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글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11월 1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 중간선거 개표 결과가 속속 업데이트되면서 선거 결과를 둘러싼 분석도 계속 추가되고 있습니다.
스브스 프리미엄에 소개한 첫 글 “미국 기층 유권자들의 이탈 부른 민주당 엘리트의 선택”에서는 세계화, 자유무역, 인공지능을 비롯한 신기술의 등장에 따라 경제적으로 뒤처진 이들의 어려움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민주당 엘리트의 실정이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 중 하나였던 노동자 계층의 이탈로 이어진 경과를 살펴봤습니다. 중간선거를 일주일여 앞두고 쓴 칼럼을 번역하고, 거기에 해설을 보태 글을 쓰면서 사실 저도 은연중에 공화당이 크게 승리할 거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개표 결과를 보면, 이른바 “붉은 파도(red wave)”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있어도 그 힘은 미미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죠. 중앙 선관위가 없는 미국은 주 정부가 주별로 선거를 관리하고 결과를 확정합니다. 땅덩이도 넓은데다 우편투표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미국 시각으로 13일 밤 현재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확정됐습니다.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 자리를 빼앗아 오는 데 만족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마저도 예상보다 의석 차이가 작은 아슬아슬한 다수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붉은 파도가 일지 않았다고 지난번에 소개한 분석이 의미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민주당이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다시 얻지 못한다면, 선거 때마다 관심이 쏠리는 중요한 경합주(swing states)에서 열세를 면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붉은 파도가 일지 않은 이유를 둘러싸고 많은 분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가 쓴 칼럼을 번역해 소개하고, 이어 뉴욕타임스 팟캐스트 데일리에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소개하는 네이트 콘 기자가 출연해 설명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전문번역 “분위기 파악에 실패한 공화당(Republicans Did Not Read the Room)” 보기
어떤 쟁점이 있었나
그 전에 선거를 앞두고 어떤 쟁점이 있었는지 시간 순서대로 되짚어보면 선거 결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먼저 지난 6월 24일 미국 대법원이 이른바 “돕스(Dobbs) 판결”을 내립니다. 보통법 국가인 미국에선 판례가 법에 준하는 효력을 지닙니다.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권한을 지닌 대법원의 판례는 그래서 헌법에 준하는 효력이 있죠. 그런 대법원이 1973년에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통해 “여성이 임신을 중지할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고 명시했습니다. 50년 가까이 유지된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게 바로 돕스 판결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보수 대 진보 6:3 구도로 바뀐 보수 우위 대법원은 “여성의 임신 중지권은 헌법이 보장하지 않으므로, 각 주 정부가 주민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라”고 판결했습니다.
9월 1일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서 한 연설을 통해 이번 중간선거를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트럼프 추종자들의 대결”로 규정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자기가 속한 당을 위해 선거 유세에 나서는 건 미국 정치에선 흔한 일이지만, 이렇게 강한 어조로 상대방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선과 악을 나누는 건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선언이 난데없는 공격은 아니었습니다. 의회는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테러의 경위를 조사하며, 그 배후에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었고, FBI도 트럼프가 불법으로 자택에 가져간 것으로 의심되는 기밀문서를 수사하는 등 미국으로서는 초유의 “전직 대통령 수사”가 가시화되고 있었죠.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이 패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공화당 경선 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해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잇달아 공화당 후보로 만드는 등 트럼프는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원래 중간선거에서는 여당 심판론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0% 안팎에 그치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 초반일 때 치른 중간선거에서는 집권 여당이 예외 없이참패했습니다. 낮은 지지율,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경제 위기라는 두 가지 요인만으로도 붉은 파도를 예상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는 듯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여성의 임신 중지권, 민주주의가 이슈로 부각되면 민주당이 유리한 선거였고, 반대로 두 가지 이슈가 드러나지 않아서 예년 같은 중간선거를 치른다면 미국 유권자들은 붉은 파도를 일으킬 예정이었던 겁니다. 결과는 이제 모두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붉은 파도는 플로리다주와 몇몇 선거구를 제외하면 거의 일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그 원인을 분석해보겠습니다.
