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Paul Kane)
어쩌면 지금 미국은 쉼 없이 이어지는, 끝나지 않을 탄핵의 굴레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공화당은 취임한 지 일곱 달이 지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 자격이 없다며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일어난 극심한 혼란이 이유였습니다. 미군과 미국 외교관, 민간인이 아프가니스탄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도록 상황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묻기로 한 겁니다. 린지 그레이엄(공화,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20일 폭스뉴스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미국인이 한 명이라도 (아프가니스탄을) 무사히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또 그동안 우리를 도와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제 생각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탄핵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엘리제 스테파닉(공화, 뉴욕) 하원의원도 카불 공항에서 벌어진 대혼란과 참극을 이유로 “조 바이든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습니다. 스테파닉 의원은 지난 5월부터 하원 공화당 내 서열 3위에 해당하는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원래는 트럼프 대통령과 내내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 리즈 체니 의원이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체니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가 의장직을 박탈당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힘 싸움에서 패하고 숙청된 셈입니다.)
당내 중진들마저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나서자 마조리 테일러 그린(공화, 조지아) 하원의원과 같은 당내 극우파들의 선동은 더 심해졌습니다. 테일러 그린 의원은 지난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에 책임을 묻기 위해 자신이 바이든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면 바이든 대통령은 탄핵당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미국 헌정사에서 탄핵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초대부터 41대까지 대통령 가운데 상원에서 탄핵 심판을 받은 건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유일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탄핵당한다면 최근 다섯 명의 대통령 가운데 세 명이 의회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으로 기록에 남게 됩니다.
임기를 시작한 지 이제 막 반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게다가 코로나19 대응이나 경제 회복 등 다른 지표들은 나쁘지 않아서 지지율도 비교적 높게 유지되던 바이든 대통령입니다. 그러던 바이든 대통령이 어쩌다 갑자기 탄핵당할 위기에 몰린 걸까요? 오늘은 외교정책의 실패보다도 탄핵이 남발되는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의회의 추세를 짚어보려 합니다.
(양원제인 미국에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대통령이나 부통령, 장관, 연방정부 기관의 공무원 등을 탄핵할 권한은 하원에 있습니다. 탄핵소추안이 하원에서 과반(단순다수)의 찬성표를 얻으면 해당 공무원은 탄핵당합니다. 다만 하원을 통과한 탄핵소추안이 효력을 얻으려면 상원의 탄핵 심판을 통과해야 하는데, 여기엔 상원의 2/3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만 되면 원칙적으로 그 대통령은 탄핵당한 대통령으로 기록됩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은 분명 극심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미국은 전쟁에서 또 한 번 패하며, 체면을 단단히 구긴 꼴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2012년 리비아 벵가지에서처럼 미국 대사관이 습격을 받고 대사를 포함한 미국 정부 기관 요원들이 숨진 것도 아니고, 1979년 이란 테헤란에서처럼 대사관에서 몇 달간 인질극이 벌어진 것도 아닙니다.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과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모두 길이 남을 외교적 실패에 군 통수권자로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대통령이 탄핵당할 만한 일이라는 이야기는 적어도 공론장에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돼 바이든 대통령을 탄핵하더라도 민주당은 여전히 상원에서 탄핵을 막는 데 필요한 34석 이상을 유지할 것이므로, 탄핵은 또 한 차례 상징적인 시도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의회가 이념적으로 양분됐고, 자기편끼리 어떤 사안을 결의하고 나면 10년 전과 비교해도 너무 빨리 순식간에 일을 처리하는 데 있습니다. 게다가 양당의 지도자들은 당내에서 줄기차게 제기되는 이념적인 요구에 갈수록 얽매이고 있습니다.
낸시 펠로시(민주, 캘리포니아) 하원의장을 예로 들어봅시다. 펠로시 의장은 2019년 첫 여덟 달을 동료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주당 내에서는 줄기차게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죠. 그때마다 펠로시 의장은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고해져 상원도 거기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먼저 나서서 탄핵을 추진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대통령을 탄핵하는 권한은 헌법이 보장하는 의회의 권한입니다. 그러나 펠로시 의장은 진영논리에 휩쓸려 쉽게 탄핵에 나서는 걸 경계했습니다. 하원에서 야당이 대통령을 탄핵하고, 상원에선 여당이 대통령을 구제하는 일이 반복되면 대통령을 견제하는 의회의 중요한 권한이어야 할 탄핵의 의미 자체가 감정적인 규탄 결의안 정도로 퇴보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겁니다.
펠로시 의장은 2019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들의 눈에 의회가 마음에 안 들면 대통령을 ‘탄핵해버리는’ 식으로 비쳐선 안 됩니다. 탄핵은 의회에 주어진 몇 안 되는 기소 절차입니다. 소를 제기할 때는 최대한 많은 증거를 모으고 논리적으로도 결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을 때만 신중히 탄핵을 진행해야 합니다. –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2007년 펠로시 의원이 처음 하원의장이 됐을 때도 당내 리버럴 가운데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들이 있었습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테러 단체를 지원했다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삼은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진 만큼 잘못된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펠로시 의장의 생각도 일관되게 같습니다.
