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다윈’이라고 불리던 진화생물학자 E.O. 윌슨이 지난 12월 26일 92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국내 언론에서도 부고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지만, 오늘은 윌슨 교수와 지난해 11월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추려 다시 올린 복스의 기사를 요약해 소개합니다. 뉴욕타임스 과학 칼럼니스트 칼 짐머가 쓴 부고 기사도 참고했습니다.
고 윌슨 교수는 실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 가운데 ‘종 다양성(biodiversity)’이란 말을 고안해 주창한 것으로 가장 유명할 겁니다. 인간 외의 다른 생물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이 그저 돈 많은 사람의 진기한 취미 정도로 취급받던 1950년대에 하버드에서 곤충학을 전공한 윌슨은 인간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은 곳도 마다하지 않고 전 세계를 누볐습니다. 그는 수십 가지 새로운 개미를 발견했고, 개미를 분류하는 기준을 세웠으며, 생물학의 분야를 개척하는 데 기여한 수많은 발견을 토대로 생물종에 대한 통찰이 담긴 30권 넘는 책을 썼습니다. 퓰리처상도 두 번이나 받았을 만큼 뛰어난 작가였던 윌슨 교수의 전기는 지난해 11월 새로 나왔습니다. 그가 쓴 책 제목이었던 “절반의 지구(Half-Earth:Our Planet’s Fight for Life,지구 절반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지 않으면, 대량 멸종을 피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담은 책)”에서 이름을 딴 절반의 지구 프로젝트는 지구에서 사라져가는 수많은 생물을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윌슨 교수의 제자들 가운데는 국내의 석학들도 있습니다.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가 그중 한 명인데요, 최재천 교수는 유튜브 채널에서 스승인 윌슨 교수를 애도하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도 했습니다.
Q. 교수님의 책을 읽고 미지의 세계를 누비며 생물 연구에 뛰어든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지구상에서 사람의 발길,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지 않나요?
A. 분명 제가 연구를 시작했을 때보다 새로 탐험할 만한 곳이 줄어든 건 사실입니다. 1955년에 제가 파푸아뉴기니에 있는 사루와게드 레인지라는 산 정상에 그곳 주민을 제외하곤 처음 올랐습니다. 새로운 것을 더 알고 싶은 과학자의 욕망이 있었기에 4,000m에 이르는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죠.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분명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인류가 발견하고 분류해 기록한 적이 없는 수많은 생물종이 있습니다.
A. 두 가지 모두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상에 대략 1천만 종의 생물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종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죠. 다양한 생물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면 무엇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둘 다 중요하다는 겁니다.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Q.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A. 물론입니다. 전에 했던 것보다 한 발짝만 더 내디딘다면, 한 군데만 더 살펴본다면 새로 발견할 수 있는 게 많을 겁니다. 특히 눈에 잘 띄지 않는 개미나 식물 등을 연구하는 일은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지구를 보전하기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는 종이 있을 겁니다. 어떤 생물이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이 남은 생물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발견하고 알아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Q. 인간의 행동을 생물학의 관점에서 분석하신 연구도 많이 하셨잖아요. 개미나 곤충의 생태계를 연구하시면서 인간의 행동에 관한 시사점을 얻으셨나요?
A. 어렸을 때 집 근처 마을을 뛰어놀다가 개미에 관심이 생겼어요. 불개미 군집을 관찰하게 됐고, 개미들이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이용해 서로 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개미들도 엄연한 사회가 있던 겁니다. 자연히 다른 생물종이 어떻게 무리를 이뤄, 사회를 꾸려 살아가는지 보게 됐고, 인간도 여기에 포함됐던 거죠. 다양한 생물종이 어떤 감각을 활용해 소통하고 무리를 이루는 규칙을 정하는지 정리한 연구는 사회생물학이라는 분과를 낳았습니다. 사회생물학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물론 인간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사회생물학을 더 널리 알리고 정착시키기 위해 하셨던 일 가운데 아쉬운 점은 없으신지요?
A. 사실 생물학은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순간 수많은 비판에 시달려 왔어요. 다윈이 진화론을 펴자 “사람의 조상이 원숭이란 말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던 걸 생각해보세요.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행동 또한 인간이 꾸린 사회 구조의 진화, 사회적 행위의 진화 관점에서 이해할 때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어요. 반론이 물론 많았지만, 과학적 연구를 통해 발견한 근거가 확실했기에 살아남았고, 이제는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Q. 사실 저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반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게 두렵기도 해요. 예를 들어 저는 동성애자인데, 동성애의 근원을 생물학적으로 밝혀냈을 때 그게 만약 예기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만한 발견이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죠. 무언가를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A. 아뇨, 없습니다. 인간은 다른 모든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생태계 안에서 진화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능력을 쏟아부어 수행한 투명하고 정직한 연구라면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Q.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하는 젊은 과학자, 생물학자에게 하시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A. 생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인간의 역사를 쭉 돌이켜봤을 때 지금 만큼 생물학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많던 때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생태 보전구역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를 지키고 되살리려면 명백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생태 보전구역 안에 뭐가 있길래, 그걸 왜 지키고 살려야 하는지 누가 물어보면 답을 해야 하겠죠.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무척추동물이나 균류, 미생물부터 멸종 위기종까지 알아야 답을 하고 지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생물학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꼭 이 일을 업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더 많은 사람에게 하고 싶은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과학자는 아니지만, 지구를 생각하는 착한 시민으로 살고 싶은 대다수 사람 말이죠. 종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지구를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A. 숲을 파괴하지 마세요. 북반구의 온대림도, 아마존의 열대우림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구상에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지역, 지대를 지켜나가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에요. 생물학 박사가 아니라도 당연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구의 모든 부분을 잘 가꿔나가는 일은 인류의 역사와 지금의 안녕, 미래의 번영에 모두 중요한 일인데, 안타깝게도 지구의 수많은 부분이 무분별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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