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를 재편하는 일은 물론 오랫동안 정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대단히 정치적인 행위였습니다. 소송의 원고 측도 대법원에 제리맨더링 자체를 금지해달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쨌든 선거구를 다시 그리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 인구구조에 따라 바뀐 유권자 지형을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원고 측은 대법원이 극단적인 제리맨더링은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날뿐더러 폐해가 크다는 점을 명확히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UC 어바인의 버나드 그로프만과 하버드대학교의 개리 킹은 지난 2007년 학술지 <선거법>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를 권투 심판에 비유했습니다.
링에 오른 두 선수는 분명 상대방을 때려눕히고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심판은 로블로우 같은 반칙을 범하지는 않는지 등 규정을 지키며 시합하고 있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한다.
수십 년간 선거구 재편과 획정 문제를 연구해 온 두 정치학자는 어디까지 제리맨더링을 용인해야 할지, 어느 선을 넘으면 지나친 것으로 간주하고 규제하면 좋을지 일종의 기준선을 제시했습니다. 의역하면 “균형 잡힌 선거구 감별법”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 방법은 많은 사회과학자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기준선에서 벗어난 선거구일수록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나눈 것이 됩니다. 그로프만과 킹의 표현을 빌리면 득표율과 의석 배분율이 정확히 일치해야만 균형 잡힌 선거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원칙인데, 앞서 대법원이 선거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비례대표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청원을 미국 헌법에도 그런 규정이 없다며 기각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법원은 46%를 득표한 정당이 의석의 46%를 차지하는 것이 균형 잡힌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이번에 공화당이 46% 득표율로 의석의 60%를 차지했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46% 언저리의 득표율로도 의석의 60%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어야 균형 잡힌 선거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만약 민의를 왜곡한 듯한 선거 결과가 잇달아 나온다면 법원은 현행 선거구를 정한 의회에 선거구와 선거 결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위스콘신주 소송 원고 측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산출한 수많은 지표를 들며 위스콘신 주의회 선거가 유권자들의 표심과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했다고 지적할 계획입니다. 위스콘신주 법원 재판부의 판사 세 명은 2011년 획정한 선거구를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효율성 격차(efficiency gap)라는 지표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효율성 격차는 넓은 의미에서 사표(死票)를 측정하는 지표로, 시카고 대학교 법학대학원의 니콜라스 스테파노풀로스 교수와 정치학자 에릭 맥기가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넓은 의미의 사표란 낙선자가 받은 표를 뜻하는 사표의 본래 의미에 더해 당선자가 승리하는 데 필요한 표 이상의 표까지도 포함합니다. 양대 정당이 받은 사표가 비슷한 선거에서는 주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효율성 격차도 크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표가 한 정당에 몰리면 효율성 격차도 커지는데, 사표가 많다는 건 그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고 넓게 흩어져있지 않다는 뜻으로 선거만 놓고 보면 효율성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결국, 효율성 격차라는 지표는 앞서 언급한 한데 묶기(packing)와 갈라놓기(cracking) 전략을 얼마나 잘 썼는지를 수치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스테파노풀로스와 맥기의 계산에 따르면 2011년 획정한 위스콘신주 선거구의 효율성 격차는 지난 40년간 미국에서 치른 그 어떤 선거 결과보다도 큽니다. 스테파노풀로스는 이렇게 심각하게 표심을 왜곡하는 선거구가 획정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잘못된 선거구를 토대로 선거를 거듭하다 보면 민주당은 영원히 여당이 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위스콘신주 재판부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현행 선거구가 유지되는 한 공화당 의석 비중은 전체의 50% 아래로 내려갈 일이 없다.”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키스 개디 교수는 위스콘신 주의회가 선거구를 제리맨더링하는 데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개디 교수는 법원이 제리맨더링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지원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합니다. 지난 8월 대법원에 제출한 변론서에서 개디 교수는 그로프만 교수와 함께 유권자마다 지니는 한 표의 가치가 조금씩 다른 이유를 철저히 분석해 그 가운데 얼마만큼이 인위적인 결과인지 밝혀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위적인 결과란 여당이 야당에 불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한 결과를 뜻하며, 다시 말해 제리맨더링을 수치화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개디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앞서 맡았던 역할과 사뭇 배치되는 행동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습니다. 개디 교수는 말했습니다.
“제가 위스콘신주 선거구를 획정하는 데 구체적인 도움을 준 건 전혀 없습니다. 저는 그저 여러 측정법이나 방법론을 알려줬을 뿐입니다. 결정을 내리고 지도 위에 선을 그은 건 그 사람들이지 제가 아닙니다.”
