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선주민 기숙학교, 다문화주의 캐나다의 어두운 과거

“다민족 용광로(melting pot)”가 아닌 “샐러드 그릇(tossed salad)”.

캐나다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점을 자랑스레 여겨왔습니다. 이런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슬로건을 무색게 하는 어두운 역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한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 선주민) 커뮤니티가 캄플룹스 인디언 기숙학교(Kamloops Indian Residential School) 부지 근처에서 이름 없는 무덤 215개를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6월에도 서스캐처원주의 옛 기숙학교 부지에 매장된 700여 구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됩니다. 뉴욕타임스는 5월 28일 이 소식을 처음 보도한 뒤 여러 건의 후속 보도인터뷰를 싣고 있습니다.

캐나다에는 19세기 말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선주민 부족의 어린이들을 “동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숙학교들이 있었습니다. 캄플룹스 기숙학교와 같이 주로 가톨릭교회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했던 시설이 150여 곳에 달했죠. 기숙학교들은 100여 년에 걸쳐 15만 명 이상의 선주민 어린이들을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와 입학시켰고, 어린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언어와 종교, 문화를 버릴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2008년에 이르러서야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립해 생존자 6천여 명의 증언을 수집하고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 위원회는 기숙학교가 “문화적 학살”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캐나다 선주민 기숙학교. 사진=캐나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웹 아카이브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강제로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가족과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영양실조와 각종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영어를 배운 적도 없는 학생에게 영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눗물로 입안을 씻어내게 하거나, 도망치다가 붙잡혀온 학생이 가혹한 체벌을 받다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증언, 교사와 성직자들에 의한 성적 학대가 만연했다는 증언도 있었죠. 독감, 결핵 등 전염병과 빈번한 화재 사고는 불결하고 포화 상태인 기숙사에 더욱 치명적이었습니다. 학생이 학내에서 사망해도 가족들은 시신을 돌려받지 못했고,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듣지 못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학생이 적게는 1만 명, 많게는 5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죠. 생존자들은 오랜 세월 자신이 겪은 일을 알리거나 고발하지 못한 채 불신의 시선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번에 학교 부지 근처에서 발견된 무덤들은 학교와 당국이 학생들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은폐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학교 부지 근처에서 발견된 무덤들은 학교와 당국이 학생들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은폐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진=Unsplash

무덤이 대거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캐나다의 정치적 환경 변화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2009년에도 위원회가 기숙학교 학생들의 실종을 조사하려 했으나, 당시 보수당 정부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무산된 바 있습니다. 현재의 자유당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실행할 것을 약속했고, 총리의 입으로 선주민들이 겪은 “모욕과 방치, 학대”의 역사를 인정했습니다. 관련 조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예산도 계속해서 투입할 예정입니다. 물론 과거 청산과 관련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히 기숙학교의 70%를 운영했던 가톨릭교회는 트뤼도 총리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공식 사과를 거부해 왔습니다.

선주민에 대한 약탈과 강제 동화, 나아가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억압과 차별은 캐나다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웃 미국도 1819년의 문명기금법(Civilization Fund Act)을 시작으로 선주민에게 “문명”을 소개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강제 동화 정책을 펼쳤고, 비슷한 기숙학교를 설립해 운영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첫 선주민계 장관으로 화제를 모았던 뎁 할란드 내무부 장관은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소식이 전해진 직후, 미국 내 기숙학교 부지를 조사하고 관련 정부 기록을 파내 보고서를 작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맥락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삼청교육대나 형제복지원, “세탁소”로 불린 아일랜드의 미혼모 보호소 역시 국가가 특정 명분을 내세워 제도적으로 인권 유린과 폭력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나고, 그제야 진실 규명과 피해자 보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정부의 명확한 문제의식과 책임 주체의 진정한 사과, 나아가 역사적 교훈의 공유가 이루어져야만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흑역사”는 어디에나 있지만, 이를 어떤 식으로 조명하는가가 한 나라의 국격과 사회의 성숙도를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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