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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북미 정상회담 성사시킨 배경 되짚어보기

2월 들어 남북한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하면서 상황이 급진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날 선 언사를 주고받던 양측이다. 북한이 내보인 화해의 제스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북한의 태도는 정말 극적인 반전이라 부를 만하다. 지난 2년간 핵개발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몰두해온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북한은 2017년에만 총 17차례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지난 9월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6차 핵시험을 하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북한은 사활을 걸고 핵무기 완성에 매달려 왔으며, 이를 포기하는 일을 절대 없을 것이라고 거듭 밝혀 왔다. 그랬던 북한이 핵 프로그램 전반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실을 만한 소형 핵탄두 개발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북한에 대한 위협과 압박 수위를 또 한 번 높인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그 몇 달 사이에 무엇이 달라진 걸까? 북한이 외교적 해법으로 선회한 배경을 두고 크게 다음 세 가지 분석이 있다.

1. 드디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성했다.

이제 북한은 핵 억지력을 갖췄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보다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발사했다. 유사시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셈이다.

북한은 시험발사를 성공리에 마쳤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마침내 역사적인 국가 핵 무력 완성 완결 단계에 진입했다.”고 선언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에 대한 일각의 의구심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북한이 보여준 기술 개발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는 데 대부분 전문가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북한이 미국 전역을 타격할 능력을 갖추기 전까지는 핵 동결을 비롯한 핵 협상 자체에 나서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있었다. 이제 북한이 대화에 나선다는 것은 북한이 협상용으로 쓸 수 있는 전력을 구축했다는 뜻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2.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와 압박이 효과를 거두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여러 차례 북한을 향한 강도 높은 경제 제재와 압박을 언급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것이 효과를 거둬 초조해진 북한 정권이 일종의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다. 사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9일 북한의 대화 제의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는 전략이 결국 이렇게 분명히 효과로 나타났지 않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뒤 미국에 와서 방북 결과를 설명했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미국의 최대 압박 전략이 외교적 타결을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는 최대한의 압박 전략의 핵심 요소이기도 한데,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23일 자로 “유례없는 대북 고강도 제재”를 발효해둔 상태다. 북한과 거래를 끊지 않아 숨통을 틔워주는 중국 은행들을 제재할 실질적인 방법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어쨌든 북한 정권이 계속된 제재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이제 핵무기 개발을 완성한 북한은 경제 개발에 눈을 돌려 이른바 군사-경제 병진 노선에 박차를 가하려 할 텐데,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한 경제 개발은 쉽지 않은 과제로 남는다.

3.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대화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대단히 중요하고 어려운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평창올림픽을 남북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자는 신호를 보내자, 문재인 정부는 발 빠르게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대화 채널을 가동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만난 데 이어 이들을 청와대로 직접 불러 북한에 확고한 대화 의지를 전했다. 이어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특사단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는 건 11년 만의 일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와 방북 사실을 청와대에 보고하자마자 미국을 찾아 북한의 메시지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한 사실을 백악관에서 정 실장이 직접 발표하는 극적인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았다. 한국의 절대적인 이해관계가 달린 한반도 정세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작 한국이 배제되고 소외될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이 북한에 대한 정책을 결정해버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의견이 무시되지 않는 상황을 가장 경계해 왔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선하는 데 앞장섰다. 대화에 필요한 여건이 어느 정도 조성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분명 북한 지도부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위에 언급한 요소들이 전부 다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여전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오랜 세월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지속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관련 국가들이 모두 얼마만큼의 의지를 가지고 대화에 나설지는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문제다.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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