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태도는 결국 문화전쟁으로까지 번졌습니다.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을 둘러싼 갈등을 촉발한 것도 그가 팟캐스트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퍼지게 방치한 가짜뉴스였습니다. 조 로건과 스포티파이의 딜레마에 관한 글도 최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썼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백신과 과학의 정치화에 관해 10월 4일에 쓴 글입니다.
두 달 전에 백신 안 맞는 사람들이라고 다 같지 않다는 글을 썼습니다. 백신이 남아도는 미국에서 글을 쓴 8월 초 기준으로,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사람 가운데) 아직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은 사람은 9천만 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이 잡아 약 3천만 명 정도는 좀 더 안심할 수 있는 정보가 확인되면 백신을 맞겠다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이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승인을 받으면 그때 맞겠다는 이들이었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요? 미국 식품의약국이 화이자 백신을 정식 승인했고, 다른 회사 백신의 부스터샷도 잇달아 승인했지만, 미국에서 백신 접종률이 오르는 속도는 여전히 매우 더딥니다. 백신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코로나19 사망자 대부분이 백신을 안 맞은 사람이라는 뉴스가 매일 나오지만, 백신 회의론자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일자리를 잃더라도 백신을 맞지 않고, 청소년인 자녀가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한이 있어도 백신을 맞추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이들이 여전히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도 눈과 귀를 닫고 백신 자체를 못 믿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는 이들은 자기 생각에 들어맞는 엉터리과학, 거짓말, 사기에 쉽게 넘어갑니다. 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비타민 C나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읊던 이들이 최근에는 구충제(ivermectin)를 ‘기적의 약’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인지부조화를 견디지 못하는 게 보통인데, 이들은 어떻게 엄연한 현실과 엉터리과학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기는커녕 현실에 눈을 감는 걸까요? 복스가 몇 가지 심리학 이론을 통해 이들의 마음이 코로나19 팬데믹에 반응한 기제를 설명했습니다. 결론을 요약하면, 사람들은 때로 ‘내 집단’, ‘우리’가 믿는 신념과 다른 정보를 받아들이는 걸 너무 두려워해서 그 정보가 진실이라도 이를 기꺼이 외면하고 파기하는 쪽을 택한다는 겁니다.
엉터리과학을 믿으며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이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저도 뾰족한 답을 모르겠습니다. 독자분들 가운데 좋은 방법을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처음에는 코로나19가 계절 독감과 별 다를 바 없는 바이러스일 뿐 곧 사라질 거라고 했습니다. 팬데믹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자 코로나19의 심각성을 폄하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었습니다. 대신 백신을 맞아야 집단 면역을 이뤄 팬데믹을 끝낼 수 있다는 정부와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호소에 이번에는 백신의 안전성을 문제 삼으며 온갖 음모론, 사이비과학을 들고나옵니다. 백신을 맞고 죽은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려 죽은 사람보다 많다는 낭설을 들이밉니다.
백신 회의론자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말과 주장, 행동이 지금까지 팬데믹을 거치며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흐름을 간략히 정리한 겁니다. 이들은 새로운 정보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은 위험하고 부작용이 많다는 기존의 신념에 들어맞는 사실만 골라냅니다. 자기 생각을 강화해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겐 쉽게 전문가 칭호를 주고 그 주장을 퍼 나르지만, 반대로 백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 사람이 전염병 분야의 최고 권위자든, 가장 뛰어난 학자든 우리편이 아니므로 음소거 대상입니다.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사안뿐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쉽게 사실과 거짓을 가려내기 어려운 분야에선 어김없이 ‘과학의 정치화’가 일어난 결과이기도 합니다.
뉴욕대학교의 제이 반바벨은 백신 회의론자들의 ‘끝없는 잘못된 합리화’ 과정을 두더지잡기 게임에 비유했습니다.
백신은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어떤 주장에 경도되고 나면, 그 신념을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이유를 가져다 붙입니다. 두더지잡기 게임 같은 거죠. 그 주장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밝혀내도 소용없습니다. 금새 새로운 가짜뉴스, 엉터리과학을 들고나올 테니까요.
1950년대 사회심리학자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신도들을 관찰했습니다. 심판의 날이 머지않았고, 이날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우리 종교를 믿는 자만 구원해 갈 거라는 혹세무민으로 연명하던 종교였습니다. 이들이 말하던 심판의 날이 왔지만, 당연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세상은 멀쩡했습니다. 신도들은 교주를 원망하며 사실을 가려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을까요?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새로운 논리가 심판의 날 이야기를 대체합니다. 심판의 날이 미뤄졌다거나 신도들의 헌신적인 기도 덕분에 심판의 날은 오지 않았다는 식의 논리죠.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지만, 한번 믿음에 빠진 사람들에게 사리를 분별할 능력은 없었습니다. 예언이 틀렸을 리는 없기 때문에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억지 논리든 뭐든 끌어와 붙여야 했습니다.
반바벨은 도미닉 패커와 함께 쓴 책 “우리의 힘(The Power of Us)”에서 비슷한 사고 기제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를 믿던 신도들부터 사상 최악의 회계 부정 사기로 기록된 엔론(Enron)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수많은 직원까지 사람들은 내집단(inner group)의 논리가 무너질 때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내집단의 생각, 신념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는 원래 내가 하던 생각과 다른 현실을 마주할 때 생기는 인지부조화보다 몇 배 더 큰 불편함이 찾아왔죠.
특히 백신을 맞은 이들과 맞지 않고 버티는 이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진영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큰 오늘날 미국에선 백신에 대한 태도가 곧 우리편과 상대편(혹은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기준이 돼 버렸습니다. 우리편의 신념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해질수록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덜 중요해집니다. 우리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나도 똑같이 해야만 안심이 됩니다. 그러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건들은 전부 다 날조, 거짓 선동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진영 논리가 과학적 사실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자기 신념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마음(과 표)을 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표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백신 회의론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자신과 가족들은 퇴임 전에 슬쩍 백신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대중에겐 퇴임 때까지 백신도, 마스크도, 사회적 거리두기도 다 쓸데없다고 말했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쉽게 뭉칠 수 있게 된 데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소셜미디어 때문에 가짜뉴스가 더 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셜미디어가 없었다면 가짜뉴스가 이렇게 빠르고 효과적으로 퍼져 ‘우리의 신념’으로 구체화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 참고: 코로나19와 인지부조화를 다룬 애틀란틱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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