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태양절 열병식을 취재한 BBC 존 서드워스(John Sudworth) 기자가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가운데 한 부상의 발언이 들리는 부분은 워딩 그대로, 영어 더빙에 원래 인터뷰 내용이 들리지 않는 부분은 영어 해석을 다시 우리말로 옮겼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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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열병식이 열렸던 평양 김일성 광장은 북한 정부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 몇몇과 낯선 형태의 차량 몇 대를 제외하면 텅 비어 있었습니다.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는 고립된 나라의 수도라는 사실이 새삼 와 닿는 풍경이었습니다.
북한 정부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북한 외무성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한성렬 외무부 부상과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열병식에서 대외적으로 선보인 무기에 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새로운 형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었는지 한 부상에게 물었습니다. 원론적인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경애하는 최고 지도자 김정은 동지께서는 올해 역사적인 신년사에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 준비의 최종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한성렬 부상은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제가 군사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열병식에서 선보인 미사일들 가운데 대륙간 탄도 미사일도 포함됐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위협과 도발에 맞서 우리 공화국의 정부와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종류의 미사일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냐는 질문에 한 부상은 단호하게 미국이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면 “그날로서 전쟁”이라고 답하며, “우리는 매주, 매달, 매년이고 우리가 정해놓은 일정에 맞춰 계속 실험과 개발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벼랑끝 전술은 북한이 오랫동안 취해 온 전략으로, 도발을 주고받으며 지역 정세의 긴장감을 높인 뒤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협상 테이블에서 원하는 외교적, 경제적 지원을 끌어내는 전략입니다. 위기가 해소된 뒤 필요하면 타결책으로 합의했던 군축 조항을 어겨 긴장감을 다시 고조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북한은 매번 핵무기 보유국이 되는 궁극적인 목표에 한 발짝씩 다가갔습니다.
북한의 지속적인 무기 개발에 주변 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 많은 나라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내놓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호전적인 발언들은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이 내놓은 주장의 대부분은 조건절입니다. 만약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다, 그러나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다는 식이죠. 한성렬 부상의 인터뷰 내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미국이 (북한을 향해) 무모한 군사 작전을 감행한다면 그날로써 전쟁입니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호전적인 태도보다 ‘미국이 선제타격과 같은 군사적 행동을 취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내세웠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다만 한 부상과의 인터뷰에서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대해 전과 달리 우려하는 모습이 읽히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시리아에 공습을 감행하는 것을 보고 북한 정권은 분명 불안해하는 듯했습니다. 한성렬 부상은 이제 미국이 적국을 공격하는 것뿐 아니라 공격을 계획하는 것도 위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미국이 우리 공화국의 주권을 침해하려 하면 우리는 이에 즉각 대응할 것입니다. 미국의 항시적인 핵 위협, 전쟁 연습 소동 때문에 우리는 부득이하게 여기에 강력히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과 미국 모두 물러서지 않고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큰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합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전쟁을 벌이면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미국 정부는 모든 수단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결국 처음부터 가장 가능성 큰 방법으로 점쳐졌던 외교와 강력한 경제 제재를 병행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비슷한 접근법이 앞서 실패했다는 데 있습니다. 과연 경제 제재와 외교적 해법으로 전체주의 국가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꺾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한성렬 부상은 이라크와 리비아에서 지난 몇 년 사이 미국이 주도한 정권 교체 시도가 불러온 혼란을 비롯해 최근 일어난 여러 사건에서 북한이 확실히 교훈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세력 균형이 무너진 곳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즉각 전쟁이 일어나는 걸 봤습니다. 한쪽은 핵을 가졌는데, 다른 쪽은 핵이 없다면 이 또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전쟁으로 치닫더군요. 이는 리비아와 시리아를 비롯해 중동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현실을 지켜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외신 기자들의 취재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수도 평양 밖을 벗어날 수 없는 외신 기자들에게는 철저히 계획되고 사전에 조율된 취재만 허락됐습니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북한 정권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이들을 잡아 가둬둔다는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과 의혹도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핵무기 개발에 힘쓸 것이 아니라, 그런 수용소를 폐지하고 북한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 아니냐고 한성렬 부상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한 부상은 단호히 답했습니다.
“우리 사회제도에 대해서 누가 시비 중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식 사회주의에 대해 우리는 확신이 있습니다. 인민은 우리 공화국의 중추입니다. 우리 인민의 안전과 인권은 당연히 최대한 보장됩니다. 방금 말씀하신 소위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한 것은 한 마디로 우리 공화국의 적들이 완전히 날조하고 이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우리나라를 중상 모략하고자 퍼 나른 거짓입니다.”
한 부상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군사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주권국가로서 주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길을 갈 권리가 있으며, 그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행보를 보면, 한 부상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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