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미국에서 이번주는 추수감사절 연휴입니다. 지지 후보에 따라 정치적인 견해가 극단적으로 갈린 대선 이후 맞는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의 클레어 안스베리 기자가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가족이나 친구와 화해하는 법을 정리해 소개했습니다. 미국 대선, 트럼프와 클린턴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만 특히 세대 간에 정치적인 견해가 뚜렷하게 갈라지는 한국에서도 생각해볼 부분이 많은 이야기라고 생각해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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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주 랭카스터에 사는 캐티와 제이 인그램(Cathy and Jay Ingram) 부부는 선거가 끝난 주말 라크로스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아들을 차로 데려다주며 비로소 선거 과정에서 얻은 마음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캐티는 트럼프를 뽑은 남편 제이가 “클린턴 지자들에게서는 악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했을 때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제이는 아내가 상처를 받을 줄 생각하지 못했다며 누구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 한 말이 아니었다고 사과했습니다.
“(선거 기간 내내) 감정이 자꾸 앞서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전에는 그런 일로 상처 받을 일이 없었을 거라며 캐티는 말했습니다.
지지하는 후보, 정치적 견해가 달라 한 가족 안에서도 갈라서는 일이 적잖았던 선거가 끝나고 가족, 친구들은 다시 공통 분모를 찾아 대화를 복원하고 유대를 회복하는 과제 앞에 섰습니다. 마침 추수감사절과 이어 12월 연휴 기간이 오고 있습니다. 연휴에 모이고 만나게 되는 친척들 가운데는 나와 생각이 아주 많이 다른 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불필요한 마찰이나 얼굴 붉히는 일을 피하려면 일단 흥분하지 말고 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요령도 익혀두면 좋습니다.
샌디에고에서 원만한 결혼생활을 돕는 결혼생활 상담사로 일하는 크레이그 램버트는 3년 동안 교제한 여자친구 데비 사이드가 트럼프를 지지하며 여성이나 소수 계층, 사회적 약자를 향한 부적절한 발언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슬픔과 분노, 절망이 교차했죠. 반대로 경영 및 생활 관련 상담사로 일하는 데비는 데비대로 크레이그와 예의를 갖춘 지적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틀어졌던 적은 없어요.”
“한 마디로 양쪽 극단에 서서 완전히 갈라져 버렸죠.”
선거가 끝난 주말, 둘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주앉아 어떻게 상황을 헤쳐나갈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둘 다 서로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무 방어적으로만 대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내세웠다는 진단에도 뜻을 같이했습니다. 크레이그는 아주 희망적인 대화였다고 돌아봤습니다.
미네소타 대학교의 결혼, 가족 상담치료소장인 윌리엄 도허티는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커플은 대선에 관한 주제는 아예 멀리하는 게 낫다고 현실적으로 조언합니다. 그 주제를 상자에 담아 봉인한 뒤 구석에 넣어두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라는 겁니다.
“1년 반 전에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정치적인 견해 차이가 있었다면 대선을 앞두고 그 견해 차이가 알아서 좁혀졌을 가능성은 대단히 낮습니다.”
도허티 소장은 또 선거 결과에 울분을 토하든 희열을 만끽하든 감정을 분출하고 싶을 때는 꼭 자신과 견해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라고 덧붙였습니다. 선거 결과에 낙담해 세상이 끝났다고 비관하는 것도 그다지 건강한 전략은 아닙니다.
선거가 치러지지 몇 주 전에 퓨리서치 센터가 진해한 조사 결과를 보면 대다수의 커플이 같은 후보를 찍을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기사 머리에 소개한 결혼 21년차 인그램 씨 부부 같은 이들이 분명 아주 흔하지는 않습니다. 인그램 씨 부부는 결혼 후 줄곧 민주당을 지지해왔고 진보적인 견해를 공유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앞두고 남편 제이가 트럼프를 지지하기 시작했고 그런 생각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리기 시작해 가족, 친구의 우려를 샀죠. 그의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캐티 인그램은 자신의 부모, 대다수 친지들과 마찬가지로 클린턴을 지지했습니다. 인그램 씨 집 앞마당에는 트럼프와 클린턴의 팻말이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공화당 성향이 강한 펜실베니아 주의 시골 지역에서는 꽤 이색적인 풍경이었죠.
인그램 씨 부부는 집에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정치가 일상에 개입하는 걸 피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며 대선 이야기로 분위기를 망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캐티(52)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은퇴한 남편 제이(71)는 아내를 반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트럼프가 이랬다는 얘기 들었어? 힐러리는 어쨌대, 뭐 그런 얘기였죠.”
캐티는 5분 정도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방으로 갔습니다. 제이가 좀처럼 이야기를 멈추지 않으려는 날에는 손을 들어 여기까지만 하자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캐티는 이메일 스캔들이 자꾸 불거졌을 때 클린턴을 향한 자신의 지지도 다소 시들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를 뽑을지 마음을 굳힌 뒤에도 그 사실을 남편에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4년 동안 만족스럽지 못한 정책을 펼 때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라는 비난을 받기 싫었어요.”
그렇다고 자신은 힐러리를 찍겠다고 미리 말했다가 트럼프가 이기면 남편이 한동안 으스대는 것도 보기 싫었다고 캐티는 덧붙였습니다.
선거 당일 부부는 10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캐티는 부엌에 서서 커피를 내리며 서 있다가 컴퓨터를 열고 결과를 확인하던 남편의 얼굴에 확연히 번지는 미소를 봤습니다. 큰아들도 트럼프를 찍었습니다. (작은아들은 이제 14살이라 아직 투표권이 없습니다) 캐티는 기뻐하지도, 그렇다고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처음 마음먹은대로 자신이 누구를 찍었는지 가족에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 되면서 점점 트럼프의 승리가 정책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해졌습니다. 캐티의 관심사이자 실제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의료보험, 환경 정책, 대법관 임명 문제 등에서 오바마 정권과는 분명 다른 정책이 시행될 것 같았습니다. 캐티는 선거 이후 내내 우쭐해 있던 남편을 향해 그만 좀 으스대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했습니다. 앞서 올렸던 페이스북 포스트 몇몇을 지웠고, 더는 소셜미디어에 트럼프 관련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제 그만해도 될 때가 왔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캐티는 선거가 끝난 덕분에 일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오늘 두 후보 캠프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얘기까지) 시시콜콜 듣지 않아도 되는 상황 자체에 이미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몇 가지 불편한 상황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제이 인그램 씨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연휴 때 처가 식구들과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처가 식구들도 오히려 그 결정을 반겼습니다. 캐티의 어머니인 제니 마스덴 씨는 차라리 사위가 안 왔으면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캐티 인그램 씨는 여전히 이런 상황 자체가 좀 서운합니다. 모두가 즐거워야 명절인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죠.
“아쉬워요. 그렇지만 또 제 친척들이 정치든 트럼프든 뭐든 민감한 얘기는 애초에 꺼내지 않으려 조심조심하고 쉬쉬하느라 정서적으로 피곤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것도 싫어요.”
캐티는 크리스마스에는 상황이 좀 나아져 모두가 한데 모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 윌리엄 도허티 소장의 “정치적 견해가 다른 가족, 친구와 화해하기” 다섯 가지 팁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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