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4월 5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주 잭 스미스 특검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 문서 유출 혐의에 대한 수사를 마치고 트럼프 대통령을 다시 기소했는데요, 이 수사를 둘러싼 글도 조만간 쓸 예정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됐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기소된 건 미국 역사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관한 내부 이야기를 자주 취재해 기사로 쓰는 매기 해버만 기자가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 나와 한 이야기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별일 없을 거라는 측근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기소가 결정됐다는 소식에 크게 당황했다고 합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갑자기 맨해튼 검찰이 자신을 곧 체포할 거라며, 지지자들에게 부패한 정치검찰의 마녀사냥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는데요, 대배심이 기소를 결정했다고 피의자가 바로 사법당국에 체포되는 건 아닙니다. 기소에 응하면 날짜를 잡아 법원에 출두, 재판이 진행되는데, 그 날짜가 오는 4일(화)입니다. 해설을 쓰고 있는 지금은 미국 동부 시각 3일 오후인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늘 저녁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 집으로 와서 하루를 보내고 내일 법정에 출석할 예정입니다. 첫 재판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저택으로 돌아가 ‘정치검찰’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치검찰’이란 단어가 영어에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트럼프 전 대통령과 측근, 지지자들은 뉴욕 남부지검의 수사가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을 따르고 있다(politically motivated)는 표현을 씁니다. 또 자신을 향한 모든 수사를 한데 뭉뚱그려 ‘weaponization of the justice system’, 또는 ‘weaponization of the government power’ 그러니까 사법 제도나 정치권력을 무기화해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해 왔습니다. 검찰의 부당한 수사에 맞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라고 호소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정치검찰’이란 단어가 쓰이는 것과도 맥락이 닿겠네요. 아무튼 정치검찰 논란은 이번 기소가 적절했느냐를 두고도 치열하게 이어집니다.
기소 내용은 무엇일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어떤 혐의로 기소됐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재판이 시작되면 수사를 해온 검찰 측 변호인이 법정에서 기소 내용을 밝히고, 트럼프 측 변호인은 여기에 반박하면서 공방이 오가겠죠. 그러나 워낙 관심이 큰 사안이기도 하고, 뉴욕 남부지검이 오랫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을 수사해왔기 때문에 미국 언론은 그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받는 혐의를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입막음용 뒷돈’으로 번역할 수 있는 돈(hush money)을 둘러싼 회계 부정과 이를 이용한 2차 범죄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이자 해결사, 오른팔 역할을 하던 마이클 코헨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13만 달러를 줬습니다. 대니얼스가 예전에 트럼프와 성관계를 했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터뜨려 관심을 끌며 돈도 벌려고 하자, 트럼프의 당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폭로를 막기 위해 돈을 지급한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가 당선되고 나서 이 13만 달러를 코헨에게 지급했는데, 트럼프는 세금 신고에 이 돈을 일상적인 법률 자문 비용이라고 기재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코헨은 이 돈이 대니얼스의 폭로를 막기 위한 입막음용 뒷돈이었고, 자신은 모든 과정에서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고 폭로합니다. 돈으로 폭로를 막은 것 자체는 개인 간의 계약이므로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지만, 회계 장부를 조작하고 당국에 세금 신고할 때 이 돈의 용처를 거짓으로 꾸며낸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회계 부정을 이용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면 뉴욕 법에 따라 이는 중범죄(felony)로 형사 기소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선거를 앞두고선 코헨이 자기 돈 13만 달러를 대니얼스에게 지급했다고 했죠. 그런데 대니얼스의 폭로를 막은 것이 2016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도움이 됐을 수 있고, 그렇다면 13만 달러는 코헨이 트럼프 후보에게 준 선거자금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개인이 후보에게 낼 수 있는 선거자금 한도는 그보다 훨씬 낮은 3천 달러였다는 점입니다. 13만 달러는 선거법을 위반한 불법 선거자금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뉴욕 남부지검은 회계 부정을 저지르고 그를 이용해 2차 범죄로 선거법을 위반해 불법 선거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형사 기소한 겁니다.
선거로 뽑는 지검장, 미국 검사는 다 정치검사?
뉴욕 남부지검, 남부지법, 뉴욕주 대법원 맨해튼 법정 건물은 모두 뉴욕시청 옆에 모여 있습니다.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와 맞닿아 있는 곳으로, 뉴욕 남부지검은 자연히 금융 범죄, 폰지 사기, 증권법 위반, 탈세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를 제일 잘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원래 뉴욕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던 성공한 사업가이자 유명 인사인 트럼프는 평생 수많은 송사를 치른 인물이기도 합니다. 뉴욕 검찰은 오랫동안 트럼프의 납세 기록,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의 비리 의혹 등 다양한 의혹을 조사해왔을 겁니다.
이번 수사를 이끈 뉴욕 남부지검의 지검장은 알빈 브래그 검사장입니다. 한국 검찰과 미국 검찰의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지검장 이상 여러 보직을 (검찰총장을 겸하는) 법무부 장관이나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가 직접 뽑는다는 점입니다. 브래그 검사장도 지난 2021년 뉴욕 맨해튼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 인물이죠. 맨해튼은 대선 때마다 민주당 후보가 90% 안팎의 지지를 받는 동네입니다. 85%의 지지로 뉴욕 남부지검장이 된 브래그 검사장이 임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뉴욕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관해 주로 탈세와 불법 대출 의혹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안이 너무 복잡해서 확보해야 할 자료도 방대하고, 확실한 증인이나 증거를 모으기 쉽지 않아 수사는 지지부진했습니다.
