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주제의 글
  • 2019년 10월 14일. 만연한 폭력에 맞서는 아시아 각국의 여성들

    지난 달, 네팔에서는 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해왔습니다. 네팔의 국회의장인 크리슈나 바하두르 마하라가 자신의 집에서 술에 취한 채 자신을 폭행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신고 여성은 협박과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고소를 취하했습니다.  남아시아에서는 전형적인 사건의 전개였죠. 남성, 특히 권력을 가진 남성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UN과 현지 외국 대사관들은 네팔 정부에 여성 대상 폭력에 조취를 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며칠 후 사임한 마하라 의장은 더 보기

  • 2017년 11월 27일. 남성 리비도의 잔인함에 대하여 (1/2)

    성희롱 스캔들이 연쇄적으로 밝혀진 지난 몇 주간 남자들의 행동은 문자 그대로 믿기 힘들 정도입니다. 남자가 여성의 인권, 여성의 지위에 대해 논하는 내용과 실제로 그 남자가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보수주의자건 진보주의자건, 여성주의자건 극단적 애국주의자건, 계몽된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어린 사람건 나이 많은 사람이건, 폭스뉴스에 나오건 뉴리퍼블릭에 나오건, 남자가 여성 인권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바와 실제 그의 행동에는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빌 코스비(Bill Cosby), 로저 에일리스(Roger Ailes), 더 보기

  • 2017년 7월 12일. [칼럼]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인터넷 트롤들, 그 부조리에 대하여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 활동가인 린디 웨스트(Lindy West)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처음 “정치적인 올바름을 앞세워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검열론자”라는 비난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저는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예술가가 인종주의자라는 말을 듣기 싫으면 인종차별적인 작품을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 “강간은 끔찍한 일이니 코미디언이 강간을 농담의 소재로 다룰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라는 식의 악의 없는 비평을 했을 뿐인데도 저런 말들을 들었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미디어가 그려내는 여성상에 대해 비판하거나, 여자 주제에 감히 “비디오게임”에 대해 더 보기

  • 2017년 1월 19일. 낙태 반대와 페미니즘, 양립할 수 있을까?

    낙태할 권리를 반대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칭할 수 있을까요? 이번주 토요일 워싱턴에서 열릴 여성행진을 앞두고, 주최측이 "낙태 반대 페미니스트 단체"를 배제하면서 해묵은 논쟁이 재점화되었습니다. 더 보기

  • 2017년 1월 6일. 페미니즘 버블 붕괴, 그리고 제국의 역습

    젠더와 정치에 대해 쓰는 여느 저널리스트들처럼 저도 대선 직전 힐러리 클린턴 당선의 의미를 논하는 글을 의뢰받았습니다. 흔들림 없는 여론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근거 모를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지만, 저는 명백한 여성주의적 공약을 내세운 클린턴이 당선된 것의 의미, 그리고 클린턴의 승리에 힘을 보탠 여성표의 의미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11월 8일 이후, 다시 꺼내 읽기조차 고통스러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2016년이 가장 높은 유리천장이 부서진 해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던 저의 더 보기

  • 2016년 12월 16일. [칼럼]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라고 말하지 마세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신시내티에서 승리 유세를 시작하면서 남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당신들보다 낫습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로서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성을 우월하다고 추켜세우면서 남성들의 책임을 덜어주는 것은 여성에게나 우리 사회 전체에나 하나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 남성 전체에게 “구제 불능” 딱지를 붙여버리는 건 우리 모두에게 손해입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백인 여성 유권자의 53%는 유리 천장을 깨자는 클린턴의 호소를 뒤로하고 트럼프를 찍었습니다. 이런 여성들을 제가 직접 만나보기도 더 보기

  • 2016년 9월 6일. [칼럼] 역차별의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최근까지도 이제 세상에 불평등은 사라졌고 오히려 고통받는 성은 남성이라는 주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 주장은 남성권리 운동가나 골수 여성혐오자들의 구호에나 등장하는 극소수의 의견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글에 대한 일관적이고 꾸준한 피드백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이런 정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더 보기

  • 2016년 8월 24일. [칼럼] 페미니즘 연극영화 만들기, 벡델 테스트가 전부는 아닙니다

    그래픽노블 작가인 앨리슨 벡델이 1985년 고안해낸 벡델 테스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제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에서 이름이 있는 여성 캐릭터 두 사람이 남성 이외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죠. 영화 속 젠더 불평등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요즘은 연극에도 같은 잣대를 대보는 캠페인도 있더군요. 그러나 영화나 연극 속 페미니즘을 오로지 이 기준만으로 논하는 것은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벡델 본인도 의도했던 바가 아니죠. 놀랍도록 퇴행적인 여성상을 보여줬던 더 보기

  • 2016년 8월 16일. 정치판의 말싸움, 여성 정치인에게는 이중의 부담입니다

    여성 정치인들에게는 쉽게 딱지가 붙습니다. 쌈닭에서 국민엄마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프레임 속에 넣는 별명이 붙고, 헤어 스타일, 구두, 가방 모든 것이 분석당하죠. 모든 정치인들의 최대 무기인 말도 예외가 아닙니다. 유권자들에게 던지는 말에서부터 다른 정치인들과 주고받는 말에 이르기까지, 여성 정치인들의 말은 유난히 도마 위에 오릅니다. 목소리 톤에서부터 단어 선택, 이야기 주제, 대화 방식까지 모든 차원에서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기가 어렵습니다. 더 보기

  • 2016년 8월 9일. [칼럼] 여성혐오의 부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첫 걸음입니다

    여성혐오는 구시대의 악습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혐오는 분명히 부활했고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더 보기

  • 2016년 6월 22일. 21세기, 세계 각지 페미니즘의 새로운 운동 방식

    색색의 어깨띠, 강렬한 문구의 플래카드와 대규모 행진 -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지난 시대 페미니스트들의 운동 방식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는 활동가들이 기발하고 새로운 운동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더 보기

  • 2016년 6월 15일. [칼럼] 페미니스트들이 판사를 소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최근 캘리포니아에서는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은 스탠포드대 소속 수영선수에게 고작 6개월 형을 선고한 애론 퍼스키(Aaron Persky) 판사를 주민소환에 붙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주민소환 성패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과연 강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질지 여부입니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