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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와 삼인성호: 자꾸 말하면 거짓도 진실이 되는 우리의 인지 편향

  • 우리는 뇌의 10%밖에 쓰지 않는다.
  • 당근을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
  • 비타민 C는 감기 예방에 효과가 있다.
  • 현재 미국의 범죄율은 역사상 가장 높다.

위의 네 가지 문장 가운데 사실을 기술한 문장은 어떤 것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네 문장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각 주장의 시시비비가 아닙니다. 분명 사실이 아닌 말도 사람들이 계속 그렇다고 이야기하다 보면 누구든 믿지 않고 배기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세 명이 말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의 사자성어 삼인성호(三人成虎)와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심리학 용어 가운데 진실 착각 효과(illusory truth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그것을 진실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인지 편향인데,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이들을 꼽으라면 아마도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나 정치인일 겁니다.

어쩌면 자칭 “위대한 사업가”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경영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에 선수인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얼마나 뛰어난 사업가였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정책을 펴며 근거로 드는 ‘사실’ 가운데 ‘날조된 사실’이나 ‘거짓’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당장 집권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 경찰의 안전을 지키고 법 집행을 강화하겠다며 “현재 미국은 무법천지(American carnage)”라고 표현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현재 미국의 강력범죄 비율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습니다. 시민 단체는 “대통령이 있지도 않은 현상을 날조한 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내뱉는 근거 없는 거짓말을 너무나 많이 믿는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퓨리서치센터가 2016년 대선 기간 진행한 설문 조사를 보면 유권자의 57%가 미국의 범죄율이 오바마 정권 8년을 거치며 높아졌다고 답했습니다. FBI의 자료를 보면 오바마 정권 8년간 범죄율은 20%나 낮아졌는데도 말이죠.

토론토대학교의 심리학자 린 해셔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다 보면 터무니없는 소리도 그럴듯하게 들리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해셔 박사 연구팀은 지난 1970년대에 이러한 진실 착각 효과를 처음 발견해내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뇌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느끼느냐일 겁니다. 미국에서 유명했던 광고 가운데 “이마에 직접 발라야 효과가 있는 진통제!” 광고가 있었습니다. 광고 전략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어떤 성분이 어떻게 작용을 해서 덜 아프게 하는지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광고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이마에 직접 발라야 좋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처음에는 딱풀 같은 걸 이마에 왜 바르는지 이상하다가도 광고를 자꾸 보다 보면 왠지 당장 약국에 가서 이마에 직접 바르는 저 물건을 사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진통제는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주장을 거듭 반복하는 사이 그 주장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가짜뉴스가 퍼지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려 진실로 둔갑하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가짜뉴스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한참 전인 지난 2012년 센트럴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이 어떤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진실로 믿게 되는 효과를 분석해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선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선동적인 문구나 기업의 광고가 복잡하지 않은 구호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히틀러도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서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이렇게 썼습니다.

정치적인 구호는 이를 듣는 사람이 한 명 한 명 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려주고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착각은 구체적으로 왜 일어나는 걸까요? 우리 뇌가 새로운 정보가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우리가 기존에 알던 것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익숙한 것인지 두 가지 기준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기준, 즉 기존 지식과 일치하느냐는 논리적인 기준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정보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질 때 우리가 이미 아는 사실과 비교하는 건 당연합니다. 문제는 두 번째 기준, 즉 새로운 정보가 얼마나 익숙하냐에 따라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주변에서 그 이야기를 많이 해서 몇 차례 들어봤다는 것이 그 주장을 사실이라고 믿어버릴 합리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익숙함에 기대는 두 번째 기준이 논리를 앞세운 첫 번째 기준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자꾸 듣다 보면 그 이야기가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다들 이야기하는데, 이게 거짓말일 리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어떤 이야기든 두 번째 접할 때는 그 이야기를 처리하고 받아들이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마련입니다. 읽기도 훨씬 더 빨리 읽히고, 이해도 훨씬 금방 되죠. 그런데 우리 뇌는 이렇게 어떤 정보를 빨리 처리하고 습득하면 해당 정보에 ‘사실’이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그냥 한 번 봤던 거라서 익숙해졌을 뿐, 그 정보의 사실 여부를 판단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는데도 말이죠.”

밴더빌트대학교의 심리학자 리사 파지오의 말입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원래 어렵고 귀찮은 법입니다. 품을 들여야 하고, 때에 따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바쁘고 할 일이 많은 당신의 뇌는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익숙한 것을 사실로 처리하고 다음 작업을 하려는 걸지도 모릅니다.

다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돌아가 봅시다. 대통령의 레토릭에는 구체적인 숫자와 근거가 없었습니다. 억지로 숫자를 만들지 않는 한 사실이 아닌 주장을 근거로 써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숫자를 나열했을 때 사람들은 지루해하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린다는 점을 알기에 오히려 더욱 상징적인 주장을 나열해 정책을 포장했는지도 모릅니다.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어쨌든 주장은 효과적으로 먹혔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범죄율이 사상 최악으로 높다는 주장이 맞는지 따져보기 전에 대통령이 시원시원하게 정책을 편다며 열광했으니까요.

진실 착각 효과를 극복하는 방법은 다른 인지 편향을 극복하는 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첫걸음은 내가 보고 듣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내가 인지 편향에 빠져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겁니다. 만약 당신이 사실처럼 보이는 주장을 접했는데, 그 이유를 정확히 들지 못하겠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근거로 들 만한 사실과 데이터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 귀찮은 일을 언제 하냐고요? 원래 진실은 간단치 않은 법입니다.

(WIRED, Emily Dreyfu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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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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