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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한 끼 63만 원’ 세계 최고 식당이 문을 닫은 이유는

*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글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1월 30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며칠 전 은사님을 모시고 서울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테이블이 4개밖에 없는 작은 식당이었는데, 한쪽에 있는 책장에는 요리와 미식에 관한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나란히 꽂아둔 책들을 배경 삼아 떡하니 센터를 차지한 책은 따로 있었습니다. 표지의 책 제목부터 눈에 들어왔는데, “노마 발효 가이드”였습니다.

노마(Noma)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식당으로 세계 최고의 식당 순위에서 몇 년째 수위를 다투는 식당입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도 오랫동안 별 3개를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미식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가보지는 못했더라도 이름은 익히 들어본, 아마 위시리스트에 들어 있는 식당일 겁니다. 노마의 주방장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는 “북유럽 요리를 아방가르드적으로 해석”한 이 분야의 독보적인 스타 셰프입니다.

아방가르드적인 요리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실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세간의 설명을 빌려 제 언어로 다시 바꿔보면 “창의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한 요리”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재료, 새로운 조리법, 새로운 플레이팅이 아방가르드적인 요리의 구성 요소가 될 테고요. 그러려면 노마의 주방은 단순히 요리를 만드는 곳에 그쳐서는 안 될 겁니다. 그래서 레드제피는 노마의 주방을 일종의 실험실(lab)로 만들었습니다.

음식에 관해 잘 모르지만, ‘아니, 발효하면 K 발효가 최고 아닌가? 우리가 바로 김치의 민족인데, 굳이 노마 발효 가이드를 왜?’라고 의문을 품었다가 이내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덤비지 말아야지 생각을 고쳤습니다. 분자 요리를 비롯해 온갖 실험적인 요리의 대표 주자인 노마와 레드제피라면 발효에 관해서도 뭔가 대단한 통찰을 담았을 테니까요. 그저 묵은지 김치찌개나 쿰쿰한 치즈를 좋아하는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통찰 말입니다. 노마는 그만한 권위를 가진 식당입니다.

 

아마도 뉴욕타임스 1월 최고 회자 기사

그런 노마가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식당을 경영하기 위해 노마 3.0을 준비하기 위해 휴지기를 갖겠다는 노마의 발표를 많은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제 체감상 1월에 뉴욕타임스 독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한 기사일 것 같습니다. 댓글도 2천 개 넘게 달렸는데, 단순한 감상평부터 요식업계 전반의 문제를 지적하는 주장까지 다양합니다. 노마의 발표에 관한 칼럼이 올라오면, 스프에 소개하면서 댓글만 다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뉴욕타임스 기사 댓글난에서 전체보기(All) 말고 독자 추천 댓글(Readers Picks)을 누르시면, 읽을 만한 글이 많이 나오는데, 27일 오전 현재 가장 위에 있는 댓글 둘은 이렇습니다.

자연산 밀랍 안에 아이스크림을 담아서 낸다고? 나무상자 안에 딱정벌레 한 마리가 에피타이저라고? 이건 파인 다이닝이 아니다. 그냥 돈 많다고 자랑하는 허세일 뿐이지…

이런 식당에서 밥 먹겠다고 비행기 일등석 타고 가는 사람들 있겠지. 기후 재앙 심해지고 여전히 하루 세끼 해결하기 힘든 사람도 많은데… 기사랑 다른 주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소위 최고급 미식의 세계라는 거, 또 하나부터 열까지 낭비투성인 최고급 여행 이런 거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사람들이 노마와 고급 식당, 미식에 관해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비싼 음식을 만든 사람들은 정작 급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직접 자기 식당을 경영하는 요리사 비비안 하워드가 뉴욕타임스에 올린 칼럼은 요식업계 전반에 만연한 문제를 두루 짚은 글입니다.

 

전문번역: 미식 열풍만으로는 요식업계 문제 못 고친다

 

밥 한끼에 무려 63만 원?

노마에서 먹는 한끼는 3,500 덴마크 크로네입니다. 우리돈으로 63만 원입니다. 단품으로는 주문할 수 없고, 모든 손님이 노마에서 준비한 테이스팅 메뉴의 코스 요리를 먹어야 합니다. 제가 어제저녁으로 먹은 고기국수 70그릇 값이네요. 도대체 이만한 돈을 내고 한끼를 먹일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싶지만, 노마의 테이블은 시즌마다 예약이 열리자마자 동이 납니다.

사실 제가 사는 뉴욕에도 고급 식당이 정말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값이 비싸서 저는 모르는 것뿐이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뉴욕의 최고급 스시 레스토랑 중 하나인 마사(Masa)가 800달러짜리 도시락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배달 음식이 한끼에 100만 원이 넘었던 셈인데, 그때도 많은 비난이 쏟아졌지만, 어쨌든 도시락은 매일 준비한 수량을 다 팔았다는 기사를 봤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식당 메뉴판에 쓰여 있는 가격보다 밥값을 더 내야 합니다. 메뉴판의 가격은 음식값이고, 계산서에는 거기에 세금(소비세)이 붙어 나옵니다. 그리고 팁도 내야 하죠. 팁은 손님 기분에 따라 주거나 안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서버와 싸웠거나 싸울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내야 합니다. 팬데믹 전에는 음식값의 15% 정도를 내곤 했는데, 최근에는 물가가 오르면서 팁도 최소 20%는 내는 추세입니다. 비비안 하워드도 칼럼에 썼듯이 미국 식당 종업원 가운데 음식을 나르는 서버들은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손님이 내는 팁에 수입을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그래서 서버들은 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현재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시급 7.25달러입니다. 뉴욕이나 보스턴, 시애틀 등 주요 도시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이 연방 기준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시급 15달러죠. 레스토랑 서버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는 대표적인 직종으로, 이들에게 보장된 최저임금은 연방 기준 시급 2.13달러입니다. 미국의 물가를 고려하면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뉴욕시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몇 년 전부터 팁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려고 해왔고, 올해부터 뉴욕시의 레스토랑 서버들은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일하게 됐습니다.

