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인의 제보(?)로 알게 된 코로나19 백신에 관해 퍼진 잘못된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백신 관련 가짜뉴스 중에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놀랐지만, 찾아봤더니 우리말로 쓴 기사나 전문가 인터뷰 중에서도 잘 정리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가짜뉴스는 분별력이 있을 것 같던 이들의 마음을 사는 데 버젓이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건강과 관련한 가짜뉴스가 퍼지는 배경과 관련해 더불어 생각해볼 만한 복스의 칼럼을 함께 소개합니다.
가짜뉴스의 생리, 이야기가 와전되고 퍼지는 과정에 관한 분석은 오늘 소개하는 칼럼에도 나옵니다. 어쩌면 중요한 결론이 글의 말미에 등장하다 보니, 사람들이 기사를 다 읽지 않고 섣불리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글은 다 읽기 귀찮으신 분 (또는 유료 구독 회원이 아니며 이번 달 무료 읽기 횟수를 다 쓰신 분)을 위해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코로나19 백신이 유산이나 불임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과학적 증거가 없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이 임신,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가짜뉴스입니다. 다만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 목록에 여성의 월경 주기가 불규칙해지거나 월경 때 평소보다 피가 더 많이 나고 월경통이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을 추가해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해 보입니다.
지난해 5월, BBC는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으로 여성의 월경 주기가 불규칙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BBC 코리아 번역 기사)
백신을 맞고 하루이틀 고열, 두통, 몸살을 앓거나 주사를 맞은 쪽 팔에 근육통을 겪은 분들 많을 겁니다. 저도 2차 접종 후엔 독감 걸린 것처럼 아주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BBC는 기사에서 월경 불순도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에 포함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소개했습니다. BBC가 기사 단락을 나누며 단 소제목만 훑어보면 기사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복스에 의료/건강 관련 기사를 쓰는 역학자이자 내과 의사 케런 랜드만(Keren Landman) 선임 기자는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우선 가짜뉴스가 이렇게 급속히 퍼지지 못하게 미리 막을 수 있었는데, 때를 놓쳤습니다. 환자가 마땅히 느끼는 불안을 의사와 연구자들이 간과한 것도 다른 이유였습니다.
지난 1월 미국 국립보건원(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은 “코로나19 백신이 여성의 월경 주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관련 연구 가운데 동료 심사(peer-review)를 거친 첫 논문이었습니다. 논문의 결론은 BBC 기사의 설명과 같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으로 여성의 월경 주기가 잠시 바뀔 수 있지만, 백신이 임신이나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죠.
월경 주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습니다. 그 가운데 면역 체계도 있는데, 면역 체계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월경 주기가 바뀔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은 면역 반응을 일으켜 항체를 만들기 때문에 한두 차례 월경 주기가 바뀌는 건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이었고, 실제로 많은 사례가 보고됩니다. 그런데 의사와 의학 연구자들은 월경 주기가 바뀌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목록에 이 내용을 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이 월경 주기가 바뀌었다고 놀라 당황해하자 오히려 그 모습에 놀랐습니다.
백신 관련 가짜뉴스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놀랐습니다. 가짜뉴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새빨간 거짓말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대부분 사실인데 한두 가지만 방향을 살짝 튼 거짓말이나 타당한 의혹이 섞이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엔 코로나19 백신이 월경 주기에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까지는 사실이지만, 그게 여성의 임신, 출산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건 거짓인 셈이죠.
문제는 주장을 주장으로 반박해선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즉,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려면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와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19 백신을 이제 막 접종하기 시작한 시점에는 당연히 데이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월경 불순이라는 예견된 부작용에 대한 해명도, 그와 관련해 퍼지기 시작한 ‘백신이 불임으로 이어진다’는 식의 명백한 가짜뉴스에 대한 반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데이터 공백 때문에 가짜뉴스가 활개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입니다. (이와 관련해 데이터 공백을 감안하더라도 이른바 선제적 반박(prebunking)을 통해 가짜뉴스가 퍼지지 못하게 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면 월경 주기가 일시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데이터를 토대로 진행한 연구 결과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백신이 산모나 태아의 건강에 나쁘다거나 유산, 불임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모두 근거 없는 주장으로 판명됐습니다. 오히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임신, 출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임산부가 백신을 맞지 않았다면 특히 더 위험합니다.