‘투표용지 효과’ 있던 곳
돕스 판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단주의 세력의 발호, Z세대의 높은 투표율 등 민주당의 선전과 공화당의 실패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양한 요인이 구체적으로 투표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특징이 보입니다. 네이트 콘 기자가 뉴욕타임스 팟캐스트 데일리에서 한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중요한 열쇳말은 “투표용지 효과(downballot effect)”입니다.
투표용지 효과란 말 그대로 투표용지에 인쇄된 다른 선거의 후보나 의제들이 서로 미치는 영향을 말합니다. 미국은 선거로 뽑는 직책도 많고, 수많은 사안을 주민투표에 부쳐 주 헌법에 넣거나 뺄지를 정하기도 합니다. 보통 대통령 후보가 인기가 있으면 대통령과 같은 당 출신의 상, 하원의원 후보나 주지사, 검찰총장, 치안판사, 보안관, 교육감 후보도 덕을 봅니다. 투표용지 효과를 인용해 중간선거 결과를 분석해보면, 민주당은 투표용지에 임신 중지권이나 민주주의에 관한 의제가 두드러진 곳에서 선전했고, 반대로 공화당은 그런 의제가 특별히 언급되지 않은 곳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칼럼에서 소개한 것처럼 미시건, 켄터키, 버몬트, 캘리포니아, 몬태나주는 주민들에게 임신 중지권을 주 헌법으로 보장할지 물었습니다. 민주당은 이 5개 주에서 모두 선전했습니다. 지역, 인구 구성은 물론 정치적인 성향으로 보더라도 하나로 묶기 어려운 5개 주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건 흥미롭습니다. 대표적으로 미시건주를 보면, 그레첸 윗머(Gretchen Whitmer) 주지사가 10%P 넘는 득표율 차이로 재임에 성공했고, 하원 선거에서도 박빙이 예상되던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모두 이겼습니다. 미시건주 민주당 후보들은 2년 전 조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받은 것보다 대체로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미래가 투표용지에 드러났던 곳도 살펴보죠. 미시건과 마찬가지로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속했으며, 경합주로 꼽히는 펜실베니아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경선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화당 후보로 만들었는데, 펜실배니아 주지사 후보로 나선 덕 마스트리아노(Doug Mastriano) 주 상원의원이 대표적입니다. 마스트리아노는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며, 선거 결과를 무효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근거 없는 주장은 펜실베니아 유권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합니다.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시 샤피로(Josh Shapiro) 후보가 15%P 가까이 표를 더 받고 압승을 거뒀습니다.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존 페터만(John Fetterman) 후보가 트럼프가 추대한 후보 메멧 오즈(Mehmet Oz)를 꺾었습니다. 표 차이는 2년 전 바이든이 트럼프를 이겼을 때보다 더 컸습니다.
‘투표용지 효과’ 없던 곳
이번에는 붉은 파도가 인 곳, 즉 공화당이 승리한 주와 선거구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대개 투표용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36개 주는 주지사 선거를 치렀습니다. 이는 곧 14개 주에서는 주지사 선거가 없었다는 뜻이죠. 버지니아가 그렇습니다. 버지니아는 대통령 선거 이듬해인 홀수 해에 4년 임기의 주지사를 뽑습니다. 또 상원 선거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중간선거에서 버지니아 유권자들이 행사한 가장 큰 표는 2년 임기의 연방 하원의원을 뽑는 일이었습니다. 투표용지 효과가 나타날 틈이 없던 버지니아주의 선거 결과는 여느 중간선거와 비슷했습니다. 여당 심판론이 작용했고, 공화당 후보들은 2년 전에 트럼프가 바이든과 엎치락뒤치락하던 지역에서 손쉽게 승리했고, 2년 전에 바이든이 손쉽게 승리한 지역구에서 깜짝 놀랄 만한 접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플로리다주는 붉은 파고가 가장 높았던 곳입니다. 플로리다주의 대표적인 인물은 론 드산티스(Ron DeSantis) 주지사죠. 이번 중간선거에서 넉넉한 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한 드산티스 주지사는 공화당원과 지지자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손절하는 순간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를 인물입니다. 드산티스 주지사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지난 9월에 텍사스주에 있던 라티노 이민자 수십 명을 비행기에 태워 마사스비냐드(Martha’s Vineyard)로 보낸 장본인이 드산티스 주지사였습니다. 마사스비냐드는 케네디 가문의 여름 별장이 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여름마다 찾는 휴가지로, 민주당이 선거 때마다 압승을 거두는 곳입니다. 그런 드산티스 주지사지만, 이번 선거에서 중요했던 두 가지에 관해선 민주당 지지자들을 자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즉 드산티스 주지사는 임신 15주 이하의 임신 중지를 금지하는 데 꾸준히 반대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미묘하게 거리를 두며 2년 전 선거의 부정선거 여부에 관해서도 대체로 말을 아꼈습니다.
