.

정부의 규제와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강제 노역, 부당노동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독립적인 감사 업체를 선정해 조사를 진행하는데, 누구도 그 비용을 부담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품을 주문한 브랜드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감사 업체를 선정하는 비용은 관행상 의류 브랜드가 아닌 하청 업체가 냅니다. 진상을 밝혀내고 진짜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문제를 적당히 덮어버리는 쪽이 여러모로 이득인 하청 업체의 돈을 받는 감사 업체(대리인)가 제대로 감사를 진행할 가능성은 매우 작습니다.

집이나 음식과 한 번 더 비교해 볼까요? 집을 잘못 지어서 문제가 생기면, 집을 지은 건설 업체가 책임을 지면 됩니다. 음식도 문제가 생겼을 때 공급망 안에서 원인을 찾으면 됩니다. 먹을거리 공급망은 의류와 비교하면 지역 사회나 국가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문제의 원인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또한,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농장이나 식품 공장에서 강제 노역이나 임금 체불 등 부당노동 행위가 있었다면, 당국이 이를 밝혀내 고용주를 처벌하면 됩니다. 물론 실제로 규제를 이행하는 과정은 매끄럽지 못할 수 있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작습니다. 독립적인 감사 업체 등 대리인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윤리적인 소비”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공급망 전체가 굴러가는 원리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스키너는 의류 산업 공급망의 원리를 바꿀 방법의 하나로 개개인의 “윤리적인 소비”를 제안합니다. 가격이나 상품의 질 말고 다른 것을 따져 참고하는 소비에 관한 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 친환경/친노동 공급망과 같은 개념이 나온 지도 꽤 오래됐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리인 문제의 관점에서 의류 산업과 공급망의 구조를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청 업체인 의류 공장에서 강제 노역 문제가 불거진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이때 공장이 노동 조건이나 환경 관련 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감사 비용을 하청 업체 대신 원청 업체나 주문을 낸 브랜드가 직접 부담하면 됩니다. 그러면 대리인인 감사 업체는 비용을 대는 주인, 즉 브랜드의 요구에 따라 문제를 더 철저히 조사하고 노동법을 잘 지키고 있는 업체를 실제로 가려낼 유인이 생깁니다.

문제는 이 비용을 의류 브랜드가 부담하라고 누가 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개별 규제 당국이 엄연히 다른 나라 기업인 의류 브랜드에 특정 비용을 대라고 명령해봤자 소용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스키너는 의류 브랜드에 “행동에 나설 명분과 실리”를 다 챙겨주는 방법으로 개별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언급한 겁니다.

라나 플라자 참사가 난 직후 구조적인 문제의 원흉으로 꼽힌 패스트 패션 트렌드를 향한 규탄이 거세게 일자, 패션 브랜드들은 부랴부랴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안전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후 노동 환경은 일부 나아졌지만, 의류 공급망의 기본적인 생리는 크게 바뀌지 않았죠.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건물주와 공장주를 향해서는 비난과 규탄이 이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들은 이내 값싸고 편리한 옷을 다시 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소비자들이 옷을 고를 때 그 옷을 만든 노동자의 인권을 정말로 생각하게 된다면, 즉 “윤리적인 소비”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때는 의류 브랜드들이 진짜로 자기 브랜드가 찍힌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윤리적인 소비”가 허상이라면?

스키너의 주장은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면 공급망의 구조도 바뀌리라는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소비자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과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스키너는 특히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 등 젊은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양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합니다. 대다수 젊은이는 값이 좀 비싸도 윤리적으로, 환경을 생각하며, 법을 지키며 생산한 먹을거리, 제조한 상품을 살 의사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칼럼의 댓글만 봐도 일리 있는 반론이 눈에 띕니다. 바로 사람들이 설문조사에서 어떤 상황에 어떻게 행동하겠다고 내놓는 답과 실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하는 행동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윤리적인 소비”처럼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이 대표적입니다. 누구나 말로는 인권이나 환경을 신경 쓴다고 말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서로 다른 가격표 앞에 섰을 때 품질이 비슷하다면 값싼 제품을 고르지 않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장 저도 가게에서 과일을 살 때 유기농, 친환경 인증 다 보면서도 결국엔 싼 제품을 집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윤리적인 소비”라는 게 결국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소수의 상류층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치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윤리적인 소비”가 좋은 것, 옳은 것만 앞세우다가 실제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은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물론 그 소비자가 인권이나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닙니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을 굴리는 가격 메커니즘이 강력한 겁니다. 소비자로서는 같은 값이면 품질이 좋은 것, 품질이나 디자인이 비슷하다면 값이 싼 걸 택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약 10년 전 “착한 소비”와 “1+1 기부” 열풍을 불러왔던 착한 기업 탐스(TOMS)를 기억하실 겁니다. 탐스가 실패한 원인에 대해 많은 분석이 있지만, 그중에 저는 탐스가 ‘신기 편하고 튼튼한 신발’을 만들지 못한 게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불편한 신발이라도 좋은 일에 기부하는 심정으로 사람들이 물건을 사줄 거라고 가정했던 것이 문제였던 겁니다.

 

작은 실천이 바꿀 수 있는 것 자체를 폄하하지는 말았으면

글을 쓰다 보니, 칼럼에 반박하는 이야기만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윤리적인 소비”가 아주 가망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정부가 규제에 나서기 쉽지 않고, 산업의 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라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의 독일인 친구 한 명은 유럽 안에서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비행기를 타지 않습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 기차를 탄다고 말했습니다. 유럽에 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여러 번 타게 되는 저는 좀 머쓱해졌습니다. 하루는 말에 약간의 가시를 담아 이렇게 물었죠.

“근데, 너 한 명 그렇게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뀔까?”

돌아온 대답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도 뭐 대단한 거 하자고 그러는 건 아니야. 고등학교 때 탄소 발자국을 줄여보자며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작은 모임을 만들었어. 거기서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각자 약속하고 지켜보기로 한 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지. 동네에서 시작한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300명 정도 돼.

현대 사회는 소셜미디어 덕분에 모든 게 연결돼 있고, 아이디어나 트렌드도 아주 빨리 퍼지는 사회죠. 패션 트렌드를 시시각각 파악해 생산에 반영하는 패스트 패션이 가능했듯, 개개인의 작은 실천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만 있다면, 금방 퍼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특히 젊은 세대에서 주목받으려면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멋져 보이는” 무언가를 해야 할 텐데, 그건 저 말고 다른 누군가가 해줘야 할 것 같네요.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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