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비행 에티켓 (2022년 판)

지난주 여름 일정을 마치고 런던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제 뒷자리에 앉은 승객이 비행 내내 제 의자를 발로 툭툭 차고, 의자 너머로 다리를 뻗으려다 제 팔을 자꾸 쳤습니다. 녹음해둔 팟캐스트 편집하려고 소음 차단 헤드폰을 꼈는데도 희미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릴 만큼 옆 사람과 나누는 대화의 데시벨도 컸습니다. 참다못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뒤돌아서 조용히 하고 발도 그만 차 달라고 말했습니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알았다고 답했지만, 10분쯤 지났을까요? 발차기와 시끄러운 대화는 다시 이어졌습니다.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 상공에 왔을 때쯤 문제의 두 승객이 잠들고 나서야 비행이 편안해졌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서 들뜬 걸까요?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혹은 아무리 좌석이 좁고 불편해서 기분이 언짢아도 그게 옆에 탄 사람의 비행을 망쳐버릴 정당한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던 차에 워싱턴포스트가 승객으로서 지켜야 할 비행 에티켓을 모아 소개했습니다. 사실 대단한 비결이랄 것도 없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을 조금만 생각해 예의를 지키면 될 일입니다. 다 아는 얘기라도 한 번씩 되새기면 좋을 것 같아서 정리했습니다.

사진=Unsplash

* 천천히 타셔도 됩니다.

앉을 자리가 정해져 있는데도 마치 늦게 타면 자리가 없어지기라도 하듯 탑승 안내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탑승구 근처에 몰려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단 나부터 타고 나서 널찍한 짐칸에 내 짐부터 올려놓으면 뿌듯하긴 하지만, 이래저래 유쾌하기 힘든 탑승 수속을 가장 빨리, 효율적으로 끝내는 법은 모든 승객이 안내대로 탑승 수속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비행기에 타는 겁니다.

자리를 찾아 통로를 지날 때는 가방이나 캐리어로 다른 승객을 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짐을 올릴 때도 의도치 않게 다른 승객을 치지 않도록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 좌석별 에티켓

복도 쪽 좌석에 앉은 사람은 안쪽 자리에 앉은 사람이 화장실에 가거나 짐을 꺼내려 드나들 때 친절하게 길을 터주고 비켜줍시다.

창가 쪽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창문을 올리거나 내리는 일입니다. 승무원이 안내하는 대로 창문(의 햇빛 가리개)을 열거나 닫아야 할 때는 물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외의 상황에도 나 때문에 잘 자던 옆자리 승객이 얼굴에 직사광선을 쬐게 하지 않도록 신경을 씁시다.

가운데 자리에 앉은 사람은 운이 없는 편이죠. 이렇다 할 특권이 없으니까요. 굳이 특권이 있다면 양쪽 팔걸이를 모두 차지할 수 있는 정도가 될까요? 대신 가운데 앉았다고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서 옆자리를 침범하는 민폐를 저지르진 맙시다.

 

* 신발은 아니어도 최소한 양말은 신읍시다.

김포에서 제주까지 한 시간 남짓 비행이 가장 긴 국내선에선 거의 본 적이 없지만, 또 국제선을 이용하는 한국 승객 가운데 그런 사람을 본 기억도 없지만, 특히 미국 공항에선 비행기를 탈 때 맨발로 다니는 승객을 종종 봅니다.

장시간 비행하면 발이 붓기도 하고, 내내 신발을 신고 있는 게 답답하긴 합니다. 그래서 몇몇 항공사들이 주는 기내용 슬리퍼를 저는 꼭 신습니다. 그런 슬리퍼를 구할 수 없다고 맨발로 비행기를 배회하는 건 공중 보건 측면에서도 좋지 않습니다. 특히 맨발로 화장실을 다녀온 다음에 다리를 쭉 뻗어 앞 좌석 팔걸이에 올려놓는 건 정말 무례한 일이죠.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있습니다. 제발 그러지 맙시다.

 

* 좌석 등받이, 어디까지 젖혀도 될까?

사실 이 문제로 시비가 붙은 끝에 주먹다짐이 오가는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이 주제 하나만으로도 밤샘 토론이 가능할 만큼 찬반 의견이 팽팽한, 그만큼 사실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내 돈 주고 산 자리 의자인데, 또 젖히라고 만든 의자를 젖히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등받이를 뒤로 젖혔을 때 침범하게 될 뒷사람의 영역도 ‘내돈내산’이라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덩치가 커서 이미 좁은 자리에 빽빽이 앉아 있거나, 좁은 테이블에 랩톱 컴퓨터를 펴놓고 일을 하고 있을 땐 등받이를 세워주는 작은 배려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겁니다. 반대로 뒷자리가 비었거나 아이가 타고 있어 공간을 침해할 걱정이 없다면 얼마든지 젖혀도 되겠죠.

