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3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2010년 연구에서, 과잉 양육하는 부모를 가진 학생들은 새로운 생각과 행동에 대해 덜 개방적이었으며, 심리적으로 더 취약하였고 불안했습니다. 남의 시선을 더 의식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부모로부터 덜 감시를 받고, 자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학생들에게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1년 연구에서도, 과잉 양육하는 부모를 가진 학생들은 불안 장애와 우울증으로 약물을 복용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학생 438명을 대상으로 한 2012년 연구에 참여한 연구진들은 “과도하게 개입하는 양육 방식이 성인기에 진입한 자녀가 독립적인 성인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들을 연습하고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들을 제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학생 297명을 대상으로 한 2013년 연구에서, 과잉 양육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유의미하게 높은 수준의 우울증과 낮은 삶 만족도를 보였습니다. 이 연구는 이를 ‘학생들의 기본적인 자율성과 능력에 대한 심리학적 욕구를 억제한 결과’라고 밝혔습니다.
중부 지역에 있는 한 대학의 심리학자인 캐런 에이블(Karen Able, 그녀는 업무 특성상 가명을 요청하였습니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도하게 개입하는 양육은 대학교 학생들의 심리적 건강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모에게 물어보는 것과 독립적인 의사 결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합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인생의 많은 것들을 해준 경우-아침에 자녀를 깨우고, 혼자 갈 수 있는 곳에 태워다주고, 마감 시한과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돈을 내주고, 질문을 대신 해주고, 의사 결정을 대신 해주고, 대신 책임지고,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주고, 권위에 맞서주는 등- , 대학이나 직장에서 부모가 곁에 없을 때,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며, 적지 않은 경우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느낍니다. 이 문제의 기저에는 결국 자기 자신을 부모와 분리해서 볼 수 있는 능력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매들린 르바인(Madeline Levine)은 부모 자신도 모르게 과잉 양육을 하는 세 가지 양상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양육 방식은 부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녀에게 심리적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주장합니다. 그 양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미 자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자녀 대신 해주는 경우
둘째, 자녀가 완벽하진 않지만, 거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자녀 대신 해주는 경우
셋째, 부모의 양육 행동이 부모 자신의 욕심에 의해 동기 부여가 되는 경우
이런 양육 방식은, 자녀들이 스스로 창의성을 키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위기에 대처하는 기술을 익히거나 심리적 회복 능력을 키우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빼앗아가는 것이라고 르바인은 주장합니다. 무엇보다도, 자녀 스스로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발견하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간다고 말합니다. 즉, 그들이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과정을 온전히 밟지 못하게 방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우리의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과잉 양육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얘야, 너는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만약 아이들에게 스스로 역경을 헤쳐나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이는 그들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칩니다. 역경을 스스로 극복하는 경험을 하지 못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패와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됩니다. 낮은 자신감과 실패에 대한 공포는 모두 우울증이나 불안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성인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에게 절대로 의견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대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내용에 있습니다. 만약에 자녀가 문제에 봉착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전화를 걸 경우, 우리는 그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야할까요? 아니면,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바탕으로 질문을 몇 가지 한 후에 “그래. 그래서 너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니?”라고 물어보는 것이 나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시야에서 벗어났을 때 어떤 상황에 직면할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때때로 어쩔 수 없이 개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서 당황하거나, 혼란스럽거나, 겁에 질리거나, 다쳤을 때, 부모가 도와주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가 도울 수 있을까요?
연구 결과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들을 도와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의 자녀들 본인입니다. 당신의 아이들이 문제를 겪고 있거나, 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좀처럼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최근 수많은 데이터들을 통해 얻은 결론이자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녀 스스로 본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입니다.
(S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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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리라 짐작됩니다만, 정확히 아무런 차이 없이 같은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입니다. 대학 신입생 300명이면 당연히 서방세계에서의 대학생을 의미하겠죠. 그들이 닥치는 과잉개입의 문제점은, 그것이 서양특유의 자유로움과 다르다는 겁니다.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유효한 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동양식 해결책은 '의존성'으로 밖에는 안보이겠죠. 하지만 성실함에서 아시아계가 보여주는 우수성을 보자면, 과잉보호에 대한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유념해야 겠습니다. 서양은 "자유와 헌신"에서 '자유'에 대한 적절한 보호가 필요하고, 동양은 반대로 '헌신'에 대한 적절한 보호가 필요하다, 정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