주 안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사이가 어떻냐에 따라 같은 공화당 후보의 희비가 엇갈린 경우도 있습니다. 조지아주가 그렇습니다. 2년 전 대선에서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0.23%P, 고작 11,779표를 더 받으며 조지아주에서 승리했습니다. 한 표라도 더 받은 후보가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선 매우 큰 승리, 공화당으로선 가장 뼈아픈 패배였죠. 트럼프 대통령은 결과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고, 주지사와 (선거를 관리하는) 주무장관에게 전화해 “어딘가에 나를 찍은 표가 집계되지 않은 게 분명하다, 당장 찾아내라”고 닦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지사 브라이언 켐프(Brian Kemp)와 주무장관 브래드 라핀스버거(Brad Raffensperger)는 트럼프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했고, 결과는 조지아주 민의를 투명하게 반영했다고 원칙대로 답한 겁니다.
이를 간 트럼프 대통령은 경선 과정에서 “배신자”들을 축출하려 했지만, 켐프와 라핀스버거는 모두 무난히 경선을 통과했고, 본선에도 민주당 후보를 꺾었습니다. 특히 켐프 주지사는 4년 전에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스테이시 에이브럼스(Stacey Abrams) 후보에게 8%P 가까운 큰 표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트럼프의 지지 없이도 공화당 후보가 됐고 선거에서도 이긴 겁니다. 어쩌면 트럼프와 거리를 뒀기 때문에 이겼다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켐프를 넉넉히 주지사로 뽑은 조지아주 유권자들이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꽤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지지를 받은 전직 미식축구 선수 허셜 워커(Herschel Walker) 후보는 라파엘 워녹(Raphael Warnock) 의원보다 표를 덜 받았습니다. 득표율 50%를 넘긴 후보가 당선되는 주 법에 따라 다음 달에 치를 결선 투표에서 역전승을 기대하고 있지만, 같은 공화당 켐프 후보보다 5%P 가까이 득표율이 낮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선거에서 예외 없이 투표용지 효과가 나타난 건 아닙니다. 당연히 선거구마다 쟁점이 다르고, 후보들의 면면도 제각각이므로, 다른 변수가 영향을 끼쳤을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임신 중지권과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린 선거라는 인식이 투표용지 효과로 나타나 민주당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효과를 냈고, 이 점이 여당 심판론을 잠재우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 공화당, 미국의 다음은?
트럼프 대통령의 광폭 행보에 대한 평가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보통 중간선거에서 여당 심판론이 대두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불만이 쌓였을 때 책임을 물을 만한 대상이 현 정부와 그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도 좌충우돌하긴 했지만, 안 좋은 쪽으로 더 많이 뉴스를 장식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습니다. 전례 없는 전직 대통령 수사, 기소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선거가 거대한 부정선거였다는 음모론에 집착하며, 그 음모론을 맹신하는 사람을 후보로 만들기 바빴습니다.
중간선거 결과는 트럼프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참패입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예정대로 2024년 대통령 출마를 발표할 것으로 보입니다. 공화당원들은 당보다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더 중시하는 트럼프를 한 번 더 믿어줄까요? 아니면 트럼프에게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등을 돌릴까요? 앞으로 공화당에서 벌어질 당내 경쟁이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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