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경제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디지털 시대의 경쟁 정책에 관해 펴낸 보고서에서 디지털 경제의 특징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아마존은 위 세 가지를 모두 적용해볼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공룡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와 관련해 생각해볼 것이 많습니다. 아마존이 자체 브랜드를 밀어주기 위해 검색결과 알고리듬을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관해선 팟캐스트 아메리카노에서, 또 앞서 프리미엄 콘텐츠를 통해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죠. (플랫폼 경제 독점 기업의 초상화: 아마존 검색결과)
오늘은 아마존이 5년 전 137억 달러(약 16조 원)에 인수한 마트 홀푸즈(Whole Foods)를 통해 식료품, 잡화 유통 시장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그동안 홀푸즈는 주인이 바뀐 뒤에도 크게 바뀐 점이 별로 없었는데, 최근 워싱턴 D.C.에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새로 문을 연 홀푸즈 매장을 보면 아마존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서 테크 분야 정책과 관련해 기사를 쓰는 시실리아 강 기자가 마침 본인이 사는 동네에 있는 매장에 직접 다녀와 쓴 기사를 토대로 홀푸즈의 아마존화(化)를 전망해 봤습니다. 핵심은 이번에도 데이터였습니다.
* 플랫폼 경제와 반독점 규제에 관해 아메리카노에서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책을 펴냈습니다.
워싱턴 D.C. 글로버 파크(Glover Park)라는 동네에 있는 홀푸즈 매장이 새단장을 마치고 문을 열며 선보인 새로운 쇼핑 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한 슬로건은 이렇습니다.
바로 나가시면 됩니다(Just Walk Out)
가게에 들어서면서 마치 웹사이트나 앱에 로그인하듯 내 정보를 입력하고, 물건을 쇼핑 카트에 담은 다음 별도의 결제 없이 바로 장 본 물건을 담아 체크아웃하듯 나가면 나중에 홀푸즈(아마존)에서 결제한 뒤 내역을 보내줍니다.
지금 설명한 쇼핑이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선 아마존에 내 이용자 데이터가 등록돼 있어야겠죠. 아이디에 신상과 함께 결제 정보가 연동돼 있어야 알아서 대금을 정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슨 물건을 얼마나 장바구니에 담는지 그때그때 실수 없이 확인, 추적하기 위해 수많은 카메라, 센서가 매장 전체를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고객이 장바구니에 넣은 물건은 알아서 가상의 장바구니에 실시간으로 기록됩니다. 똑같은 아보카도라도 유기농인지 아닌지 계산원이 일일이 확인한 다음 바코드를 찍어 값을 매기지 않으므로 정확도가 무척 중요한데, 이 작업은 딥러닝 소프트웨어가 맡습니다.
로그인/체크아웃 과정은 어떻게 할까요? 시실리아 강 기자의 기사를 보면, 매장 입구에서 직원이 친절하게 두 가지 선택지를 설명해 줍니다. 아마존 앱에 있는 개인 식별 QR 코드를 찍어도 되고, 아예 장문(掌紋)을 등록한 다음 손바닥을 스캐너에 인식해 매장 출입문을 열 수 있습니다. 손바닥 정보를 한 번 등록해두면, 다음번에 귀찮게 스마트폰 앱을 여는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홀푸즈 쇼핑에는 자율주행 차량의 센서, 카메라와 정확히 같은 기술이 쓰입니다. 냉장고와 매대에 놓인 모든 물건 아래 있는 센서와 전지적 관찰자의 시점으로 매장을 조망하고 있는 카메라가 고객의 모든 행동을 빼놓지 않고 기록할 수 있어야 물건값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습니다.
글로버 파크에 있는 홀푸즈 매장은 문을 연 지 20년도 더 된 곳인데, 4년 전 땅 주인과 분쟁이 있었고, 갑자기 쥐가 들끓어서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아마존은 새단장을 마친 매장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쇼핑 경험을 도입했습니다. 올해 안에 로스앤젤레스에 문을 여는 또 다른 홀푸즈 매장도 Just Walk Out 시스템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아마존의 소매 사업 담당자는 고객들이 장을 다 본 뒤 결제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싫어한다는 점에 착안해 이번 사업을 추진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나가시면 됩니다”는 곧 고객의 소중한 시간을 아껴주는 ‘똑똑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의 반응에선 분명한 온도 차가 느껴집니다. 아주 편리하고 혁신적인 기술이라며 반기는 이들도 있지만, 아마존이 홀푸즈를 통해 마침내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를 구현해 냈다며 크게 우려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당장의 불만은 주로 사소한 계산상의 실수나 오류, 무게를 달아 팔던 물건을 규격화된 개수로 파는 데서 오는 듯합니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마주친 이웃과 이야기도 나누고 깜빡하고 안 가져온 물건이 생각나면 후다닥 뛰어가서 들고 올 수 있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섞여 있을 수 있죠.
아마존은 데이터와 개인정보의 사용에 관한 더욱 근본적인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매장 내를 촬영한 내용을 비롯해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모은 데이터를 맞춤형 광고나 제품 추천 알고리듬에 활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Just Walk Out 시스템을 이용하기 싫은 고객은 물건을 집어 들고 셀프 계산대에서 신용카드나 현금으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아마존에서 회원 가입하지 않고 게스트로 물건을 사는 것과 같은 거죠. 회원에게만 제공하는 할인 혜택은 받을 수 없지만, 개인정보를 아마존에 주기 싫은 고객에게도 선택지는 있는 셈입니다.
글로버 파크 홀푸즈 가게 입구에는 매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매장 안에서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금지한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있습니다. 시실리아 강 기자는 고객의 일거수일투족은 빠짐없이 촬영하는 카메라가 자기는 절대로 찍어선 안 된다고 경고하는 듯한 상황이 아이러니로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홀푸즈 매장 두 곳의 중간 지점에 살고 있습니다. 기사를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똑같이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홀푸즈 두 곳 가운데 저는 거의 한 곳만 가고 있었습니다. 물거의 질, 양, 가격 모두 크게 차이가 없는 두 매장인데, 제가 한 곳만 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매장에선 계산대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우리 동네에 “줄 서지 말고 바로 나가도 되는” 홀푸즈 매장이 들어서면 그곳을 애용하게 될까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관해 확답하기는 어렵지만, 또 이미 아마존은, 구글은, 페이스북은, 애플은 제 개인정보에 관해 더 궁금할 것도 없이 다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꺼림칙한 마음 때문에 쉬이 손바닥을 내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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