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주제의 글
  • 2018년 12월 16일. 2019년 언론 예측: 미디어가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2)

    1부 보기 잘못 2: 사실과 좋은 저널리즘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계속 믿는 정치 기자들. 독실함은 불편합니다. 감정적이고 개인의 자부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기자들은 오직 사실만이 공중에게 전해지면 사람들이 이슈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결국에는 좋은 시민으로 행동하게 된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극단적 파벌과 정치 심리학의 수많은 연구가 보여주듯이 현 시점에서 숙의하는 공중(deliberative public)의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더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트럼프에 대한 어떤 새로운 조사 결과도 투표 하나를 더 보기

  • 2018년 12월 15일. 2019년 언론 예측: 미디어가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1)

    * 하버드 니만 저널리즘 연구소는 매해 학자들이 예측한 언론의 미래를 소개합니다. 그 중 일리노이 대학교 교수 니키 어셔가 예측한 2019년 언론의 모습에 대한 글을 소개합니다. 뉴스 관찰자와 기자로서, 우리는 모든 곳에서 저널리즘의 신뢰 하락, 특히 국가의 정치 저널리즘에 대한 신뢰가 줄어드는 것에 많은 비난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뉴스 소비자의 좋은 저널리즘과 가짜를 구분해낼 수 있는 미디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당파적인 “에코 챔버(echo-chamber)”에 갇혀 있으며, 특정 온라인 플랫폼이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더 보기

  • 2018년 11월 19일.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 보도, 무엇이 달라졌을까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또 한 번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범인 포함 총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요가원과 유대교 예배당 총기난사에 이은 참사였습니다. 이들 사건을 다룬 언론 보도는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당일 사건 보도, 그 다음은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 그 다음으로 범인 프로파일링이 이어지죠.” 시라큐즈대학 에리카 굿 교수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주가 바뀌면 뉴스 사이클도 이미 다른 기사들로 넘어갑니다. 컬럼바인고교 사건 이래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 10건 당시 뉴욕타임스 웹사이트 대문을 분석한 더 보기

  • 2018년 7월 31일. [코인데스크 코리아] 공개 살인청부: 탈중앙화 예측시장 ‘어거’가 직면한 도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함께 예측하고 내기로 전환한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반 예측시장 어거(Augur)는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더리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앱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그야말로 뭐든지 다 내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를 가장 악랄하게 이용한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그것도 살해당할 가능성을 내기 주제로 삼은 것이죠. 여기서 “살해당하지 않는다”에 돈을 걸면 사실상 공개 살인청부나 다름없게 됩니다.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인 어거는 이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코인데스크 코리아에서 읽기 더 보기

  • 2018년 6월 4일. 저널리즘과 회피의 언어

    지난 5월 14일, 가자 지구 경계에 모여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군이 발포해 60여 명을 사살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뉴욕타임스는 트위터에 “팔레스타인인 수십 명이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 개관 계획에 항의하다 사망했다”는 트윗을 올렸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늙어서 죽었다는 말인가요?”와 같은 멘션이 줄을 이었고, “#사망했다(#Havedied)” 해시태그가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비난은 뉴욕타임스뿐 아니라 영어 문법으로 향했습니다. 좌파 성향의 저널리스트 글렌 그린월드는 트윗을 통해 “대부분의 서구 매체들은 수년간의 연습을 통해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을 수동태로 묘사해 가해자를 숨기는 일에 더 보기

  • 2017년 11월 8일. [칼럼] 소셜미디어상에서 기자들의 당파적 의견 표현, 나쁘기만 한 걸까요?

    * 최근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자사 기자들에게 당파적 견해를 표시하거나, 특정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는 게시물을 소셜미디어에 올리지 못하는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Columbia Journalism Review) 매튜 잉그램이 이를 비판적으로 진단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 미디어 회사와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는 언제나 긴장 관계에 있습니다. 발행인들은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고 콘텐츠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서 소셜미디어를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편집자들이나 기자들이 본인의 생각을 그곳에서 말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합니다. 더 보기

  • 2015년 1월 2일. 2014년, 과대평가된 기사와 과소평가된 기사

    <뉴 리퍼블릭>에서 지난 2014년 한 해동안 과대평가된 기사와 과소평가된 기사를 꼽았습니다. 더 보기

  • 2014년 10월 20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 취재의 맹점

    세계가 ISIL의 소식으로 넘쳐나고 있지만, 우리가 이 사태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더 보기

  • 2014년 7월 18일. 유독 그날 팔레스타인 아이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이유

    알 데이라 호텔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체류 중인 서양 기자가 늘 머무는 곳입니다. 특파원들이 이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맛 좋은 식사와 원활한 와이파이 등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무튼 지금 영업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호텔은 최근 (이스라엘의 공습과 물자 차단 때문에) 문을 닫았습니다. 이 호텔은 전망도 멋져서 테라스에 서면 넓은 백사장과 푸른 지중해를 보게됩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 오후, 기자들은 불행히도 전혀 다른 걸 봤습니다. 아이 넷이 해변에서 죽었습니다. 무함마드 바케르(9), 더 보기

