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3월 30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우리 삶은 허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은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서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아침 시간에 뛰고 있는 이를 보고 우리는 지금 시간과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 뛰는 자세를 통해 그가 운동 중인지, 출근 중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훔치고 도망치는 중인지 판단합니다. 물론 그 추측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우리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종교, 경제, 국가와 같은 구체적인 문화와 제도까지도 지어진 이야기라 표현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비록 허구지만, 우리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이야기가 가진 상호주관적 특성에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도 이 이야기를 믿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가진 돈은 다른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 사회에서 다른 재화나 서비스와 교환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면
그러나 어떤 허구들은 이를 현실로 오해할 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최초의 근대 소설로 이야기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주인공 돈키호테는 기사도 소설에 탐닉한 나머지 모험을 떠나게 되며, 풍차를 괴물로 착각해 돌진합니다. 오늘날 서부극이나 킬러 이야기, 스파이물에 빠져 이를 현실로 생각하는 이가 총기를 소유한다면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겠죠. 물론 이야기의 세계에서는 막상 그런 이들이 일상에서 예상치 않게 발생한 사건을 곧잘 해결하곤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와 현실을 뒤섞는 것은 이야기의 중요한 특징이며, 아마도 이야기가 가진 가장 큰 힘이자 위험일 겁니다.
과학소설(SF)의 이야기들은 이 시대 가장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과학을 기반으로 하기에 더 위험한 측면이 있습니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존재하며, 사람들을 더 쉽게 매혹합니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에 차용된 시간 여행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얽매인 존재입니다. 매 순간 우리는 결과를 알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간 일을 후회하고 다시 선택 이전의 시점으로 돌아가기를 꿈꿉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내용의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 있는 주제였고,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적절한 과학 이론이 이야기를 뒷받침할 때 우리는 이에 열광하게 됩니다.
멀티버스와 양자역학
과학소설이 사용하는 가설이 실제 과학에서도 논쟁적인 주제일 때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집니다.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개념 중에 멀티버스가 있습니다. 이는 1960년대,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 중의 하나로 제시된 가설로, 양자 세계의 측정을 통해 입자의 파동함수가 붕괴할 때 현실 또한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는 주장입니다.
쉽게 말하면,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측정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 상태가 특정되지 않으며, 각 상태의 확률을 나타내는 파동함수로 존재합니다. 측정은 여러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로 상태를 특정하는 행위이며, 이 과정에서 모든 가능한 선택지가 각각 선택된 다른 세계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다세계 가설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내가 다이어트 중임에도 참지 못하고 눈앞의 쿠키를 먹어버렸을 때, 다른 어딘가의 멀티버스에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내가 있다는 것이지요.
멀티버스는 마블의 영화 등 최근 여러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올해 아카데미를 석권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 자체로 멀티버스에 대한 영화입니다. 특히 멀티버스는 시간 여행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이기 때문에 과거의 잘못을 수정하는 이야기에서도 자주 사용됩니다. 문제는 현실에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반면, 멀티버스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문 번역: 멀티버스에 대한 환상은 어떻게 내 삶을 망가뜨렸나
지난 20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란에 실린 로젠바움의 글이 바로 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실을 비유적이든, 실제로든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러 사람을 이야기하며, 멀티버스 개념이 그들의 문제를 더 키울지 모른다고 우려합니다.
물론 자신이 속한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었고, 더 나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생각입니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현실에 만족한 이들보다 만족하지 않은 이들이 더 새로운 먹이를 찾고, 번식의 기회를 노렸기에 우리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부정 본능은 인간이 가진 중요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현실을 모델링하고 그 모델을 수정하는 능력인 상상력은 인간 지성의 근본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허구를 믿는 능력을 가지게 되어 오늘날의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로젠바움이 말하듯 그 능력은 또한 우리에게 카그라스 증후군이라는, 구체적으로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믿는 병을 주었습니다.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믿는 이들도 카그라스 증후군으로 분류되는데, 멀티버스 개념은 이들에게 자신을 정당화하는 과학적 근거를 준 셈입니다.
멀티버스, 과학자들 사이에선 유사과학
멀티버스를 실제로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하는 과학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다수의 과학자는 이를 진지한 과학적 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포퍼의 반증 가능성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이론이 실험으로 반증될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입니다.
테드 창의 SF 소설집 “숨”의 마지막 이야기,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바로 이 멀티버스를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다른 멀티버스와 통신할 수 있는 프리즘이라는 기계가 등장합니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던 다른 선택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궁금해하며, 더 나은 삶을 사는 다른 세상의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질투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소설의 말미에 주인공들은 깨닫게 됩니다. 지금 이 세계의 나는 바로 지금 이 세계를 만든 나의 선택의 결과 만들어진 나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리고 내게는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의무가 있으며, 프리즘은 바로 그 의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프리즘이 없어도 그런 의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세계가 내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요. 그 또한, 다름 아닌 이야기의 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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