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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피 그라프 이후 27년만에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세레나 윌리엄스

옮긴이: 테니스에서 그랜드슬램(Grand Slam)은 같은 해에 4대 메이저대회(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를 모두 우승하는 걸 뜻합니다. 카드 게임에서 압도적인 패로 완승하는 걸 일컫는 말에서 따온 이 단어에는 수많은 테니스 스타의 도전과 좌절의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이달 말에 만 34살이 되는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가 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US오픈에서 우승하면 27년 전 슈테피 그라프 이후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코트 위에서는 물론 경기 외적으로도 엄청난 압박을 견뎌내야 하는 그랜드슬램의 역사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1969년 US오픈의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호주의 테니스 영웅 로드 레이버(Rod Laver)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렸습니다. 레이버는 그해 초 모국에서 열린 호주 오픈에서 어렵사리 우승한 뒤 프랑스오픈, 윔블던에서 잇따라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기세를 이어 US오픈마저 우승하면 오픈 시대(Open era: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들이 모두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뀐 1968년 이후를 일컫는 말) 최초 그랜드슬램, (1962년에 이어) 최초로 두 차례 그랜드슬램에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승 트로피 하나 이상의 엄청난 타이틀이 걸린 대회를 앞두고 레이버는 동료 선수였던 뉴질랜드 출신 존 맥도널드(John McDonald)에게 대회가 열리는 뉴욕으로 와달라고 부탁합니다. 말동무, 운전기사, 연습 상대, 코치, 비서에 심지어 가볍게 한잔하며 긴장을 풀어줄 술친구까지 맥도널드에게 주어진 임무는 정말 여러 가지였습니다. 레이버는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면 주저 없이 말합니다.

“(존은) 정말 내가 필요한 거라면 뭐든지, 뭐든지 다 해줬죠. 대회를 앞두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거든요. 그 어려운 대회를 치러내는 데 존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어요.”

존 맥도널드 외에도 큰 도움을 준 인물은 레이버의 친구이자 배우였던 찰튼 헤스톤(Charlton Heston)입니다. 헤스톤은 맨하탄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대회 기간 동안 비워줬습니다. 레이버가 대회 내내 테니스 코트에만 있다간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에 부담을 느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알던 헤스톤은 연습하거나 시합 때 말고는 밖에서 남들이 하는 말들에 다 귀를 닫고 푹 쉬도록 해준 겁니다.

레이버의 아내는 당시 만삭의 몸이라 뉴욕에 오지 못하고 호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US오픈 결승전이 열릴 때쯤이 출산 예정일이었습니다. 레이버는 1969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두 번째 그랜드슬램이자 오픈 시대 첫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됩니다. 아들도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1969년은 당연히 레이버 인생에서 최고의 해로 꼽힐 만합니다.

지금까지 테니스 역사상 (성인 단식 기준) 그랜드슬램은 총 여섯 차례 있었습니다. 1962년과 1969년 두 차례 달성한 레이버 외에 네 명이 더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사상 첫 그랜드슬램은 1938년 돈 버지(Don Budge)가, 두 번째는 1953년 미국 샌디에고 출신의 모린 코놀리(Maureen Connolly)가 달성했습니다. 특히 작은 모(Little Mo)라는 별명으로 불린 코놀리의 경우 불과 18살의 나이에 여성 첫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모린 코놀리는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출전한 아홉 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지만, 1954년 7월 불의의 사고로 선수 생활을 접습니다. 말을 타던 중에 그녀가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나타난 트럭을 보고 놀라 그녀를 내동댕이쳤고, 다리가 부러진 그녀는 다시는 코트 위에 서지 못했습니다.

레이버 이후로 남자 단식에서는 그랜드슬램이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1970년 또 다른 호주 출신의 테니스 스타 마가렛 코트(Margaret Court)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1988년 슈테피 그라프(Steffi Graf)는 여러모로 더욱 특별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합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세 가지 다른 재질(흙, 잔디, 하드코트)의 코트에서 치르는 4개 대회를 우승한 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렸고, 같은 해 열린 서울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내 골든슬램(Golden Slam)이라는 더욱 값진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올해 테니스 선수로는 이미 전성기를 지났다는 평가를 연일 무색게 하고 있는 절대 강자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가 그랜드슬램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을 차례로 우승한 윌리엄스는 US오픈에서도 1번 시드를 받았습니다. 일단 윌리엄스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메이저대회 우승 횟수에서 22회로 슈테피 그라프와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마가렛 코트는 총 24번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녀의 경력은 오픈 시대 이전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오픈 시대 이후 최다 우승은 아직 슈테피 그라프의 22회입니다.

