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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이제 와서 트럼프를 내칠 수 있을까?

옮긴이: 지난 주말 미국에서 가장 큰 이슈는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해 공개한 트럼프의 음담패설 동영상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이례적으로 자신이 한 말이 적절치 않았다며 사과는 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며 대선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나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거리를 두며 그의 사퇴를 압박하는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투표용지에서 트럼프의 이름을 빼기는 너무 늦었다”는 제목의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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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가 업데이트된) 10월 7일 밤 기준으로 자신의 지지정당을 공화당이라고 밝힌 유권자 가운데 3만4천 명 이상이 이미 사전 투표로 올해 선거에 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박빙이 예상되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8천 명, 플로리다 주의 5천 명을 포함한 수치다. 정당 정체성(party identity) 혹은 지지정당, 정당 소속감이 중요한 미국에서는 투표를 할 때 지지정당을 표시할 수 있는데,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이라고 반드시 트럼프에게 표를 주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이 그랬다고 가정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갑자기 사전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이야기를 하는 건 규정상으로도, 관례를 보더라도 공화당이 트럼프를 내치기는 이미 늦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공화당의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인 마크 커크(Mark Kirk)는 지난 6월, 트럼프가 멕시코계 이민자의 후손인 판사는 공정한 판결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종차별 발언을 했을 때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바 있다. 문제의 동영상이 일파만파 퍼진 뒤 커크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트럼프는 사퇴해야 한다. 공화당은 긴급 후보 교체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당장 규정을 바꿔 실행에 옮겨야 한다.” – 마크 커크 의원 트위터 –

워싱턴포스트도 지난 8월 초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는 이라크전쟁에 참전한 아들을 폭탄 테러로 잃은 전사자의 무슬림 부모와 설전을 벌이며 가뜩이나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기는커녕 더 잃고 있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이때부터 후보 교체 카드를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물론 트럼프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됐다. 공화당이 이제 와서 트럼프가 싫다고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다. 후보 교체는 부득이한 상황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서만 진행될 수 있다.

조지아대학교에 출강하는 정당 전략 전문가 조시 푸트남은 공화당의 경우 관련 규정으로 공화당 전당대회 규정 9조가 있다고 설명한다. 9조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지명된 대통령 후보나 부통령 후보가 죽거나 스스로 사퇴했을 때 혹은 그 외의 원인으로 대통령이나 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을 때 후보를 교체하는 권한은 전당대회를 관장하는 공화당 전국위원회에 있다. 전국위원회는 후보를 새로 임명하기 위해 새로운 전당대회를 개최할 수 있다.

죽거나, 스스로 사퇴하거나, 그 외의 원인이라는 총 세 가지 조건에 “공화당원들이 원해서”는 포함되지 않는다. 푸트남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규정은 후보 자리가 공석이 됐을 때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놓은 규정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교체하는 데 필요한 명분을 제공하려고 있는 규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외의 원인’ 부분이 애매하니 해석하기 나름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겠죠. 문자 그대로 보면 그럴 수 있지만, 세칙을 보면 건강상의 이유로 스스로 사퇴할 수도 없는 상황 등 불가피한 상황에 국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규정의 원래 취지가 그렇다는 겁니다.”

공화당이 트럼프를 내치기로 했다면 규정 자체를 바꾸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전국위원회의 법규위원회의 과반 찬성을 얻고 전체 회의에서 2/3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거니와 개정을 추진한다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선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뉴욕타임스의 야미치 알신도어 기자는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규정을 바꾸는 문제를 포함해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고 트위터에 썼지만, 공화당 대변인은 그런 회의를 한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과거 사례를 살펴봐도 미국 역사에서 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후보를 교체한 사례가 많지 않다. 특히 최근의 사례는 어쩔 수 없이 허둥지둥 후보를 교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보통 어떻게 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2006년 플로리다 주 공화당 하원의원 마크 폴리(Mark Foley)는 외설적인 표현이 담긴 문자를 보낸 것이 알려져 선거를 5주 앞두고 사퇴했다. 공화당은 떠오르는 신예 정치인이던 주 상원의원 조 네그론(Joe Negron)으로 후보를 교체하려 했지만, 규정상 투표용지에 인쇄된 이름을 바꿀 수 없는 시점이었다. 결국, 공화당은 유권자들에게 폴리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당선되면 당이 책임지고 네그론을 의회에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국 선거에서 폴리는 패했고, 공화당은 이변이 없는 한 지킬 수 있던 의석을 잃었다.

