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세상을 떠나는 다른 방식

탄생과 죽음은 한 인간에게 일어나는 가장 큰 사건이자 주변 사람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죽음은 인간이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갈지를 우리가 선택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사건입니다.

미국의 온라인 과학잡지 언다크는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자신의 장례 방법으로 선택해 널리 알려진 수분해장(수화장)을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수분해장이란 시신을 화장하는 대신 강알칼리 용액에 넣고 열을 가해 녹이는 방법입니다. 대략 서너 시간 뒤에는 뼈를 제외한 부위가 모두 녹아 액체가 되고 뼈만 남게 됩니다. 이 뼈를 갈아서 유골함에 담아 유가족에게 전달합니다.

수분해장을 지지하는 이들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방식이 친환경적이라는 것입니다. 한 연구는 매장과 화장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64유로와 48유로지만, 수분해장은 단 3유로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매장은 땅을 파야 하므로 그 자체로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화장은 시신을 태우는 데 화석 연료가 들고 또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방출됩니다. 물론 이 양은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에 비해서는 크지 않습니다. 화장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0.02%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화장 과정에서 치아의 아말감이 수은 기체로 바뀌어 공기 중으로 날아가며, 그 외에도 유독한 물질이 대기로 방출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선종한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의 장례는 수분해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사진=위키피디아

수분해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신체가 강알칼리 용액에 녹는 과정이 땅에 매장된 시체가 수십 년에 걸쳐 분해되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단지 시간이 서너 시간으로 줄어드는 점이 다를 뿐이라는 겁니다.

물론 수분해장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는 수분해장을 합법화해달라는 청원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시신을 녹이는 행위가 시신의 존엄성을 헤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아직 많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녹인 폐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도 아직 합의할 만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자기 가족이 하수구로 흘러간다는 것은 하늘로 날아가는 것과 분명 다르게 느껴집니다.

사실 이는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보편화된 화장도 한때는 새로운 시신 처리 방법이었고, 많은 이들이 반대했습니다. 화장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넘쳐나는 시신을 모두 매장하지 못해 찾게 된 방법입니다.

인류 역사의 상당 부분을 지배한 기독교는 부활을 중요한 교리로 삼고 있고, 부활의 이미지 중에는 무덤에 있던 이들이 다시 일어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화장은 그러한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이 방법이 전 세계에 이렇게 보편적으로 퍼진 사실은 어떻게 보면 다소 놀랍기도 합니다.

사실 시신을 처리한다는 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신체가 차지하는 공간, 곧 부피를 줄이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화장은 화학 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수분해장 역시 화학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몇 시간이라는, 아직은 긴 시간이 걸립니다.

SF 소설에는 인간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레이저총이 종종 등장합니다. 아직은 상상 속의 도구이지만, 언젠가 인류가 에너지를 더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다면 시신 처리 분야에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겠지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이러한 기술이 범죄에 미칠 영향입니다. 수많은 스릴러 드라마에서 시신의 처리는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이며, 이 과정에서 많은 범죄의 전말이 밝혀집니다. 얼마 전 인기를 끈 인터넷의 글 중에는 외국의 범죄조직이 동물 처리용 화장 장치를 실은 자동차를 이용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시신을 더 쉽게 처리하는 기술이 등장한다면, 이를 나쁜 마음으로 반길 이들이 어딘가에는 있겠지요. 물론 이를 막기 위한 기술도 개발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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