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잘 알려진 다니엘 카네만은 심리학자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를 만든 전설적인 학자입니다. 그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안겨준 것은 1970년대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연구한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입니다.
전망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이 같은 양의 이익에 비해 손실의 영향을 더 크게 생각한다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입니다. 간단하게 줄이면 “손해는 이익보다 아프다”는 말 정도가 되겠죠. 실제로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들이 이 분야에 한 가장 큰 기여로 손실 회피의 개념을 꼽았습니다.
손실 회피 효과는 다양한 실험으로 사람들의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도박에 관한 연구에서 사람들은 50% 확률로 같은 금액을 따거나 잃게 되는 내기를 피했습니다. 어떤 연구에서는 50%의 확률로 20달러를 따고 50%의 확률로 15달러를 잃는 내기조차도 사람들은 손해로 느꼈습니다.
손실 회피 효과를 널리 알린 연구는 머그잔 실험입니다. 30년 전, 코넬 대학교 연구원들은 학부생의 절반에게 대학 로고가 있는 머그잔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머그잔을 받은 학생들에게는 그 머그잔을 얼마에 팔 것인지 물었고, 받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머그잔을 사기 위해 얼마를 낼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머그잔을 받은 이들은 5달러 이상을 원했고, 받지 않은 학생들은 그 절반을 불렀습니다. (실제로 대학 기념품점에서 그 머그잔의 가격은 6달러였습니다.)
연구진은 볼펜을 이용해 같은 실험을 하였고, 여기에서도 물건을 가진 이들이 그 물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를 그들은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라 불렀고, 이 효과는 여러 실험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 카네만과 잭 네치, 리처드 세일러는 이 보유 효과를 손실 회피의 결과로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잘 알려지고 여러 차례 검증을 거친 것처럼 보이는 개념이 공격받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지금 이 손실 회피 효과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003년 스탠포드의 대학원생이었던 데이비드 갈은 머그잔 실험을 재현해 보았습니다. 역시 결과는 예전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갈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머그잔을 소중하게 여겼다기보다 오히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머그잔을 잃기 싫어서 더 비싼 값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머그잔이 있는 이들은 이미 내 것이 된 머그잔을 팔고 싶지 않아 하며, 반대로 머그잔이 없는 이들은 이를 굳이 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졌습니다.
2013년 이스라엘 과학자들의 논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곧, 실험의 조건에 따라 사람들은 손실을 이득보다 크게 생각하기도, 또 작게 생각하기도 한 것입니다.
2018년, 일리노이 시카고 대학교의 교수가 된 갈은 동료인 데릭 러커와 함께 새로운 머그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그는 단 한 가지 설정을 바꾸었습니다. 곧, 머그잔을 받은 이들에게 얼마에 팔 것인지를 물은 것이 아니라, 그 머그잔을 다시 회수해야 한다고 말한 뒤 이 머그잔을 계속 보유하기 위해 얼마를 낼 것인지 물었습니다.
만약 손실 회피 이론이 맞다면, 이 새로운 실험에서도 이미 머그잔을 한 번 가졌던 이들은 머그잔을 받지 못한 이들보다 더 비싼 가격을 불러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그룹은 같은 값을 불렀습니다. 다른 연구자들도 이와 비슷한 실험을 수행했고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손실 회피는 보유 효과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데이비드 갈은 손실 회피 개념이 매우 모호하다고 말합니다. 곧, 어떤 상황에서는 마치 그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인지적 특성으로 분류되고, 또 보유 효과와 같은 특정한 현상에서는 근본적인 특성으로 인한 논리적 결과와 무관하게 현상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갈의 주장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의 의사결정 전문가 에릭 존슨은 최근 150개의 논문을 분석한 체계적 고찰 논문을 통해 사람들이 이익보다 손실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보였습니다. 그는 손실 회피를 비판하는 이들이 보유 효과와 같은 특정한 현상에 대해 다른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음을 인정했지만, 한편으로 손실 회피가 여러 상황에 단순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손실 회피를 부정한다면, 수많은 현상에 대해 모두 다른 설명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올해 87세가 된 프린스턴 대학의 명예 교수 카네만은 최근 언다크와의 줌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들의 주장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손실 회피가 특정한 상황에서만 나타난다는 갈의 의견에 동의하며 “모든 상황에서 보이는 인간 본성의 법칙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손실 회피를 하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외가 존재한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손실 회피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 다니엘 카네만
언다크는 카네만에게 그렇다면 손실 회피 개념을 반증할 수 없는 것이냐고 물었고, 카네만은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 반증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 사실 어떤 실험이든 그 실험을 설명하는 또 다른 설명들이 있습니다.”
그는 적어도 의사결정 분야에서는 손실 회피가 이미 정설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원칙은 적어도 유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손실 회피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 다니엘 카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