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6600만 년 전 티라노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를 비롯한 공룡의 대량 멸종 원인 가운데 암은 유력한 후보에 들지 못합니다. 워낙 암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보니 후보 안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대신 적어도 공룡 가운데 한 종이 혈관에 생긴 종양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은 고고학자들이 밝혀낸 바 있습니다. 지난 201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세계 유산에서 발견된 170만 년 된 공룡의 엄지발가락 뼈에서 종양의 흔적이 발견된 겁니다.
화석화 과정에서 많은 사인(死因)은 지워지고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옛날에는 암이 훨씬 더 흔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칭 건강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몇 안 되는 표본으로 진행한 허술한 연구 결과를 멋대로 해석한 주장이 과학으로 포장되면서 암이란 현대인의 생활 습관에서 비롯되거나 현대의 환경 때문에 생겨난 질병이라는 주장이 통념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암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와 사실을 배우고 익히려 자연사박물관에 가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암이라는 질병이 현대의 산물이라는 해석은 우리에게 지나친 두려움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하는 주장입니다. 그밖에도 암에 관해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로 알려진 통념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휴대전화와 와이파이
휴대전화 이용이 암을 유발할지 모른다는 걱정은 휴대전화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쭉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휴대전화가 이렇게 많이 쓰인 지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정말 휴대전화가 건강에 해롭다면 그 연결고리가 진작에 밝혀졌을 겁니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죠. 1992년만 해도 미국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반대로 2008년이면 거의 누구나 휴대전화를 한 대씩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16년 사이에 뇌종양 환자의 숫자는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보건기구가 2000~2006년 13개 나라 사람들 수천 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내린 결론도 휴대전화는 뇌종양에 걸릴 확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암이란 우리의 DNA가 손상돼 건강한 세포를 증식하는 정상적인 과정이 어그러지면서 발병합니다. 엑스레이나 방사선 치료를 할 때 나오는 전리 방사선(Ionising radiation)의 에너지는 아주 작습니다. 암을 유발할 정도로 DNA를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려면 엄청나게 큰 에너지가 필요한데,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극소량의 방사선은 그러기엔 너무 작습니다. 최근에는 와이파이가 유해하다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와이파이에서 나오는 전리 방사선은 휴대전화보다도 더 작습니다.
과학적 연구라고 다 같지 않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확한 사실에 가장 가까운 결론을 찾아볼 수 있는 연구는 대개 수많은 연구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한 평가나 이른바 메타 분석입니다. 한 메타 분석의 결론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근거를 바탕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무선 주파수 방사선이 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거나, 있더라도 인과관계가 매우 약하다.
국제 암연구소가 공개한 잠재적 발암물질 목록에는 휴대전화도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목록을 선정한 기준을 고려해야 합니다. 즉, 이 목록은 직접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라기보다 간접적으로 암이 발병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망라해놓은 것입니다.
유기농 먹을거리
정말 전문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수많은 자칭 전문가들이 ‘기적의 항암물질’이 들었다고 주장할 때 가장 많이 써먹는 것이 바로 유기농 먹을거리입니다. 하지만 식습관과 암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구기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세계암연구기금의 연구팀장 미셸 맥컬리는 그런 주장을 이렇게 일축합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먹을거리가 전통적으로 생산된 먹을거리보다 항암 효과가 뛰어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제대로 된 근거는 없다.
심지어 영국의 유기농 인증기관인 토양 연합(Soil Association)이 아예 “유기농 식품과 암에 관한 주장 가운데 과학적 근거가 탄탄한 주장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유기농이 여러모로 인류에 이롭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물에게 항생제를 덜 쓰거나 안 쓰기 때문에 동물 복지에도 좋고, 때로는 독성 물질이 포함된 제초제나 화학 비료를 덜 쓰거나 안 쓰니 유기농 농장에 야생 생물이 50%나 더 많이 살게 되는 등 친환경 농업이 가능해졌습니다.
화학물질과 오염
“화학물질”만큼 오해를 사는 단어도 없을 겁니다. 넓게 보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도 화학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의 경우 인체에 해로울 수 있는 산업용 화학 물질에 사람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환경 관련 규제를 세워 집행하고 있습니다. 대기오염과 폐암 사이에는 크지 않지만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다만 데이터를 토대로 상관관계를 밝혀낸 맥락을 따져보면, 대기오염이 심하다고 암 환자가 늘어나리라고 섣불리 결론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국 암 연구소의 케이티 에드먼즈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짜뉴스의 시대이다 보니 사람들이 사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암에 관한 잘못된 상식들이 사실의 탈을 쓰고 마구 퍼지고 있다. 플라스틱병이나 데오도런트가 암을 일으킨다는 따위의 터무니없는 주장들이다. 대기오염이 폐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부는 당연히 대기오염을 줄이고자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오염 때문에 암에 걸릴까 걱정하는 그 시간에 담배부터 끊고 꾸준히 운동해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대기오염 때문에 바깥 활동을 자제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햇볕을 쬐며 사는 쪽이 더 건강한 삶이다.
사실의 파편을 모아보면
암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암이란 것이 흔히 말하는 노환(老患)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전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예전이라면 일찍 사망했을 사람들이 더 오래 살면서 나이 들어 암에 걸리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인의 생활습관 가운데 암을 유발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없지 않습니다. 세계암연구기금이 수십 년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리한 암 예방 수칙을 보면, 금연이나 햇볕을 너무 많이 쬐지 않는 것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해야 암에 걸릴 확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영국 암 연구소의 에마 실즈는 말합니다.
영국의 경우 과체중이나 비만을 예방하는 것이 두 번째로 중요한 암 예방 활동이다. 매년 영국에서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인해 암에 걸리는 사례가 약 22,800건씩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과체중과 암의 관계를 제대로 알고 있는 영국인은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운동 부족, 과음도 또 다른 위험 요소입니다. 특히 식습관을 조절해 건강을 찾거나 유지하겠다는 사람들은 특히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조언을 꼼꼼히 따져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니, 전문가라는 사람이 정말 그런 조언을 할 만한 사람인지도 꼭 살펴봐야 합니다. 가장 믿을 만한 전문가는 아무래도 의학 교육을 제대로 이수한 영양사(dietitians)일 겁니다.
(가디언, Naomi El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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