다시 밥값 이야기로 돌아가죠. 밥 한끼에 왜 이렇게 비싸냐고 자꾸 트집을 잡으면, 아마도 노마를 비롯한 고급 식당에선 이렇게 답할 겁니다. 사실 어차피 자리가 없어서 못 팔 정도니까 굳이 답하지 않고 무시할 것 같지만요. 그래도 친절히 답을 해준다면, 그저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다른 데 어디서도 할 수 없는 훌륭한 경험을 함께 제공”하는 거라는 식으로 답할 겁니다. 음식값이라면 재룟값에 인건비, 가게 월세 등을 더해서 원가보다 싸다 혹은 비싸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지만, 주관적인 경험에 이만큼 값을 매겼다면, 값에 대한 비판에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셈입니다.

 

업계 최고급 식당에서 ‘열정페이’라니

사실 더 충격적인 건 노마가 극도의 열정페이를 사실상 강요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관해선 하워드가 칼럼에도 링크로 소개한 또 다른 요리사 롭 앤더슨의 애틀란틱 칼럼이 아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마의 실험실(주방)에서 일하는 연구원(요리사) 가운데 절반 이상은 급여를 받지 않고 일했습니다. 덴마크 노동법상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유럽 전체에서 물가가 비싼 도시로 손꼽히는 코펜하겐에서 이력서에 “노마 주방 근무” 한 줄을 넣기 위해 젊은 요리사가 치러야 할 비용치고는 너무 비쌉니다. 석 달 동안 딱정벌레를 상자에 넣는 플레이팅만 기계적으로 반복한 결과 요리는 하나도 늘지 않았다는 전 인턴의 푸념 섞인 인터뷰를 보면 무급 인턴 관행은 더욱 불합리하게 느껴집니다.

한끼에 63만 원을 받고 음식(과 경험)을 파는 식당에서 인건비를 아끼려고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건 2023년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노마가 지금의 방식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문을 닫겠다고 한 결정적인 이유도 기사와 댓글에서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팬데믹 이후 무급 인턴 지원자가 사라졌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지속 가능한 식당을 위해 필요한 기본

롭 앤더슨은 애틀란틱 칼럼에서 제대로 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요리사의 노동을 갈취한 노마가 반성의 기미도 없이 노마 3.0을 준비하겠다고 발표한 건 위선이라고 강하게 비난합니다. 비비안 하워드도 식당이 가장 중요한 기본을 잘하려면 신선한 재료와 맛있는 음식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죠. 지금은 음식만 팔아서는 수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라서 주류 판매에 신경을 안 쓸 수 없고, (미국은) 서버들은 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두 가지만 고쳐서는 시장의 구조를 바꿀 수 없습니다. 당장 뉴욕시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인건비나 식재료도 비싸지만, 가장 큰 부담은 어마어마한 월세입니다.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목이 좋은 데 문 연 식당이 잘 되기 마련인데, 그런 곳의 월세는 어김없이 아주 비쌉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식업계에 진출한 전문 투자자들은 유망한 셰프에게 부담스러운 초기 비용을 대주고, 몇 년 안에 수익을 내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미 맛있는 음식은 크게 개선할 여지가 없으니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꾸미고, 럭셔리한 경험을 끼워 팔면 됩니다. 그 결과 뉴욕에서만 ‘가성비 좋은 맛집’ 여러 곳이 ‘쉽게 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장이 굴러가는 원리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참으로 미국다운, 뉴욕다운 변화라는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저도 노마를 예약해보려 시도해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가볼 생각은 아니었고, 코펜하겐에 갈 일이 있었는데, 과연 얼마나 예약하기 어려운지 직접 시험해보려고 6개월 전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예약한 사람들이 취소를 안 하고 실제로 가서 식사를 한 건지, 대기자가 많았던 건지, 아니면 노마가 늘 만석이라는 평판을 유지하려고 자리를 일부러 비워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끝내 제게는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비싼 딱정벌레를 ‘이게 더듬이 하나에 얼마인 셈인가’ 따져 가며 부담스럽게 먹을 일이 없었으니, 다행이기도 합니다. 대신 세계 최고의 자전거도로를 갖춰 둔 코펜하겐 구석구석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다가 노마가 운영하는 텃밭을 멀찌감치서 본 걸로 만족했습니다. 배는 길 가다 보이는 아무 카페에 들어가서 신선한 연어를 올린 오픈 샌드위치로 채웠습니다. 맥주 한 잔을 같이 마셨고, 값은 2만 5천 원 정도 냈던 거로 기억합니다.

노마 정도 위상을 지닌 식당이라면 요식업계 전체가 맞닥뜨린 구조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노마 3.0을 준비하기 위해 문을 닫는다는 노마의 이번 발표는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성찰이 너무 부족했고, 그래서 아쉽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비비안 하워드가 준비하는 새로운 셰프 앤더 파머가 더 기대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는 것이 지속가능한 요식업계를 위해 필요하다는 중요한 고민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식당 한 곳이 요식업계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죠. 요식업계는 소문이 빠른 곳이라서 성공 사례가 나오면, 다들 발 빠르게 좋은 점을 흡수하려 나설 테니까요.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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