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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여성 지도자

독일, 뉴질랜드, 덴마크, 대만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선 여성 정치 지도자들의 침착한 대처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물론 베트남, 체코, 그리스, 호주 등 코로나19에 잘 대처한 나라 가운데 남성이 대통령이나 총리로 있는 나라도 많습니다. 다만 여성 지도자들의 경우에는 잘못된 판단으로 문제를 그르치거나 사태를 악화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뉴질랜드의 자신다 아덴(Jacinda Ardern) 총리는 위기에 맞서 국민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두려움, 답답함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올해 39살인 아덴 총리는 “집에 머무릅시다. 생명을 구합시다(stay home, save lives)”라는 메시지를 담은 비디오를 자기 집 소파에서 편하게 촬영해 내보내거나 페이스북 라이브로 국민과 소통했습니다. 매일 진행하는 기자회견도 차분한 분위기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동료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돕자는 아덴 총리의 메시지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 사회를 통합하는 촉매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일찌감치 강력히 대처한다”는 원칙에 따라 아덴 총리는 3월 14일부터 뉴질랜드에 입국하는 모든 사람에게 14일 자가 격리를 의무화했고, 2주 뒤에는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합니다. 아직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가 150명이 채 되지 않고, 사망자는 한 명도 없던 시점입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뉴질랜드의 코로나19 사망자는 18명에 그쳤고, 여론조사에서 아덴 총리를 신뢰한다고 답한 국민의 비율은 80%를 넘었습니다.

어느덧 여성 정치인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전체 독일 국민의 70%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거나, “1945년 이후 독일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라는 말로 바이러스의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희생자가 생길 때마다 메르켈 총리가 나서서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사랑하는 배우자가 떠났다”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독일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검사를 하고 인공호흡기가 있는 중환자실을 최대한 확보하며 바이러스와 싸웠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국민의 경계심이 풀리지 않도록 “코로나19는 정말 심각한 위협이다.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내보냈죠. 지금까지 독일의 코로나19 사망자는 5천 명이 되지 않습니다. 인구나 규모가 비슷한 이웃 나라들보다 피해를 성공적으로 줄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양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메르켈 총리가 코로나19에 대해 군더더기를 전혀 붙이지 않고 침착하게 설명한 동영상은 수천 번 공유되고 재생됐습니다. 벌써 4선으로 장기 집권 중인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팬데믹을 겪으며 70%를 웃돌 만큼 높아졌습니다.

독일과 국경을 마주한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도 3월 13일 일찌감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의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이어 학교와 유치원은 모두 문을 닫았고, 10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도 금지됐습니다. 덴마크의 코로나19 확진 사례는 8천여 건, 사망자는 370명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프레데릭센 총리의 투명하고 분명한 정보 전달 방식을 최악의 위기를 피할 수 있던 원동력의 하나로 꼽습니다. 집에서 설거지하며 1980년대 가수인 도도앤더도도스(Dodo & the Dodos)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올려 친근감 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죠. 프레데릭센 총리의 지지율도 두 배 이상 껑충 뛰며 80%를 넘어섰고, 덴마크는 이제 철저한 거리두기를 조금씩 완화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도 발 빠른 대응으로 위기에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중국과 인접한 대만인 만큼 초기 대처가 특히 중요했는데, 대만은 이미 1월 초부터 중앙전염병대책본부를 가동하고 여행 금지 조치와 자가 격리 조치를 시행했죠. 공중위생 수칙이 강화돼 공공장소와 건물을 정부와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소독했습니다.

대만은 철저히 방역을 시행한 끝에 사회와 경제를 완전히 중단하지 않고도 팬데믹을 성공적으로 피해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망자도 6명으로 다른 나라보다 훨씬 적었고, 미국과 유럽에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지원하기도 했죠.

마찬가지로 피해를 성공적으로 줄이며 팬데믹을 이겨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노르웨이의 에르나 솔베르그 총리는 CNN에 노르웨이 정부가 “공중보건과 방역, 의학적 결정을 철저히 과학자들이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내리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솔베르그 총리는 어른들 없이 어린이들에게만 진행한 코로나19 특별 브리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나도 좋아하는 친구들을 꼭 안아줄 수 없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바이러스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외에 핀란드, 아이슬란드 총리도 여성입니다. 이 나라들은 모두 코로나19에 성공적인 대처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죠.

정치 지도자만 돋보이는 건 아닙니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보건 당국 관계자 가운데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이 있다면 한국 질병관리본부의 정은경 본부장일 겁니다. 코로나19 위기를 흔들림 없이 헤쳐나가는 여정의 중심에 선 정 본부장은 이미 국민적인 아이콘이 됐고, 한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이겨낸 모범 국가가 됐습니다. 한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총 248명이고, 신규 확진자는 며칠째 한 자릿수로 안정됐습니다.

“세상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정 본부장은 의사 출신으로 매일 진행하는 질병관리본부 기자회견에서 상식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왔습니다. 어떻게 기침을 하는 것이 안전한지 직접 시연을 보이기도 했죠. 정 본부장이 벌써 몇 달째 밤낮을 쉬지 않고 일하자 정 본부장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국가별로 대처가 다를 경우 그 결과를 비교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여성 지도자가 있는 나라에서 코로나19에 더 잘 대응했고, 반대로 남성 지도자가 있는 나라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결론을 섣불리 내리는 건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뉴욕대학교 사회학과의 캐서린 거슨 교수는 여성 지도자를 배출한 사회와 나라에 존재하는 내재적인 특징을 언급합니다. 즉 한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여성이 오를 수 있는 나라, 그래서 실제로 여성 지도자를 배출한 나라는 대체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고 정치적으로 협치가 잘 이뤄지는 선진국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선진국일수록 의료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고,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자원도 많을 테니, 그 나라가 성공적으로 바이러스를 막아낸 것을 두고 섣불리 여성 지도자 덕분이라고 결론을 지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가디언, Jon Henley & Eleanor Ainge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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