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3월 6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곤잘레스 대 구글.
지난달 21일, 미국 대법원에서는 세간의 이목이 쏠린 사건의 구두변론이 열렸습니다. 사건의 원고는 2015년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테러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인 당시 23살 노이미 곤잘레스 씨의 유족입니다. 피고는 우리 모두 잘 아는 구글인데, 정확히 말하면 유튜브의 모회사라서 소송의 당사자가 됐습니다.
당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ISIS는 자신들이 테러를 감행했다고 밝혔는데, 원고인 곤잘레스 씨의 유족은 유튜브가 이 테러에 책임이 있다며 구글을 고소했습니다. 즉, 유튜브가 ISIS 관련 영상이나 극단주의 테러리즘을 부추기는 영상을 제대로 걸러내지 않고, 오히려 인터넷에서 버젓이 퍼지도록 방치한 결과 테러리스트를 육성하는 데 한몫했다는 겁니다. 테러리스트가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테러에 가담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직접적인 증언은 물론 없지만, 정황상 유튜브에 떠도는 많은 영상이 극단주의 사상이 퍼지는 데 분명히 기여했다고 원고는 주장합니다.
피고인 구글은 인터넷 기업은 웹사이트나 플랫폼에 올라온 이용자의 글, 댓글, 또는 이용자가 제작한 영상 등 콘텐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법으로 맞섰습니다. 1996년에 의회가 제정한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 230조가 바로 그 조항입니다. 이 문제는 비단 이번 사건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인터넷 플랫폼과 빅테크 기업의 책임과 관련해 자주 논의된 사안입니다. 인터넷의 미래가 이 논쟁의 결과에 달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죠.
오늘은 먼저 통신품위법 230조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탐사보도 전문기자 줄리아 앵윈의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전문 번역: 법이 더는 빅테크 기업의 만능 방패로 쓰여선 안 된다
인터넷 플랫폼은 서점인가? 언론인가?
구두변론을 직접 취재한 뉴욕타임스 대법원 담당 아담 립택 기자가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 나와 당시의 공방을 생생히 소개했습니다. 립택 기자의 설명을 한 줄로 요약하면 핵심을 찌르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유튜브가 서점인 건지, 신문사인 건지 그게 중요하다.
난데없이 서점은 뭐고 신문사는 또 무슨 말일까요?
서점에는 수많은 책이 있습니다. 서점 주인이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다독가라도 서점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엄선해 진열하는 서점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서점에서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담긴 책을 팔았더라도 그 책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나 사고에 서점이 책임질 일은 없습니다.
통신품위법 230조의 핵심 조문은 다음의 26단어로 된 길지 않은 문장입니다.
No provider or user of an interactive computer service shall be treated as the publisher or speaker of any information provided by another information content provider.
1996년과는 많이 다른 지금의 온라인 환경에 맞춰 이 조문을 의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터넷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웹사이트나 플랫폼에 다른 콘텐츠 제공자가 올린 그 어떤 정보의 발행자나 발언자로 취급되어선 안 된다.
이 조항을 방패막이로 쓰는 인터넷 기업들은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같은 플랫폼을 서점에 비유합니다. 플랫폼에 올라오는 콘텐츠가 극단주의를 부추기든 혐오발언이 담겼든 그건 콘텐츠를 올린 사람의 잘못이지 그 콘텐츠 때문에 플랫폼이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서점에서 판매한 책의 내용이 이상해서 서점 주인이 처벌받으면, 서점들의 영업은 크게 위축될 겁니다. 통신품위법 230조가 폐지되면 인터넷 자체가 크게 위축될 텐데, 테크 기업들은 이를 곧 미국 사회가 가장 신성시하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거나 다름없다고 경고합니다.
원고 측 변호사의 관점은 다릅니다. 유튜브는 서점이 아니라 언론사에 가깝다고 원고 측은 주장합니다. 언론사는 소속 기자들이 쓴 기사나 촬영한 영상, 콘텐츠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심지어 외부인이 기고한 칼럼도 어느 정도 그렇습니다. 보통 신문사가 “칼럼의 주장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하다”는 식의 글귀를 써두긴 하지만, 그래도 터무니없는 내용의 글이 실리면 글쓴이는 말할 것도 없고, 신문사도 “필진을 가려 뽑지 않고 뭐 하느냐”는 비판을 받죠.
원고 측이 유튜브를 언론사에 비유한 건 알고리듬 때문입니다. 매일 수백만 개의 영상이 올라올 텐데, 그 내용 하나하나를 가지고 유튜브에 책임을 묻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원고는 유튜브가 알고리듬을 통해 이용자가 관심 있을 만한 영상을 추려서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추천 알고리듬에 따라 보이는 영상들은 곧 유튜브가 엄선한 것들로, 바로 이 알고리듬이 언론사가 책임지고 기사나 칼럼을 쓰고, 신문 1면 기사나 방송뉴스 톱 기사를 정하는 편집 기능과 본질적으로 속성이 같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원고는 유튜브에 있는 콘텐츠가 이용자의 발언인 동시에 유튜브의 선정, 여과, 편집을 거친 유튜브의 발언이기도 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콘텐츠의 책임을 유튜브에도 묻는 게 당연해집니다.