브래그 검사장은 이에 수사 기조를 대폭 수정합니다. 확실한 증인이 될 수 있는 마이클 코헨이 누구보다 잘 아는 문제를 파고들어 확실히 입증할 수 있는 혐의만 수사하기로 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브래그 검사장에 반기를 들고 옷을 벗은 검사들도 있었고,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브래그 검사장이 과연 수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브래그 검사장의 생각은 확고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형사 기소의 경우) 대배심(grand jury) 과반을 설득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습니다. 대배심 제도가 없다고 한국 검찰이 기소를 남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 검찰에는 한 번 더 여과 장치가 있는 셈이죠. 기소를 추진했다가 대배심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되면, 이는 수사를 이끈 검사의 이력에 오점으로 남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배심은 브래그 검사장의 논리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자신을 향한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에 맞서 브래그 검사장은 “(나를 뽑아준) 유권자들의 뜻에 따라 진행한 수사 결과가 받아들여져 이뤄진 기소를 비난하는 건 결국, 맨해튼 유권자에 대한 비난”이라고 맞받아칩니다. 선거로 뽑히는 검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기본적으로 다 정치적인 검사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와 제도가 다른 부분은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미국 검사들이 선거로 뽑힌다고 딱히 포퓰리즘에 들어맞는 수사만 하거나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브래그 검사장이 정치적이라기보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력 자체가, 그로 인해 마침내 현실이 된 이번 전직 대통령의 형사 기소라는 사안 자체가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두 갈래 혹은 그 이상으로 쪼개진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미국인들이 이번 사안을 어떻게 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전문 번역: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첫 기소, 중요한 까닭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가 쓴 칼럼은 민주당과 진보 진영 대부분 사람의 생각을 대변하는 글입니다. 한 마디로 법치국가 미국에서 누구든 잘못하면 법의 심판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며, 여기에는 돈이 많든 권세가 있든 전직 대통령이든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반대로 공화당 안에서는 트럼프를 얼마나 지지하느냐에 따라 반응에 미묘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우선 트럼프 본인과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은 검찰이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며, 마녀사냥을 즉각 중지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공화당원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트럼프와 거리를 둬 온 이들은 검찰의 표적 수사, 정치 보복을 비난하면서도 온도 차이가 느껴집니다.
뉴욕타임스보다 특히 오피니언란은 훨씬 더 보수적인 월스트리트저널의 대표적인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페기 누난은 검찰의 수사를 비판하되, 이번에 전직 대통령을 기소한 사건의 격을 문제 삼았습니다. 즉,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저지른 더 큰 잘못이 있는데, 그보다 훨씬 하찮은 사안을 가지고 덜컥 기소하는 바람에 온 나라가 싸움을 벌이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게 생겼다는 겁니다. 누난이 언급한 더 큰 잘못은 2020년 대선에서 아깝게 패한 조지아주의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우리나라로 치면 주 선관위원장에 해당하는 조이자주 주무장관에게 “나를 찍은 표 11,800표를 당장 찾아오라”고 닦달한 선거 개입 혐의나 잭 스미스 특검이 수사 중인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건, 또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사실상 사주한 혐의가 죄의 경중으로 따지면 훨씬 더 무겁다는 겁니다.
또 트럼프 행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윌리엄 바 전 장관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검찰의 수사가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에 복무하는 잘못된 수사라고 비판하면서도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절제할 줄 모르는 트럼프가 법정에서 진술하게 되면 트럼프 측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끝이 좋지 않았던 행정부 인사 중 한 명다운 발언입니다.
2024년 대선 구도에 미칠 영향은?
이 질문에 관해 수많은 분석이 나왔습니다. 스프 독자 여러분도 아마 이게 가장 궁금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다양한 분석 가운데 제 생각에 가장 잘 정리된 내용은 파이브서티에잇(538)의 팟캐스트였습니다. (뉴스페퍼민트의 스핀오프 팟캐스트 아메리카노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세 가지 시나리오를 하나씩 살펴보죠.
먼저 트럼프를 향한 수사가 트럼프에게 득이 될 거라는 전망입니다. 즉,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트럼프 지지층을 결집시켜 결국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대세를 굳힐 길을 닦아줄 거라는 분석입니다. 두 번째 분석은 반대로 사상 초유의 기소까지 간 수사가 법정 공방을 지나고 나면 결국, 트럼프가 잃는 게 많으리란 전망입니다. 스캔들에 휩싸인 정치인은 결국엔 그 다음 선거에서 표를 잃는다는 정치학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지지층의 결집은 공화당 당내 경선을 통과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바이든 대통령 또는 민주당 후보와 맞붙는 본선에서는 중도층 유권자의 마음을 잡는 게 중요한데, 죄를 지은 혐의로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타이틀이 여기에 도움이 안 된다는 분석입니다.
둘 중에 어떤 분석에 마음이 가시나요? 저는 둘 다 어딘가 시큰둥했는데, 세 번째 시나리오를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바로 이렇게 요란하게 언론을 장식하고 있지만, 결국 트럼프 기소는 표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전망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미 미국 사람들은 기존 정치 성향에 따라 마음을 굳혔기 때문입니다. 즉 공화당원들은 93%가 이번 수사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강행되는 마녀사냥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원들 중에는 66%가 이번 수사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된 수사라고 여깁니다. 오히려 브래그 검사를 뽑은 맨해튼 유권자나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부분 인제야 트럼프를 심판할 수 있게 된 게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미 마음이 이렇게 굳어진 상태에서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든 각자 생각을 바꾸지 않으리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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