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주제의 글
  • 2017년 11월 23일. 소련이 인터넷을 먼저 개발했다면?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기술만 놓고 보면 월드와이드웹(www)이 나타나기 전에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더 보기

  • 2015년 9월 17일. [칼럼] 서구의 가치들이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수 세기 동안 이어져온 서구 자본주의의 우월 의식과 영향력은 소련의 붕괴와 함께 정점에 달했습니다. 중국마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이제는 중국에도 중산층이 개인의 권리와 투명한 정의를 요구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서구의 가치, 특히 유대교-기독교적 가치들은 인류 보편의 가치가 될 수 있을까요? 더 보기

  • 2015년 8월 14일. “우리의 어머니 에셀 로젠버그는 무죄입니다”

    * 1953년 간첩행위로 유죄를 선고받고 사형당한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에셀 로젠버그의 두 아들 마이클 미로폴과 로버트 미로폴이 뉴욕타임스에 어머니의 무죄를 주장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어머니 에셀 로젠버그는 1953년 6월 19일 사형에 처했습니다. 간첩 행위를 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죄목이었지만, 많은 사람은 부모님이 미국의 숙적인 소련에 미국을 파괴할 수 있는 원자폭탄 관련 정보를 넘겼다고 알고 있습니다. 매카시즘 시대에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지난 2008년부터 우리 형제는 부모님의 사건을 다시 법정으로 더 보기

  • 2014년 7월 8일. (WSJ) 세계 1차대전의 유산 (3)

    옮긴이: 올해는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아직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세계 1차대전의 유산을 꼽아 정리했습니다. 무기나 전쟁사에 관련된 유산뿐 아니라 세계 질서와 경제 동향, 그리고 우리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들로 20세기 세계사를 관통하는 인물, 사건들이 망라돼 있습니다. 원문의 인포그래픽은 월스트리트저널이 매긴 중요한 순서에 따라 정리돼 있습니다. 오늘은 이 가운데 세계 강대국 질서의 재편을 설명하는 몇 가지 주요 사항들을 소개합니다. * 미국의 부상 전쟁이 더 보기

  • 2014년 5월 12일. 깃발로 보는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

    지역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우크라이나 동부를 방문한다면, 다양한 깃발들을 보고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기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의미를 가진 깃발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으니까요. 우선 오렌지색과 검정색 줄무늬 깃발은 반(反) 우크라이나 세력의 중요한 상징입니다. 깃발도 깃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리본의 형태로 상의에 달고 다니죠. 이 리본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소련의 여러 지역에서 구소련을 기억하는 상징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 색은 1769년 무공훈장인 성 게오르그 훈장의 색으로 자리잡아 1917년까지 사용되었고, 후에 스탈린이 더 보기

  • 2013년 12월 18일. 우크라이나는 항상 혁명 중?

    무심히 국제면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소식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우크라이나는 혁명이 끊이질 않는 나라입니다. 2004-5년 오렌지혁명으로 인해 부정선거가 밝혀지고 정권이 바뀐지 10년도 되지 않아, 수 십 만명의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고 하니까요. 오렌지혁명 전후로도 크고 작은 거리 시위가 종종 있었죠. 우선 외부, 특히 러시아의 시각에서 보면 우크라이나는 태생부터 문제를 떠 안고 있는 나라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분리독립된 것도 고작 20여 년 전의 일인데다, 자연스럽게 결집된 공동체라기보다는 민족적으로 다양한 구성원들을 인공적으로 한데 묶어놓은 모습에 더 보기

  • 2013년 12월 11일. 굿바이 레닌: 우크라이나 레닌 동상 철거의 의미는?

    -콜로라도대학교에서 게르만슬라브어문학/유대학을 가르치고 있는 사샤 샌데로비치(Sasha Senderovich)의 NYT 기고문입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 근처에 있었던 거대한 레닌 동상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난 일요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습니다.민족주의 성향의 스보보다(Svoboda)당은 철거를 주도한 세력을 자처하며, “소비에트 점령의 종말이자, 마지막 탈식민화의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레닌 동상은 우크라이나를 강제로 합병한 구 소련,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푸틴의 러시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구 더 보기

  • 2013년 9월 25일. 카프카스 지역의 남아선호사상

    카프카스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체첸,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등의 나라가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이 지역에서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악명 높은 여아 선별 낙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자연상태의 성비는 남아 105명 당 여아 100명입니다. 남아가 유아기의 질병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사춘기에 이르러서는 성비가 맞추어지죠. 하지만 이 비율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젠에서는 115대 100, 그루지아에서는 120대 100에 달합니다. 1991년을 기점으로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이 특이하고, 성비차가 더 큰 곳은 중국 정도입니다. 둘째, 더 보기