시간을 되돌려도 같은 조언을 해주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제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반면 위스콘신주 공화당은 대법원에 제출한 변론서에서 2011년 선거구를 무효라고 판결한 위스콘신주 법원 재판부의 판결을 가리켜 “잘못된 데다가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효율성 격차를 근거로 공화당이 선거구를 억지로 뒤틀어 획정했다고 결론짓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인데, 공화당은 밀워키나 매디슨 등 대도시로 몰려들어 한데 묶기(packing) 효과를 내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전략에 맞서 주어진 권한을 적절히 사용했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들은 또 원고인 민주당 측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가뜩이나 선거구를 다시 정하는 데 있어 월권을 행사하는 사법부에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버지니아텍의 정치학자 니콜라스 괴데트는 공화당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괴데트 교수는 특히 단 한 차례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선거구가 어느 당에 얼마나 유리하게 짜였는지, 얼마나 편향되고 왜곡됐는지를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2010년대 들어 재편된 선거구에서 한 번은 한쪽 정당에 유리한 선거 결과가 나왔다가 다음번엔 반대당이 더 효과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겁니다. 효율성 격차라는 개념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비판적인 괴데트는 자신은 진보 성향의 민주당원이라고 먼저 밝혔습니다.
“제가 아무리 민주당원이라고 해도 법원이 적절하지 않은 측정법을 바탕으로 적절하지 않은 개입을 계속하는 것을 지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괴데트 교수는 제리맨더링 문제를 법정에서 다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관위를 비롯한 관련 위원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13개 주에서는 초당적, 혹은 중립적인 인물이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구성해 주의회 선거를 치를 선거구를 재편합니다. 연방 하원 선거 선거구 획정을 위원회에 맡기는 주도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뉴저지를 비롯해 여섯 곳에 이릅니다. 위원회가 선거구를 획정한 주들에서 특정 정당에 표가 쏠리는 현상이 덜 일어나고 접전이 펼쳐지는 선거도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아마 2004년 비스 대 주베리러 판결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거구 재획정은 사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을 것입니다. 케네디 대법관도 제리맨더링의 편파성 문제는 대법원 소관이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케네디 대법관이 위스콘신주가 정한 2011년 선거구를 위헌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큰 진보 성향 대법관 네 명과 뜻을 같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앞서 케네디 대법관이 언급했던 제리맨더링의 편파성을 가늠할 마땅한 기준이 설 수도 있습니다. 한편 대법원은 위스콘신주가 획정한 선거구가 공정성을 가늠하는 몇 가지 지표에서 문제가 있으므로 향후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제리맨더링에서 벗어난 사례라고 선을 긋고, 이 문제를 다시 하급법원이 다시 판단하도록 돌려보낼 수도 있습니다.
케네디 대법관은 법원이 인종이 아니라 지지 정당별로 나눈 제리맨더링을 규율하고 억제하는 데 더 힘써야 한다는 의견을 낼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연방 법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 하원 선거구 두 곳에 무효 판결을 내렸습니다. 두 곳 모두 흑인 유권자를 한 선거구에 집중적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지난 5월 대법원도 연방 법원의 판결에 동의했습니다. 다만 케네디 대법관은 다른 보수 성향 대법관들과 함께 일부 반대 의견을 냈는데, 노스캐롤라이나주는 흑인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를 한데 묶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스탠포드 법학대학원의 나다니엘 퍼실리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인종 갈등과 차별은 언제 어떻게 불이 붙을지 모르는 이슈인데, 제리맨더링에 관한 논란과 논의도 그동안 인종 문제에 너무 집중된 측면이 없지 않거든요. 케네디 대법관이 보기에도 이제 인종 문제는 그만 건드리고 오히려 제리맨더링의 본질에 더 가까운 지지 정당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게 나아 보일 수 있죠.”
위스콘신주 의회 선거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결국 미국 사법부가 모든 주에서 획정한 각종 선거구를 앞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어디까지 개입할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2020년 인구조사 이후 다음번 선거구를 획정할 때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제리맨더링을 시도할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그동안 진행된 제리맨더링으로 인해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려면 최소한 전체 득표율에서 공화당보다 6%는 앞서야 한다고 분석합니다.
데일 슐츠가 보기에 이는 이미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현재 위스콘신주 공정선거 프로젝트의 공동 회장을 맡고 있는 슐츠는 위스콘신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중립적 선거구 획정위원회의 필요성을 홍보했습니다.
“대법원이 다음 달 판결에서 원고 측의 제안을 현명하게 판단해준다면 선순환 효과가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선거구를 획정하는 일을 의회가 아니라 중립적인 기관의 손에 맡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죠. 지금 제도하에서는 유권자가 정당과 후보를 고르는 대신 정당이 유권자를 고르고 가려내고 있어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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