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는 후회를 모른다.”
“사이코패스에게는 뉘우칠 수 있는 능력도, 그럴 만한 감정이란 것도 없다.”
이런 주장은 사실상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사이코패스를 진단할 때 후회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하나의 기준이 될 정도입니다. 냉혈한 혹은 아예 감정이 없는 인간으로 종종 묘사되는 사이코패스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피상적인 감정밖에 느끼지 못하는(emotionally shallow)” 사람입니다.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 아리엘 배스킨소머스(Arielle Baskin-Sommers)가 이끄는 예일과 하버드대학 연구팀은 이번 주 미국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기존의 통념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연구진은 사이코패스도 자신이 내린 몇몇 결정에 대해 뉘우치는 감정을 느끼는 징후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후회가 남는 결정을 통해 배우려 하지 않고 다음에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배스킨소머스 교수 연구팀은 범죄, 마약 중독, 협박 등 반사회적 행동 징후를 보이는 62명을 모집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공식적으로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연구진은 “정신병리 3단계 자가 보고(Self-Report Psychopathy-III)” 방법을 활용해 62명이 각각 어느 정도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는지 측정했습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도박 실험을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다양한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룰렛 두 개가 주어졌고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공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공을 던지기 전에 어느 룰렛에서 얻을 수 있는 점수가 더 높은지 알지 못한 채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룰렛을 돌린 뒤에 이들은 다른 룰렛을 택했다면 얻을 수 있는 점수의 기대값이 얼마였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다른 룰렛을 돌렸다면 받을 수 있던 기대값을 확인했을 때의 감정을 “매우 실망”부터 “매우 만족”까지 점증하는 척도로 답해달라고 물었습니다. 사이코패스 성향과 관계없이 점수를 잃었거나 더 받을 수 있었던 참가자들은 실험이 끝난 뒤 실망과 후회하는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참가자들은 같은 실험을 반복했을 때 전에 후회했던 경험에서 느꼈던 바를 참고해 행동을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 가운데 한 명인 하버드대학교의 조슈아 벅홀츠 교수는 사이코패스의 반사회적 행동은 그들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서 나타난다기보다는 후회를 해도 이를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데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존에 사이코패스는 모두 냉혈한에다가 무언가를 느끼지도 못하는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사이코패스도 무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들은 그 감정을 교훈으로 삼아 다음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을 개선하지 못합니다. 이들에게는 좋은 선택, 더 나은 결정 같은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겁니다.”
제한된 표본을 대상으로 시행한 한 번의 실험 결과 때문에 사이코패스에 대한 치료 방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번 논문을 발표한 연구진은 사이코패스 환자들이 자신이 느낀 감정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그 교훈을 토대로 생각과 행동을 바꾸도록 훈련하는 프로그램이나 설명서를 개발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벅홀츠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번 연구가 사이코패스 연구 전반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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