  • 2013년 8월 2일. 영국 여왕의 3차대전 전야 연설문 공개되다

    목요일 영국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문서 가운데는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을 연설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소련과 서방의 갈등이 고조되던 1983년에 핵 전쟁 상황을 가정하고 써둔 전면전 전야 여왕의 대국민 연설문입니다. 감정을 고조시키면서도 음울한 기운을 내뿜는 이 연설문은 영국 정부가 3차대전을 대비해 써둔 320쪽짜리 대응 시나리오의 일부로, 30년 전 영국에 드리웠던 핵 전쟁의 공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설문은 바로 직전의 성탄절 대국민 연설를 언급하며 시작됩니다.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던 그 때만 해도 전쟁의 공포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1939년 2차대전 당시 아버지인 조지6세의 연설을 라디오로 듣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토록 무거운 책무가 자신에게 주어질 날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회상합니다. 그리고 당시 헬리콥터 조종사였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가 이미 부대로 복귀했다며, 미지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라고 강조합니다. 당시 주 소련 영국 대사는 유리 안드로포프 총서기의 호전적인 수사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소련이 서독과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터키를 침략하고, 뒤이어 핵 공격과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한다는 시나리오를 세웠습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당시 영국 정부는 소련의 핵 공격으로 런던에서만 100만명, 전국적으로 33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파악했습니다. 83년 총선으로 선출될 신임 총리 보고용으로, 총리 관저에 설치된 핵 미사일 발사 장치에 대한 설명과 핵 전쟁 발발시 대응책도 담고 있습니다. 소련의 핵 공격이 임박하면 장관들을 영국 각지로 분산시켜 런던의 마비와 총리의 죽음에 대비하라는 내용입니다. 공격이 임박하면 수십 만 명이 피난길에 오르고, 폭력적인 반전 시위가 발생하며, 주류 매출은 급등하고, 병원의 의약품 창고는 약탈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세세한 예측도 담겨있습니다. 당시 영국 국방부는 NATO가 먼저 선제 핵 공격을 하지 않으면 소련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영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우리의 적은 소총을 둔 군인도, 도시와 마을을 공습할 전투기도 아닌, 치명적인 힘을 가진 악용된 기술입니다.” 연설문 속 핵무기에 대한 묘사입니다. 대책에 관해서는 “이 슬픈 세기에 우리의 자유를 두 번이나 지킬 수 있도록 해준 그 자질들이 이번에도 우리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연설문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새로운 악에 맞서 싸우려는 이 때에, 우리 조국과 세상 모든 곳의 선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신의 가호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Guardian) 원문보기

  • 2013년 4월 9일.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철권통치자의 말년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 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각각 소련이 무너진 뒤 20년 넘게 나라를 통치해 왔습니다. 중앙아시아의 라이벌 관계인 두 나라는 권력자의 철권통치 속에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두 대통령이 모두 70대로 노쇠해지면서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권력을 바꿔본 경험이 부족한 나라에서 어떻게 권력이 승계되고 이양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특히 나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면서 두 나라의 정국이 혼란에 빠질 경우 지역 정세가 덩달아 불안해질 수 있다는 더 보기

  • 2013년 1월 3일. 2013년의 오바마가 1989년의 고르바초프에게 묻고 싶은 것은?

    “값 비싸고 인기 없는 아프간전을 끝내기로 결심한 젊은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에 철군 후 장기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반군과는 화해를 도모한다. 그러나 대통령 주변의 고위 관리들은 철군을 미루는 동시에 아프간 군을 훈련시킬 병력을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4년을 목표로 아프간전 전면 철군을 준비 중인 오바마 대통령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1989년 고르바초프의 이야기 입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공산주의 정권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10년 만에 철군한 역사는 소련에 뼈아픈 기억일 뿐 아니라, 소련의 개입으로 더욱 더 보기

  • 2012년 10월 15일. 쿠바 미사일 위기 50주년

    현재까지 인류가 핵전쟁의 재앙에 가장 근접했던 ‘사건’이 꼭 50년 전에 일어난 쿠바 미사일 위기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되돌아봅니다. 1959년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이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뒤 미국은 좁은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어선 공산주의 국가를 없애기 위해 전전긍긍합니다. 쿠바는 쿠바대로 안보를 지키기 위해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들여오기 시작하고, 미국은 쿠바 섬을 해군, 공군을 총동원해 봉쇄하기에 이릅니다. 쿠바로 향하던 소련 함대와 쿠바 해협을 봉쇄하고 있는 미국 함대가 마주치면 순식간에 전면전으로 번질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