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글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12월 19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퇴임 앞둔 55년 경력의 “미국의 의사”
12월이 되면서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로 “올해의 인물”이나 “올해의 사건”을 뽑고 정리하는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래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죠.
파우치 박사를 수식하는 말은 매우 많지만, 그의 정식 직함은 미국 국립보건원(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산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NIAID,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 소장입니다.
지난 2년간 어김없이 올해의 인물로 뽑히곤 한 파우치 소장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50년 넘게 일한 국립보건원을 떠나기로 하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미국의 의사”로 불리는 파우치 소장이 50년 넘게 일한 국립보건원을 떠나며, 자신의 소회와 당부를 담아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에 보낸 기고문을 우선 번역했습니다.
“미국의 의사”는 인터뷰 중
파우치 소장은 기고문에서 때로는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했던 의사이자 과학자의 책임감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과학자와 보건의료 전문가는 다양한 언론, 언로를 통해 적극적으로 사실을 알리고 설명해야 한다. 가장 최신의 연구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풀어 명확히 설명하는 것도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말했죠.
파우치 소장도 언급했듯이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돌아보면, 백신을 1년 만에 개발해 보급한 건 엄청난 성과지만, 반대로 정치적인 성향과 이념에 따라 백신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고 온갖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과학적인 진실로 잠재우지 못한 건 뼈아픈 실패였습니다. 그래서 과학자의 역할도, 언론의 역할도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계기였죠.
파우치 소장은 훌륭한 연구자이자 행정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뛰어난 인터뷰이였습니다. 말이 유려하지는 않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정확하고도 쉬운 언어로 풀어 설명하는 능력이 출중했습니다. 오랜 세월 정부와 대중을 설득하고 또 언론에 나가 인터뷰한 경험이 축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SBS와도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또 시사 코미디쇼 데일리 쇼(The Daily Show)에도 여러 차례 출연해 코로나19 상황을 설명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왜 필요한지, 백신 회의론자들이 왜 틀렸는지 솔직하게 인터뷰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뉴욕타임스의 파우치 소장을 떠나보내는 방법
뉴욕타임스는 파우치 소장의 기고문을 실으면서 동시에 또 다른 칼럼을 실었습니다. 55년간 수많은 전염병과 맞서 싸운 파우치 소장의 퇴임을 앞두고 뜻깊은 인터뷰를 하나 더 기획한 겁니다. 글과 함께 실을 사진을 찍은 사람에 비밀이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뉴욕타임스 사진사가 직접 촬영한 파우치 소장 사진을 쓸 텐데, 이번에는 울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라는 유명한 사진가를 섭외해 촬영을 의뢰했습니다.
틸만스는 1990년대 청소년 문화, 조경, 정물, 인물 사진으로 유명한 예술가인데, 평생 언론사를 위해 사진을 찍은 적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파우치 소장의 환송 인터뷰어이자 사진사로 고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가 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였고, 파우치 소장이 개발하는 데 힘을 보탠 치료제 덕분에 20년 넘게 건강하게 살 수 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틸만스는 자신에게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파우치 소장을 만나자마자 우선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에이즈에 이름도 붙지 않았을 때부터 저는 이 병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봤어요. 자라면서 저의 성적 정체성을 깨닫고 게이로 커밍아웃하고 나서는 제게 에이즈는 큰 공포의 대상이었죠. 1997년에 제 연인이 에이즈로 숨졌어요. 그리고 저도 양성 판정을 받았죠. 그래도 저는 마침 박사님과 동료들이 개발한 치료제를 처방받아 곧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오늘 박사님을 만나 뵙게 된된 건 뭐랄까 죽기 전에 꼭 뵈어야 할 분을 뵌 느낌이에요. – 울프강 틸만스
사실 파우치 박사는 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은커녕 오히려 무능하고 더딘 관료의 상징으로 지목돼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액트 업(ACT UP)과 같은 에이즈 퇴치 단체가 파우치 소장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죠. 틸만스도 이 점을 물었습니다.
파우치 소장은 신약을 심사하고 승인하는 과정에 있어서 미국의 관료제가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인 건 큰 문제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비판하던 이들이 끝내 자신의 진심과 과학적 진실을 알아준 순간이 가장 보람찼다고 답했습니다.
새로운 약이나 치료제를 개발했을 때 이를 심사하고 승인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게다가 당시 에이즈 치료제 연구에는 배정된 예산도 터무니없이 부족했어요.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 문제에 매달린 연구자가 저라는 게 알려지자 (액트 업 같은 단체에서) 저를 향한 비난이 시작됐죠. 그런데 제가 그 사람들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다 맞는 말이더라고요.
당시 정부는 치료제 심사 자체를 너무 엄격하게 접근하고 있었어요. 더 큰 문제는 환자 대부분이 동성애자인데도 임상시험을 포함해 심사 과정에서 동성애자를 배제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나빴을 때라서 그렇기도 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가들을 손가락질할 때 저는 늘 반대로 말하고 다녔어요. 아니다, 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야 제대로 된 신약을 개발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요.
그때 저를 욕하고 정부를 비판하던 활동가들은 모두 저의 소중한 친구들이 됐습니다. 액트 업이 시작된 뉴욕의 활동가들이 이번 달에 제 환송회를 열어주러 워싱턴에 올 예정이에요. 저를 욕하던 사람들이 제가 국립보건원에서 보낸 시간을 함께 기억하고 축하해주러 온다니,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죠. 참 감사한 일입니다. – 앤서니 파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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