원고 측 변호사 에릭 슈내퍼는 인터넷 플랫폼을 서점에 비유하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유튜브의 추천 영상은 서점에 꽂혀 있는 아무런 책이 아니라, 마치 서점이 “이달의 책”으로 뽑아 진열한 책들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 전문가가 아닙니다만?”
통신품위법이 제정된 게 1996년이니까 “응답하라 1997”보다도 1년 전의 일이네요. 눈부신 속도로 발전한 기술을 생각하면, 30년 가까이 된 법이 과연 지금의 인터넷 환경을 제대로 규제할 수 있을까요?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빅테크 플랫폼은 막대한 이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듬을 통해 거르고 고른 맞춤형 콘텐츠를 이용자에게 제공합니다. 1996년의 법은 빅데이터와 알고리듬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인터넷 기업들은 230조의 면책 조항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확대 해석합니다. 법적 책임을 면한 덕분에 인터넷 기업들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빅테크”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대법원판결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방법은 매우 어렵지만, 간단합니다. 대법관 아홉 명 중 다섯 명의 지지를 끌어내면 되죠. 대법관을 설득하기 위해 양측 변호인단은 혼신의 노력을 다하지만, 대법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달라서, 또 사안에 대한 이해도도 달라서 모두를 만족하는 묘수는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유튜브의 영상 추천 알고리듬이라는 것이 결국은 가치 중립적인, 기계적인 자동화 시스템일 뿐인 것 아니냐며, 이를 유튜브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대법관 아홉 명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토머스 대법관은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므로, 통신품위법 230조를 지키는 쪽에 투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진보적인 편에 속하는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과 오간 문답에서도 슈내퍼 변호사는 다소간의 엇박자를 내고 맙니다.
케이건 대법관은 230조의 면책 조항을 무제한 적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탄탄한 근거를 대 달라고 기회를 줬는데, 이 질문에 슈내퍼 변호사는 유튜브 영상뿐 아니라 트위터에 올라오는 트윗, 심지어 구글 검색 결과까지도 테러와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데 기여했다고 판단되면, 알고리듬을 적용한 플랫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에겐 박수받을 일일지 모르지만, 경계선에 서 있는 대법관을 설득할 때 좋은 태도는 아니죠. 케이건 대법관은 조금은 당황한 듯, 또 한 편으로는 답답한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변호인의 답변은 다소 극단적인 주장으로 들리네요. 저는 그 정도까지는 동의하긴 어렵습니다만. 지금 여기는 법원이에요. 사실 우리 법관들은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 잘 몰라요. 우리 아홉 명이 인터넷과 관련한 미국 내 최고 전문가라서 지금 여기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영상이 없어도 슈내퍼 변호사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알고리듬은 과연 중립적인가?
구글의 변호를 맡은 리사 블랙 변호사는 통신품위법 230조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담담히 풀어냈습니다. 그는 통신품위법 230조가 인터넷 기업에 무제한의 방패막이를 제공해준 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넷 기업들은 당연히 플랫폼에 올라오는 명백한 범죄나 불법 콘텐츠를 감시하고 걸러내는 데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콘텐츠를 완벽히 감시하고 걸러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불가능한 임무를 왜 못 했냐며 거기까지 책임을 지우면 인터넷 자체가 위축될 거라면서, 그는 통신품위법 230조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자고 말합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 건 다 걸러내고 나면 의미 있는 논의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가식만 남은 트루먼쇼(trueman show) 아니면 아무것도 걸러지지 않은 혐오발언, 불법 콘텐츠가 가득한 끔찍한 호러쇼(horror show)의 세상 둘 중 하나일 겁니다. – 리사 블랙, 구글 측 변호사
여기까지는 다수의 대법관이 동의하는 것 같았지만, 블랙 변호사도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케이건 대법관이 알고리듬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질문했는데, 여기에 그렇더라도 그건 인터넷 기업이 판단할 부분이고, 마찬가지로 230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답한 겁니다.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테러를 부추기는 영상을 일부러 삭제하지 않고 퍼지게 알고리듬을 짠 경우에도 플랫폼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답한 겁니다. (물론 실제로 대부분 주요 플랫폼은 테러를 부추기는 영상이나 극단주의 콘텐츠를 열심히 걸러내고 있습니다.) 플랫폼이 서점이 아니라 언론사에 가까운 행동을 해도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보수적인 대법관마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대법원은 회기가 끝나기 전인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판결을 잇달아 내놓습니다. 인터넷의 미래가 달린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줄리아 앵윈 기자의 바람대로 통신품위법 230조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판결이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건 대법원보다도 바뀐 인터넷 환경을 반영해 의회가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하는 사안인데, 이념적으로 갈라져 기본적인 입법 기능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지금의 의회가 이 중차대한 논의를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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