최근 몇 년간 여자 테니스 단식에서 적수가 없었던 윌리엄스를 생각하면 아직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한 게 의아할 정도지만,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Martina Navratilova), 크리스 에버트(Chris Evert),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비욘 보리(Bjorn Borg),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풍미하고 있는 대스타들도 그랜드슬램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이제껏 총 여섯 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랜드슬램은 실력뿐 아니라 운도 따라야 하는, 그래서 하늘이 내려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레이버는 1930년대에 비행기가 아니라 배를 타고 일주일씩 대서양, 태평양을 건너 대회에 참가하고 이룩한 대선배 버지의 그랜드슬램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업적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레이버의 도전도 정말 간단치 않았는데, 1969년 호주오픈 준결승전에서는 토니 로시(Tony Roche)를 상대로 무려 90게임을 주고받는 대혈투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경기 스코어 7-5, 22-20, 9-11, 1-6, 6-3)

“정말 그 2세트만으로도 웬만한 한 경기 전체에 맞먹는 힘을 쏟아부어야 했죠. 정말 힘들긴 했지만 특별한 부담은 없었어요. 아직 시즌 초반(호주오픈이 첫 메이저대회)이었으니까요.”

오히려 부담은 그해 US오픈 결승전에서 다시 로시를 만났을 때가 훨씬 더했습니다. 레이버는 네 세트 만에 로시를 꺾고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윌리엄스 자매 이전에 가장 압도적인 기량으로 ‘테니스 여제’로 군림했던 스타를 꼽으라면 아마 슈테피 그라프일 것입니다. 그라프의 연습 파트너였고, 그라프에게 1988년 속절없이 무너졌던 수많은 선수 가운데 한 명이자, 현재 ESPN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매리 조 페르난데즈(Mary Joe Fernandez)는 그라프의 플레이가 완벽에 가까웠다고 회상합니다.

“특히 1988년 그라프는 정말 아무도 대적할 수 없었어요. 서브도 정말 좋았고, 포핸드는 강력했죠. 게다가 무엇보다 경기 템포를 상당히 빠르게 가져가는데 모두가 넋을 잃고 당했어요. 수비할 채비를 하기도 전에 공격이 들어온다고 할까요?”

1988년 그라프는 4개 메이저대회에서 치른 28경기를 통틀어 단 두 세트만을 내줬습니다. 윔블던 결승에서 나브라틸로바에게 한 세트, 그리고 US오픈 결승에서 가브리엘라 사바티니(Gabriela Sabatini)에게 한 세트. 당시 19살이었던 그라프에게 US오픈 우승 트로피를 건네며 전설 돈 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 네 실력이면 몇 번은 더 그랜드슬램은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이후 그라프는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17번이나 더 들어 올립니다. 하지만 한 해에 4개의 트로피를 쓸어 담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습니다. 1989년, 1993년 세 대회에서 우승한 게 최고였습니다.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도 조금만 삐끗하면 이룰 수 없는 것이 그랜드슬램입니다. 부상이 발목을 잡거나 컨디션이 떨어질 수도 있고, 갑자기 상대가 소위 ‘뭘 해도 되는 날’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1980년대 여자 테니스계는 그라프가 아니라 나브라틸로바의 전성시대였습니다. 그런 나브라틸로바에게도 그랜드슬램은 영광의 이름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좌절의 이름입니다. 1984년 호주오픈 준결승전에서 패한 뒤 12월에 열린 마지막 투어 대회에서 패하기까지 모든 경기에서 이겼으니, 정말 눈앞에서 타이틀을 놓친 셈입니다. 1983~84년 2년 동안 여섯 개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도 했으나 한 해에 4개를 들어 올리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특히 오늘날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려면 세 가지 다른 성질의 코트에서 모두 잘 해야 합니다. 세레나 윌리엄스는 올해 앞선 세 차례 메이저대회에서 21승을 거두는 동안 총 아홉 세트를 내줬습니다. 1988년 그라프가 28승을 거두면서 단 두 세트만 내줬던 데 비하면 덜 압도적인 기록입니다. 하지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면 세레나 윌리엄스는 마침내 전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레이버는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1969년 US오픈 당시) 저는 엄청난 압박을 느낀 덕분에 어떻게 보면 플레이 하나하나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세레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난달 신시내티에서 열린 대회(US오픈의 전초전 성격이 짙음) 결승전에서 여유 있게 상대를 누르는 모습을 봤을 때 다시 한번 확신이 들더군요. 세레나 윌리엄스는 해낼 것 같다는 확신이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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