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미국 언론 폴리티코(Politico)는 여성의 임신중절 권한을 헌법의 권리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미국 대법원이 뒤집으려 한다는 의견문 초안을 단독 보도합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이에 관해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세 편의 글을 연달아 썼습니다. 그 글을 순서대로 싣습니다.
지난주 임신중절권을 보장한 이른바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는 내용의 대법원 판결문 초안이 유출, 공개되면서 엄청난 파문이 일었습니다. 임신중절권이 헌법상의 권리라고 판결한 1973년의 판결이 (이 초안의 내용대로) 뒤집힌다면 관련법을 제정, 시행하는 건 주정부 소관이 됩니다.
현재 미국 연방의회의 구성을 고려하면 연방의회 차원의 조치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장이 워싱턴을 벗어나 각 주의 주도로 분산되는 셈이죠. 미국은 올해 11월, 상원의원 일부와 하원의원 전원, 일부 주의 주지사를 선출하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문 초안 유출 사태가 선거에 미칠 영향에 자연히 큰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임신중단을 둘러싼 해당 주의 정책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출된 문서의 내용을 처음 보도한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자체 제작 영상을 통해 임신중절 이슈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섯 개 주를 꼽았습니다. 지금까지 임신중절 이슈는 경제나 안보, 의료 등에 비해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인의 과반이 “로 대 웨이드”를 뒤집는 것에 반대하고 있고, 이번 유출로 대법원의 잠정 판결에 반대하는 세력이 크게 반발, 결집하면서 선거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영상에서 주목하고 있는 주는 펜실베니아, 미시건, 위스컨신, 플로리다, 그리고 텍사스입니다. 펜실베니아, 미시건, 위스컨신의 경우 현 주지사가 민주당 소속이지만, 주의회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데다 “로 대 웨이드”가 파기되면 자동으로 부활하는 19세기, 20세기 초의 주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박빙인 주지사 선거 결과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한편, 미국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텍사스와 세 번째로 많은 플로리다는 공화당이 이미 주의회와 주정부를 모두 장악한 상태입니다. 공화당 주지사와 의회는 꾸준히 임신중절권을 제약하고 금지하며, 심지어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과 정책을 도입해왔기 때문에 “로 대 웨이드”가 파기되면 임신중절권을 앞장서서 제약할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은 유출된 판결문 초안 내용에 반발하면서도 이번 사태가 지지층 결집과 투표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보도 직후 민주당 정치인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판과 우려를 쏟아냈습니다. 격앙된 언어와 사적인 고백이 이어졌고, 이번 사태를 선거의 중심 이슈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드러났습니다.
반면 공화당 소속의 중앙 정치인들은 대체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를 뒤집는 것이 공화당의 오랜 염원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위한 대법관 지명을 아예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승리의 순간이 매우 조용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여론이 부정적인 만큼 유권자들의 반발과 역풍, 부동층의 변심을 고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화당은 이번 중간 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인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물가 인상, 범죄, 불법 이민 등의 문제를 부각함으로서 승기를 잡고자 했는데, 임신중절권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는 사태는 이러한 계획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유출된 문서의 내용보다 문서 유출 자체에 우려를 표한 미치 맥코널 상원 원내대표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임신중절권에 반대하더라도 큰 소리로 극단적인 의견을 표명하기보다 온건하고 타협적이며 공감 능력을 갖춘 존재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권유되는 전략입니다.
한편, 이번 사태가 선거에 생각만큼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미 실질적으로 임신중단이 금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텍사스 같은 곳에서 이를 추진한 공화당 주정부가 거의 아무런 정치적 타격을 입지 않았고, 민주당 성향의 주에서는 “로 대 웨이드”가 뒤집힌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미국 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피임 수단에 대한 접근권이 향상되면서 임신중절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도 이슈의 폭발성을 낮출 수 있는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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