데이터 공백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생긴 거라면 몰라도 연구자들이 관행적으로 데이터를 간과하고 누락한 탓에 발생했다면, 특히 그로 인해 가짜뉴스가 더 퍼지게 됐다면 문제겠죠. 사실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은 연구에 여성의 건강 관련 항목을 포함하도록 법이 제정된 것이 불과 29년 전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백신이 여성의 월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2015년에 미국 산부인과 협회(ACOG)가 일선 병원에서 월경 주기를 “다섯 번째 바이탈 사인(fifth vital sign)”으로 정하자는 캠페인까지 벌였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연구자들과 일반인들의 월경 주기에 관한 인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 산부인과 협회는 21~35일 사이에 월경이 일어나면 이를 ‘규칙적’이라고 정의합니다. 물론 수면, 흡연, 식습관, 스트레스를 비롯해 월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워낙 많다 보니 월경 주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월경통의 정도나 출혈량은 같은 사람이라도 매번 달라집니다. 정상의 범주를 저렇게 넓게 잡은 것이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개인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범주가 넓습니다.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부부나 반대로 피임을 하는 커플에게는 월경이 하루나 이틀만 늦춰져도 큰 일이 난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의학 연구자들은 대개 백신 때문에 월경이 하루나 이틀 늦춰지는 것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다 보니 백신의 부작용에 굳이 그 내용을 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월경 주기가 아주 규칙적이던 사람은 백신을 맞고 나서 월경이 하루만 늦춰져도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 목록에도 주사맞은 팔이 아프고 열이 날 수 있다는 말만 있지 월경 주기에 관한 말이 없으니 더 불안한 겁니다.
복스 기사는 세 편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두 편은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동료 심사를 거쳐 정식으로 게재된 논문은 코로나19 백신이 월경 주기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월경 중인 여성 4천여 명이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동의하고 연구에 참가했습니다. 이 가운데 약 2/3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는데, 백신 접종 이후 첫 번째 월경은 평소보다 평균 0.7일 정도 늦게 일어났습니다. 백신을 맞은 사람은 90% 이상이 두 차례 나눠서 접종해야 하는 mRNA 백신을 맞았는데, 2차 접종 이후 월경 주기는 평소보다 0.9일 늦춰졌습니다. 특히 한 번의 월경 주기 안에 백신을 두 번 다 맞은 경우 월경이 늦어질 확률이 높았고, 월경이 늦춰진 사람 중에 11%는 월경이 8일 이상 늦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월경 주기는 두 번의 주기 안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의학적으로 크게 우려할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일반인들이 느끼는 불안을 일축하는 건 의사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사회과학자나 가짜뉴스의 폐해를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다행히 코로나19 바이러스 외에 다른 백신이나 약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월경에 미치는 부작용이 우려될 때 이를 경고에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종종 난기류를 통과할 예정이니 자리에 앉아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실제로 기체가 흔들릴 때도 있지만, 안내방송만 나오고 별 문제 없이 지나갈 때도 있죠. 그렇더라도 미리 주의를 받으면 갑자기 예고도 없이 상황이 발생하는 최악의 경우는 면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코로나19 백신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2차 접종 후에 정말 심한 몸살을 앓았는데, 극심한 오한 때문에 여름에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백신을 맞고 나면 고열, 오한 등 독감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플 수 있다고 경고한 대로 아팠고, 참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예고한 시간이 흐르니 실제로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월경에 관해서도 이런 경고가 포함됐다면 백신이 불임으로 이어질 거라는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는 지금처럼 발을 붙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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