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된 뒤로 극장을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몇 년 전부터 바쁘다는 이유로 극장을 찾지 않았던 것 같네요. 어쩌다 극장을 지나치며 영화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저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습니다.
지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얼마 전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았습니다. 가기 전에 조금 검색을 해보니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깐느 영화제 각본상을 받았으며, 평론가 이동진이 별 다섯 개를 주었더군요. 일요일 저녁인데도 극장은 한산했습니다. 세 시간 길이의 영화를 혼자서, 어떤 대여섯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서로 멀찍이 떨어져 관람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홀로 영화를 자주 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영화에 대해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주 글을 준비하며 기사들을 보던 중,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21년 리스트를 보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21년 읽은 최고의 책과 영화, 음악을 골라놓은 목록입니다. 이런 리스트에서 보통 책은 번역에 시간이 걸리고 모두 번역되지도 않기 때문에 제목만 봅니다. 반면 영화는 대부분 당장 볼 수 있지요.
오바마가 꼽은 첫 번째 책은 – 순서가 선호도는 아닌 것 같지만 – 로런 그로프의 매트릭스입니다. 오바마는 이 작가를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2015년에도 같은 작가의 “운명과 분노”를 최고의 책으로 골랐지요. 저도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불만은 없습니다. 매트릭스도 번역된다면 읽을 것 같네요.
목록에 등장하는 조너선 프랜즌도 오바마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도 나쁘지 않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카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은 벌써 번역돼 나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추천하고 있고 제 침대 옆 세워진 책의 탑에도 위에서 일곱 번째쯤 있으니 이번 달이나 다음 달에는 읽을 것 같네요.
아, 왜 영화에 관해 쓰게 되었는지 말하려다 길어졌군요.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가 오바마가 첫 번째로 꼽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연히, 저도 이 영화에 빠져들었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이 맴돌았기에 이 영화를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어 이렇게 쓰게 된 것이죠.
이 영화에는 요즘 영화에서 흔히 찾기 힘든 담백함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직진하고 사람들의 말과 행동 역시 그렇습니다. 긍정적인 의미의 일본이 주는 색깔과 온도의 영화이고, 나도 이런 낮은 온도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물론 배신과 죽음, 상처는 당연히 그곳에도 존재하지요. 단지 그런 일들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야기는 40대 후반의 연극배우 카후쿠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액자 소설 형태로 진행됩니다. 카후쿠와 부인의 이야기가 있고, 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 – 이 이야기가 특히 흥미롭고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하루키적인 이야기입니다 – 가 있으며, 카후쿠가 감독하는 체호프의 희극 “바냐 아저씨”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나 인상적인 장면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의 한 가지 조건이지요. 영화 속 어떤 인물에 자신을 대입하게 되는지도 다를 테고요. 비슷한 나이이기에 카후쿠에 자신을 자꾸 대입하게 되더군요. 그가 겪는 사건들과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역시 좋은 영화의 조건입니다.
영화를 1/3쯤 보았을 때 이 영화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제가 오래전에 읽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도 기억해 냈습니다. 물론 그 단편들을 엮어서 거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고, 또 소설이 가지는 상상의 힘보다 더 강력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감독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소설 속에 자신을 담그는 기술이 계속 약해지고 있다고 점점 느끼던 터라 그 점은 안타까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