후보가 갑자기 사망한 경우에는 결론이 사례별로 다르다. 2000년 선거에서 8년간 미주리 주지사로 일한 민주당의 멜 카나한(Mel Carnahan)은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했지만, 선거를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10월 16일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이미 부재자 투표가 시작된 상황이었고, 투표용지의 이름을 바꿀 수는 없었다. 민주당은 유권자들에게 카나한 후보가 당선되면 고인의 부인 진 카나한을 상원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카나한 후보는 승리했다.

2년 뒤 이번에는 민주당의 미네소타 주의 연방 상원의원 폴 웰스톤(Paul Wellstone)이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카나한의 경우보다 선거일까지 기간이 더 짧았다. 미네소타 주 선관위는 상황을 참작해 민주당이 후보를 교체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대신 이미 부재자 투표 등에서 웰스톤 후보가 받은 표는 새 후보에게 이전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상원의원직에 도전한 건 부통령까지 지냈던 월터 몬데일(Walter Mondale)이었는데, 결국 선거에서 민주당은 패했고, 지킬 수 있으리라 여겼던 상원 한 석을 잃었다.

2002년에는 뉴저지 주에서도 상원 후보가 막판에 교체됐다. 주인공은 민주당의 뉴저지 주 상원의원 로버트 토리첼리(Robert Torricelli)인데, 잇따른 스캔들이 터지며 패배가 확실해 보이던 시점에 토리첼리는 스스로 사퇴한다. 상원의원 경력이 있던 프랭크 로텐버그(Frank Lautenberg)가 대신 상원의원직에 도전하겠다고 후보를 자처했다. 뉴저지 주 대법원은 로텐버그의 손을 들어줬고, 선거를 34일 남겨둔 시점에서 투표용지에 있는 토리첼리의 이름을 로텐버그로 바꿔 다시 인쇄하라고 지시했다.

후보를 교체할 때 더 큰 문제가 되는 건 시점에 따라 이미 투표가 시작된 상황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앞서 살펴본 사례에도 그랬던 것처럼 트럼프의 이름을 투표용지에서 바꾸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말이다. 주별 선관위 규정에는 투표용지를 수정하거나 후보를 바꿔 새로 인쇄할 수 있는 기한이 명백히 정해져 있다.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꼭 필요한 규정이다. 플로리다, 미시건,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텍사스, 버지니아 등 이미 많은 주에서 해당 기한이 지났다. 공화당이 트럼프를 내치기로 하고 성공적으로 후보를 교체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3만4천 표는 버려야 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오차 범위 접전이라도 해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은 열세에 놓여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후보 교체는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몇만 표를 버리면서까지 성공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대단한 모험인 셈이다.

규정상 유권자의 표를 직접 더해 대통령을 뽑지 않고 선거인단이 주별 선거 결과에 따라 표를 행사하는 미국의 선거 제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공화당이 트럼프가 아닌 다른 후보를 추대한 뒤 트럼프를 찍은 표를 새 후보에게 던져달라고 선거인단 538명을 설득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마찬가지로 법정 공방 끝에 공화당이 뜻한 대로 일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무척 큰 시나리오다. 많은 주의 선거인단은 자신이 대표하는 주의 선거 결과에 따라 투표해야만 한다고 법으로 규정돼 있다. 선거 결과와 다른 표를 던져달라고 부탁하는 건 법을 어겨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출신 주의 선거 결과를 그대로 반영해 투표하는 것이 관례로만 남아있고 엄격한 법 규정은 없는 주도 있다.

예를 들어 조지아 주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투표용지를 교체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신 추대된 새로운 공화당 후보 X를 대통령으로 뽑고자 투표용지 상에서는 트럼프에게 표를 달라는 공화당 지도부의 호소에 따라 트럼프를 찍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법에 따라 트럼프에게 간 유권자의 표는 선거인단도 반드시 트럼프에게만 보내야 하는 주들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가 갈라지면 선거인단의 과반인 270명을 얻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더 극단적으로 차제에 공화당이 선거인단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위헌 소송을 낼 수도 있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은 시나리오다.

이상 검토한 대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전당대회에서 결정된 대로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도널드 트럼프일 가능성이 무척 높다. 1996년 공화당이 인기 없는 대통령 후보를 맞아 선택한 전략은 “대통령 후보와 거리 두기를 통해 각자 살길 찾기”였다. 즉,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을 막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했던 밥 돌 후보와의 연대나 친분을 과시해봤자 지역구 선거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한 공화당 후보들은 밥 돌 후보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자신의 의제를 내세우고 지역구 이슈에 집중했다.

트럼프를 언급하는 게 표를 얻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정국이 지속되고 있다. 초조해진 공화당 후보들의 대응책도 1996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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