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문화 현상이 된 ‘사랑의 언어’

지난 8월 27일 뉴욕타임스에는 ‘여섯 번째 사랑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글쎄요, 어지간하면 제목으로 글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이 무슨 내용일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낚시가 성공한 것이죠. 아니, 흥미롭게 읽었고 생각할 거리를 얻었으니 낚시가 아니라 글 제목을 잘 지었다고 해야겠네요.

기사는 1992년, 50대의 목사이자 상담전문가였던 개리 챕맨(Gary Chapman)이 20년간 여러 부부와 연인들을 상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펴낸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으로 시작합니다. 이 책은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판매됐습니다. 수십 개 나라에서 번역, 출판돼 2천만 부가 팔리는 전 세계적 문화 현상이 됐죠.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팔렸더군요.

챕맨이 말하는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이렇습니다. 긍정의 말(칭찬), 의미 있는 시간(어떤 일을 같이하는 것), 선물(즉흥적인 꽃다발부터 더 가치 있는 것들까지), 상대를 위한 행동(집안일이나 요리를 돕기), 신체 접촉(손을 잡는 것부터 성관계까지).

이러한 분류도 흥미롭지만, 이 책의 핵심은 아마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사람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랑의 언어가 다르며, 이 언어가 다를 때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당신과 당신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는 중국어와 영어만큼 다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당신이 영어로 사랑을 표현해도, 당신의 배우자가 중국어만 알고 있다면 두 사람은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대 알 수 없는 거죠.”

사진=Unsplash

챕맨은 이를 깨닫게 된 계기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그는 늘 자기 부인에게 그녀가 얼마나 멋있는지, 그녀가 해주는 모든 것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이야기하며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가 이렇게 말하죠. “당신이 나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왜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죠?” 여기서 그는 두 사람의 표현 방법이, 즉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흥미로운 일화이자, 여기서 깨달음을 얻은 개리 챕맨도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그에게 사랑의 언어는 ‘칭찬’이었는데, 그의 부인에게 사랑의 언어는 ‘행동’이었던 것이죠.

기사의 제목이 여섯 번째 사랑의 언어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책이 인기를 얻게 되자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지요. 어떤 이는 타코가 자신의 사랑의 언어라 말하고 다른 이는 초콜릿이라고 말하는 식이죠. 하지만 챕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걸 사서 상대에게 주었다면 ‘선물’이고, 만들었다면 ‘행동’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기만의 사랑의 언어는 대부분 내가 이야기한 다섯 가지 안에 들어갑니다.” 아, 이제 기사 제목이 이해됩니다.

따라서 이 책은 사람들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표현 방법을 새롭게 분류한 셈입니다. 분류는 과학의 영역이고, 따라서 그의 분류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분류하는 방법은 매우 많지만, 좋은 분류의 요건이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분류한 결과 한 층위의 카테고리에 드는 것들은 각각 같은 수준의 것이어야 합니다. 즉,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상위의 개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칭찬, 시간, 선물, 행동, 신체접촉은 대체로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네요. 물론 칭찬이나 시간, 행동, 신체접촉을 상대에게 선물로 주는 것도 가능하니 선물이 약간 더 상위의 개념으로 보이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 보입니다.

좋은 분류의 또 다른 조건은 각각이 상호배타적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복잡하지요. 상호배타적이라는 말은 어떤 사랑의 표현이 두 가지 분류에 모두 속한다면, 그 분류는 좋은 분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체를 설명한다는 뜻은 모든 사랑의 표현이 위의 다섯 가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어로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이 책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그의 분류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췄다는 방증일 겁니다. 여기에는 그의 표현, 곧 사랑의 언어라는 표현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간 것도 한몫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성공의 비결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누구나 하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 질문이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왜 서로 다투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였을 테고요, 그가 도달한 결론이자 많은 사람이 수긍한, 뻔하지만 중요한 답변은 이겁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세요.”

verit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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