저도 이 문제로 난처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뉴욕에서 암스테르담 가는 비행기에 탔을 때 일인데, 앞자리 승객이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등받이를 최대한 젖히고 잠을 잤습니다. 테이블에 랩톱 컴퓨터를 놓기 어려워져서 베개를 받치고 다리 위에 컴퓨터를 놓고 잔뜩 웅크린 채 일해야 했죠. 좀 아쉽긴 했지만, 그거야 뭐 제 자리 운이 없었던 거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앞자리 승객은 비행기 안에서 시차 적응을 마무리하겠다는 엄청난 의지가 있었는지, 밥도 안 먹고 계속 자겠다며 등받이를 계속 젖혀뒀습니다. 제가 밥을 먹기 어려워서 승무원에게 등받이를 세워달라고 해줄 수 없냐고 부탁했지만, 승무원은 그럴 수 없다며 오히려 제게 밥 먹으면서 앞자리 좌석을 치지 말라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말했죠.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누구를 콕 집어 비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 하늘 위에서의 식사

하늘 위에서 식사는 대체로 우아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 좌석이나 일등석은 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반석에서 옆자리 승객과 팔을 부딪치지 않고, 앞뒷자리 승객과 얼굴 붉히지 않고 끼니를 해결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무얼 먹을지 고를 때도 다른 이를 배려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장시간 비행에도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는 항공편이 많은데, 그래서 각자 먹을 걸 사 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 너무 냄새가 짙은 음식을 먹거나 흘렸을 때 모두가 불쾌해질 수 있는 국물, 수프를 먹는 건 자제합시다. 나한테는 군침 도는 음식 냄새가 다른 이에게는 매우 불쾌한 냄새일 수 있습니다. 특히 알아서 사 온 걸 먹게 되는 비행기는 식사 시간이 따로 없기 때문에 내가 먹는 음식 냄새, 소리가 비행기 전체를 가득 채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 잘 자기는 어차피 어렵지만…

좁은 일반석에서 숙면을 취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푹 자기 위해 다른 사람 좌석이나 영역을 침범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자기한테 맞는 목베개를 찾아 사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더라도 또 너무 푹 잠들었다가 옆자리 승객 어깨에 기대어 자는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직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입국 전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하고, 비행기 안에서도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돼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 대부분 나라와 미국은 코로나19 검사 규정도 없고, 기내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제 규정이 바뀌었으니, 마스크를 안 쓴다고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지만, 내가 마스크 안 쓰는 것과 마스크를 쓴 사람을 힐난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본인이 기저질환이 있거나 가족 중에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죠. 그런 사람은 옆자리에 탄 당신에게 혹시 마스크를 써줄 수 있는지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신념을 앞세워 단칼에 거절하기보단 공감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어떨까요? 어쨌든 마스크를 쓰면 당신도 여전히 기승을 떨치는 바이러스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가 될 테니까요. 한 번 코로나19 걸렸던 사람이 또 걸리는 재감염률도 제법 높아졌다는 기사를 봤던 것 같습니다.

 

* 천천히, 순서대로 내립시다.

탈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전체적으로 가장 빨리, 효율적으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방법은 앞자리에 앉은 승객부터 순서대로, 천천히 내리는 겁니다. 내 짐부터 내리고, 나부터 나가겠다고 가뜩이나 좁은 통로에 나를 들이미는 건 곧바로 병목 현상을 일으킬 뿐입니다. 환승 시간이 촉박한 경우엔 승무원에게 미리 부탁하면 승무원이 먼저 내릴 수 있도록 조처를 해줄 겁니다. 이때 환승할 것도 아닌데 통로를 막고 있는 승객이 있다면 정말 얄밉겠죠. 어차피 입국 수속이나 수하물로 부친 짐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서두른다고 집에 먼저 가는 거 아닙니다. 천천히 내리는 게 가장 빨리 내리는 비법이라는 점 잊지 맙시다.

 

사실 지난주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저를 괴롭혔던 승객은 앉아있을 땐 몰랐는데, 내릴 때 보니 구척장신에 몸집도 컸습니다. 제 의자를 약 100번 정도 툭툭 찼을 텐데, 그중에 50번은 정말 자기도 모르게 발끝이 닿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에티켓도 중요하지만, 너무 에티켓만 강조하다 보면 이윤을 더 내려고 가뜩이나 좁던 좌석 간격을 더 좁힌 항공사의 잘못을 간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말했듯이 “에티켓 지키는 데 돈 드는 거 아니니”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모두가 즐거운, 혹은 상대적으로 덜 괴로운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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