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정에서 행복을 느끼고 이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성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도 결국,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을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성은 다른 모든 본성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바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무리하게 다그치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지난 해 9월 영국의 가디언에 실린 “아니오의 힘(The power of no)”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바로 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글은 왜 우리가 ‘아니오’라는 말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순간에도 이 말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하면 이 말을 잘 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에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미국의 체조 스타 시몬 바일스가 올림픽에서 기권한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계 랭킹 2위인 일본의 테니스 스타 나오미 오사카가 프랑스 오픈에서 기권한 일입니다. 이들의 기권을 ‘이기적’이라며 비난한 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이 이들을 지지했습니다.
올림픽 육상팀의 코치이자 과학자인 스티브 매그니스는 바일스의 결정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일스 자신에게도 그냥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오히려 쉬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결과가 어떻든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면 그만이었죠. 참가를 거부하는 일이 더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옳고 그름은 쉽고 어려움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제가 바쁘다는 이유로 이번 주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옳은 선택은 아니지요. (이것은 그저 예를 든 것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본능적으로,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어려움은 과장하고 타인이 처한 상황은 가볍게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소개한 “약한 마음 문제(lesser minds problem)”와도 연결되는군요.)
매그니스는 진정한 ‘강함’이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따른 옳은 선택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산꼭대기 등정을 눈앞에 둔 산악인이 내려야 하는 결정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1996년 에베레스트 등반 중 12명이 사망한 사건을 소재로 한 존 크라카우어의 책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를 추천합니다.)
타인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경계(boundaries)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학자인 조 야커는 “정시에 일을 멈추고 일어나거나 업무 외의 활동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두는” 등 자신의 삶에 경계를 잘 설정하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더 좋다는 연구를 이야기합니다.
야커는 특히 권력 관계에서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권력 관계에서는 약점이나 위협이 대화에 자연스럽게 포함되며, 이는 감정을 자극해 경계 설정 능력을 약화시킵니다. 선을 긋기 어려워진다는 뜻이죠. 이런 현상은 약자가 지쳐 있을 때나 압력을 받을 때 특히 분명해집니다. 그러나 야커는 바로 이런 순간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논리와 이성으로 대처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야커는 이를 위해 역할극을 이용하는 하는 연습과, 평소에 아니오라는 말을 자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곧, 평소에도 ‘아닌데요(no)’ 혹은 ‘그만하죠(enough)’라는 말을 한 번씩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울 때는 ‘생각해 보겠습니다(I will call you back)’와 같이 부드러운 경계 설정의 표현으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즉, 누군가가 당신에게 ‘생각해볼게요’라고 말했다면, 특히 당신이 더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정말로 더 생각해 볼 가능성 보다는 이를 정중한 거절로 간주하는 것이 좋다는 뜻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 경계의 설정은 양쪽의 이익이 충돌(conflict of interest)하는 지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한 쪽이 다른 쪽의 희생을 요구하는 권력 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몇 가지 예를 들려 했지만 세상에 이런 권력관계는 너무 많기 때문에, 아니 권력관계가 아닌 관계가 오히려 드문 것 같아 예를 들기를 포기합니다.) 문제는 도덕이나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지난 10년 사이를 생각해 보시죠!)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성장한 시기의 가치관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계의 문제에 대해 2009년 알랭 드 보통이 테드(TED)에서 이야기한 정답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아버지는 엄하면서도 자애로워야 한다. 그 경계를 설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너무 엄해도 안 되고, 아무런 규칙이 없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호하기 짝이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만큼 정확한 답도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