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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은 이제 진보 국가다

지난 수요일, 출구 조사 결과가 진보의 완승으로 나오면서 민주당은 기분 좋은 선거일 저녁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후, 전 세계 어디서나 정치가 다 그렇듯, 출구 조사가 틀렸다는 것이 드러났다. 개표가 끝나갈 때쯤, 문재인 대통령의 민주당은 완승 정도가 아니라 1984년 미국 대선에 비교될 만한, 전례 없는 압승을 거두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당은 국회 300석 가운데 180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155석에서 173석을 점쳤던 출구조사보다 훨씬 많은 의석이다.

주류 진보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좋은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선거 직전까지도 여론 조사에서 보수 미래통합당을 10-15% 앞서는 지지율을 보였고, 중도우파 바른미래당의 당내 갈등으로 바른미래당의 30여 석마저 민주당이 가져올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코로나 사태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덕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17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처럼 쉽게 이길 것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입은 타격을 극복하는 듯 보였다. 탄핵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은 여러 정당으로 쪼개졌는데, 미래통합당이라는 새로운 깃발 아래 모인 보수주의자들은 임기 후반기로 접어든 대통령의 힘이 빠졌기를 기대하면서 총선을 해볼 만한 싸움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여당의 전례 없는 압승이었다. 그간 국회에서는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의원들이 20~30석을 차지하고 두 개 주요 정당은 실질적으로 나머지 270~280석을 놓고 경쟁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단일 정당이 150석 과반을 가져가는 것도 그 자체로 충분히 드문 일이다. 한국이 1987년 민주화를 이룬 후, 주류 보수 정당이 가장 큰 승리를 거둔 것은 2008년(153석)이고 주류 진보 정당의 가장 큰 승리는 2004년(152석)이었다. 이번과 비슷한 규모의 총선 승리를 찾아보려면, 민주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0년, 독재자 이승만의 퇴진 이후 치러진 혼란스러운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175석을 확보했지만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로 정권은 얼마 못 가 교체되고 말았다.

180석, 또는 전체 의석의 3/5이라는 숫자는 의회 절차상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상임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해 실질적으로 법안 통과가 보장되는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129석으로, 다수당이었지만 과반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군소 정당들과 연합해 공수처법을 포함한 몇 개의 중요한 법안들을 통과시키기는 했지만, 더 야심 찬 입법 계획을 밀어붙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번 승리로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사법 개혁과 차별금지법 같은 숙원 입법을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를 단기 정책에 대한 영향으로만 파악하다 보면 그 의미를 온전히 볼 수 없다.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은 근본적으로 보수주의적 국가였다. 유명 진보 계열 시사평론가 유시민은 한국에서 진보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곧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진보 세력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략적으로 온건보수파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거나, 보수진영이 내분을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1997년 김대중이 대선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군부독재자 박정희의 오른팔이었던 김종필 후보와 단일화했고, 제3의 후보인 이인제가 보수표를 일부 가져간 덕분이었다.  2002년의 노무현도 현대 재벌가의 정몽준과 단일화를 통해 비슷한 방식의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수도 단일 전선을 앞세웠다. “미래통합당”이라는 당명부터가 전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싼 의견 차이를 접어두고 민주당을 꺾는 일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1992년 이래 최고치인 66.2%에 달했다. 다시 말해, 각 진영이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낸, 선거라는 이름의 총력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거두고, 미래통합당은 치명적인 패배를 맞이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의 얼굴로서 정치적 변화를 이끌었다. 2016년부터 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에 이르기까지 4번의 선거에서 연속 승리를 거뒀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4개의 선거를 연속으로 승리한 당은 지금껏 없었다. 이 4번의 승리는 단기 전술 운용의 결과가 아니라 근본적인 재배열을 의미하는 것이다. 4번의 선거에 걸쳐 문 대통령은 한국을 진보가 새로운 주류인, 운동장이 마침내 진보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중도좌파 국가로 조금씩 움직여간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한국 정치의 기저를 이루는 여러 전제에 대한 재평가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한국의 정치 상황을 매일매일 팔로우하지 않는 나라 밖의 시선에서 진보의 캐리커처는 1990년대의 것, 즉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이제 막 화염병을 내려놓은, 선동적 수사에는 강하지만 안정적인 거버넌스에 약한, 북한을 선망하는 학생 운동가에 머물러있다. 올해 총선이 치러지기 직전까지도, 한국의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이념적으로 북한과 궤를 같이한다고 주장하는 영어 정치 평론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런 관점은 이미 몇 년 전에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이번 선거 이후에는 도저히 방어할 수 없는 주장이 되었다. 한국 정치의 중도좌파가 민주화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해찬 등 여러 주요 정치인들이 정계에 입문하기 전 운동권 학생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들이 커리어 초기에 이상주의와 실용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그 단계는 끝난 지 오래다. 오늘날 민주당은 도시 거주 30, 40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중산층의 정당이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사태 강력 대응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주당은 전문성과 능력의 정당이기도 하다.

반대로 보수는 동남부의 지역적 거점에 점점 더 갇혀가는, 나이 들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정당으로서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다. 문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이끌어내고 있는 국제적인 찬사는 보수 박근혜 정부가 5년 전 메르스 사태에 얼마나 우왕좌왕 무능하게 대처했는지를 매일 같이 일깨워주고 있다. 요약하면, 한국의 보수는 평범한 한국인이 지지를 보내기에는 부끄러운 세력으로 변해가고 있고, 이에 따라 점점 더 극단적이고 이상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정치에 최종이란 없고, 역동성으로 유명한 한국 정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세력이 이 같은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황교안, 나경원, 오세훈 등 미래통합당의 지도자들은 모두 의원직을 잃었고 당은 갈 곳을 잃었다. 보수가 모든 적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해묵은 빨갱이 몰이 전술로 이른 시일 내에 긍정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는 레이건 혁명의 한국 버전, 즉 다음 세대의 정치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갈 선거 승리를  목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포린폴리시, S. Natha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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