그때도 탄핵은 지나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식의 탄핵은 나라를 둘로 갈라놓을 뿐입니다. 모두가 동의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증거가 확실히 나오기 전까지는 탄핵에 신중해야 합니다. –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그렇게 탄핵 절차를 밟는 데 엄격한 기준을 세워둔 펠로시 의장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을 두 차례나 탄핵한 하원의장으로 남게 됐습니다.
올해 1월 6일 대선 결과에 따른 선거인단의 투표를 의회에서 정식으로 추인하는 절차를 밟는 날 의사당을 습격한 폭도들을 방조하고 오히려 폭력을 부추긴 혐의에 대한 책임을 물은 두 번째 탄핵은 정황상 명백히 헌법을 어겨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도) 탄핵이 불가피한 사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의 아들, 가족의 비리를 수사해달라고 청탁했다는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비롯된 첫 번째 탄핵은 과연 이 사안이 탄핵할 만한 범죄인가를 두고도 논란의 여지가 컸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악마화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 당내 진보 세력의 강력한 주장에 펠로시 의장이 결국 뜻을 굽힌 것으로 보입니다.
두 차례 모두 하원에선 과반의 표를 얻어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지만, 전체 의원의 2/3가 찬성해야 하는 상원에서 부결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논란 끝에 정해진 임기를 다 마친 대통령이 됐습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첫 번째보다는 더 많은 공화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고, 상원에서도 7명이 찬성표를 던져 가결에 필요한 67표에서 10표 모자란 57표를 얻었습니다. 두 번째 탄핵 심판에선 공화당 의원 중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중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의원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찬성표가 그만큼 많이 모이지 않은 건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친 시점 탓도 있었습니다. 상원은 이 안건을 2월 13일에 표결에 부쳤는데,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끝난 뒤였습니다.
당시 존 코닌(공화, 텍사스) 상원의원은 “전직 대통령을 탄핵하는 게 옳다면, 2022년에 공화당이 다수당이 된 뒤에 지난 민주당 대통령들의 잘잘못을 다 따져볼 명분을 주는 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화당 내에서는 중간선거도 치르기 전에 바이든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의원들 외에도 하원 법사위원회 소속인 칩 로이(공화, 텍사스) 의원은 이미 바이든 대통령과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안건을 법사위에서 제기했다고 말했습니다. 마요르카스 장관의 경우 미국 남부 국경에 불법 이민자들이 급증하는 상황을 막지 못한 것이 로이 의원이 꼽은 탄핵 사유였습니다.
전 이미 우리 국경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한 것만으로 이 정권의 정책결정자들이 탄핵당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해 왔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이 정권의 무능함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 정부가 응당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치명적인 책임 방기로 이어졌습니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다수당이 되면 하원 법사위원장 자리는 짐 조던(공화, 오하이오) 의원이 맡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조던 의원은 탄핵에 찬성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혼란과 국경 지대의 치안 악화와 관련해 여러 차례 바이든 행정부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켄터키)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CNN 정치 평론가 스캇 제닝스는 민주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때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공화당 의원들에게 여차하면 바이든 대통령을 탄핵할 빌미를 제공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탄핵의 요건이 낮아졌다. 공화당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 할 테고,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제 발에 걸려 넘어지게 생겼다. – 스캇 제닝스 트위터
원래 중간선거는 집권 여당이 불리한 만큼 공화당은 이변이 없다면 하원 다수당이 되고,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 의회가 4년 사이 세 차례나 탄핵 심판을 진행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전까지 미국의 228년 헌정사에서 탄핵 심판이 총 세 차례 있었으니, 초유의 사태라 부를 만합니다.
미국 헌정사상 있던 탄핵 심판의 정치적인 결과는 매번 조금씩 달랐습니다.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하원에서 탄핵당하고도 상원에서 구제됐지만, 정치적인 입지가 좁아져 몇 달 뒤 당내 경선에서 후보로 지명되지 못하고 정치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상·하원이 모두 탄핵안을 통과시킬 것이 확실시되자 투표 직전에 스스로 하야했죠.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8년 두 가지 혐의에 관해 모두 하원에서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상원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엇비슷하게 나뉘며 (2/3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규정 덕분에) 무죄를 받았고, 임기를 마쳤습니다. 다만 여론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대체로 호의적이었고, 그 결과 2001년 1월 퇴임 시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에서 탄핵당했을 2020년 2월에 임기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대응에서 실정을 거듭하지 않았더라면 최근 미국 선거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은 무척 컸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전개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 직전 폭동을 부추긴 죄로 두 차례나 탄핵당한 최초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러나 리즈 체니 의원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지금 공화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입니다. 만약 2024년에 출마한다면 그에게 맞설 만한 인물이 공화당 내에선 아마도 없을 겁니다.
최근의 추세를 보면, 탄핵이라는 제도의 속성이 바뀌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대통령을 실제로 견제하는 강력한 장치로써 의회가 삼권분립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탄핵이었다면, 이제는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인 규탄의 목소리를 내는 수단으로 전락한 듯합니다.
어쨌든 적잖은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수세에 몰린 지금의 상황을 십분 활용하고자 탄핵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연례행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보다 훨씬 더 자주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일이 미국에서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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