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戰)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21세기 초 미국이 전 세계에서 벌인 ‘테러와의 전쟁’ 때만 해도 없었지만, 요즘엔 거의 빠짐없이 쓰이는 전술적인 핵심 무기가 바로 드론입니다.
지난 4월에 뉴욕타임스는 미국 공군 소속 드론 조종사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고발했습니다. 조종사들은 라스베거스 근처의 평범한 사무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밀 군사 시설)에 매일 출근해 지구 반대편의 드론으로 작전을 수행하는데, 예전에는 할 수 없던 명령을 수행하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비롯한 참전 군인들이 겪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드론은 전력의 열세를 단번에 만회할 수 있는 매력적인 무기입니다. 이는 곧 전쟁에 쓸 수 있는 최신식 드론을 누구나 확보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지구상에 파괴적인 분쟁이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UN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드론의 무분별한 수출을 금지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제 사회의 규범을 무시한 채 “전 세계 모든 나라를 고객으로 삼고” 드론을 수출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터키인데, 미국 탐사보도 전문 매체 프로 퍼블리카가 전 세계 곳곳의 전장에서 발견되고 있는 터키산 드론 TB2의 공급망을 분석했습니다.
TB2를 제조하는 회사는 바이카르 테크놀로지(Baykar Technologies)라는 회사입니다. 바이카르 테크롤로지의 최고기술이사(CTO)는 MIT 출신의 셀주크 바이락타르(Selçuk Bayraktar)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위입니다. 바이카르는 2015년에 “터키 자체 기술로” 군용 드론인 TB2를 만들었는데, 실전에서 우수성이 입증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의 고객”이라고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말한 장본인도 바이락타르입니다.
에티오피아 정부군은 티그레이 인민해방전선 소속 반군을 몰아내는 데 TB2를 활용해 효과를 봤습니다. 2020년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와 국경 분쟁에서 6주 만에 승리를 거뒀는데, 마찬가지로 같은 해 사들인 TB2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효과적으로 맞서 싸우는 데도 TB2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문제는 드론이 전장에서 목표한 공격 대상 외에 무고한 민간인을 자꾸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UN 보고서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정부군이 TB2를 활용해 벌인 작전에서 무고한 민간인 304명이 숨졌습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완성품 드론이나 드론을 제작하는 데 쓰이는 핵심 부품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터키는 2019년에 UN의 무기 금수 조치를 어기고 리비아에 드론을 수출해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해당 제재 대상이 된 나라가 주로 중국과 이란 등 미국의 적대국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 안에서 실질적인 제재가 이뤄졌죠. 그러나 터키는 모두 알다시피 나토(NATO) 회원국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반인도적인 전쟁을 부추기는 드론 수출을 자제해야 한다는 식의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 뿐 사실상 드론 수출을 제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카르는 TB2를 터키 국방 기술의 요체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 TB2 제조에 쓰이는 핵심 부품 여럿이 미국이나 유럽 나라에서 생산돼 공급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미국 로버트 메넨데즈(Robert Menendez, 민주, 뉴저지) 상원의원은 미국산 부품이 TB2의 핵심 부품으로 쓰여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분쟁의 사상자를 늘리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며, 미국이 터키의 드론 수출을 억제하도록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TB2에 쓰이는 고화질 비디오카메라가 미국에서 생산됐는데, 이런 카메라는 자율주행 자동차에도 쓰이는 제품으로, 수출 금지 품목에 해당하는 군수 물자가 아니라 상업적 무역이 허용된 제품입니다. 중국이나 이란처럼 미국이 나서서 경제 제재를 하는 나라인 경우에는 이렇게 상업적 물품이면서 동시에 군사적으로도 쓰일 수 있는 이른바 이중 용도 제품의 수출을 품목 별로 금지하기도 하지만,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제재 대상국이 아니라서 부품을 수급하는 데 전혀 제약이 없습니다.
반인도적인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금수 조치를 어긴 터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현대 전쟁의 공급망을 자세히 따져보면, 드론의 제조사나 그 나라 하나만 비난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TB2의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제공한 회사, 나라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2020년 10월, TB2에 쓰이는 카메라를 비롯한 핵심 부품의 터키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할 뿐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죠.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러시아와 미국(나토)의 대리전처럼 전개되면서 우크라이나를 더 강력하게 무장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나토 회원국 안에서 높아졌습니다. 앞서 핵심 부품 수출을 중단했던 캐나다 정부도 우크라이나에 TB2를 공급하기 위해 수출 금지 조치를 일시 해제했고, 미국의 롭 포트만(Rob Portman, 공화, 오하이오) 상원의원은 아예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TB2를 최대한 빨리 제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국제 사회가 무고한 민간인 학살을 줄이고 분쟁의 확전을 억제하기 위해 인도적인 차원에서 드론의 수출을 억제하는 실질적인 제도를 마련할지, 아니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무줄처럼 달리 적용할 수 있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지 앞으로 상황을 주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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