  • 2014년 4월 21일. 퓰리처상과 기자의 자부심

    언론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퓰리쳐상 수상을 발표하는 날 보도국 분위기를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기자에게 퓰리처상이란 묘비명 첫 문장이 될만한 영예입니다. 그 흥분과 긴장이 굉장하죠.  기자란 보수가 낮은 직업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자신들이 종사하는 숭고한 일의 가치에 비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소명이라는 생각으로 버텨냅니다. 굉장한 자의식과 약간의 허영심까지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죠. 가족과 이웃이 내가 한 일에 감탄한다는 것이 보람입니다. 그 자부심을 드러내 논하지는 않지만 내 기사에 주어지는 관심과 칭찬, 더 보기

  • 2013년 7월 17일. 기자가 정치 성향을 밝히지 말아야 하는 이유

    -어제 소개한 ‘기자가 지지 정당을 밝혀야 하는 이유’를 시티대학교 언론학 교수이자 데일리미러지의 전 편집인인 로이 그린슬레이드(Roy Greenslade)가 반박한 글입니다. 기자들이 보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혀야 한다는 로웬스타인의 주장은 여러모로 유혹적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주관적이라거나, 기자들이 아무리 공정성을 유지하려 노력해도 각자의 색깔로 기사를 칠하게 된다는 주장은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로웬스타인도 잘 알고 있듯이, 이른바 주류 언론사에 적을 두고 있는 기자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사주나 편집자의 존재 때문입니다. 영국의 경우, 대부분의 신문들이 당파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논설위원이나 칼럼니스트가 어느 당에 표를 던졌는지는 그다지 비밀스런 정보가 아닙니다. 데일리메일(Daily Mail)의 스티븐 글로버(Stephen Glover)가 보수당에 투표했다고 선언하거나, 데일리미러(Daily Mirror)의 케빈 맥과이어(Kevin Maguire)가 노동당 지지자임을 고백한다고 새삼 놀랄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칼럼이 아닌 기사는 겉으로 일단 객관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사가 지면에 실리기까지의 과정에는 수 많은 필터가 존재하며,  상당한 이념적 통제가 가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색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로웬스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여기에는 각종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따릅니다. 정치색를 밝힌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밝혀야 할까요? 지난번에 누구를 뽑았는지 밝혀야 하나요? 아니면 다음번에 누구를 뽑을지? 투표를 하지 않고 기권했다면? 어떤 분류법에 따라 자신의 정치색을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요? 로웬스타인은 기자들이 일반적인 정치 성향 선언 외에도 특정 사안에 글을 쓸 때 이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밝혀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집니다. 로웬스타인이 언급했던 팔레스타인 문제의 경우 1000단어짜리 에세이로 써도 모자란 판에, 어떻게 매번 기사 끝에 짧은 한 줄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가 있겠습니까? 방송기자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겠죠. 저도 로웬스타인이 이야기하는 투명성을 전격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해결책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결과물입니다. 독자들이 기사의 질보다 기자의 정치 성향으로 기사를 읽지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인간은 모두가 주관적이라는 로웬스타인의 주장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기계적인 그의 해결책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Guardian) 원문보기

  • 2013년 7월 16일. 기자가 지지 정당을 밝혀야 하는 이유

    -호주의 독립 저널리스트 앤토니 로웬스타인(Antony Loewenstein)이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를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보도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권력을 비판하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기사를 쓴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 경제적 이해 관계는 우리가 보고 듣는 것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문제들이 주기적으로 일어나죠. 금융위기 당시 은행과 너무 가까이 지내던 경제부 기자들이 거짓된 보도를 한 일이나, 2003년 부시 행정부가 근거 없는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를 가지고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을 때 기자들이 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던 일처럼 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기자들이 자신의 표를 어디에 던지는지, 정치적 성향은 어떠한지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인의 33%만이 언론을 믿는다고 할 만큼 기자들이 독자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는 언론이 조금이나마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기자들은 다른 직업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정작 대중은 기자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기자도 인간이니, 자신의 경험과 시각을 통해 세상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자가 스스로 정치색을 밝히지 않더라도, 이른바 “특종”이라는 것이 실은 친한 기자에게만 계획적으로 “흘리는” 소식임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호주 독립언론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2009년 5일의 기간 동안 주류 언론에서 나온 기사의 절반 이상이 독립적인 취재의 결과물라기보다는 보도 자료를 살짝 바꿔쓴 기사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보도 자료에 근거한 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누군가가 쓴 보도 자료를 가져다 쓴다는 데서 이미 언론의 객관성은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기자가 어떤 틀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는 중요한 정보이고, 독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기자 각자가 나름대로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아무런 아젠다 없이 기사를 쓰는 텅빈 껍데기인 척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기자들이 권력과 가까이에서 밥과 술을 함께 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엄중함이나 회의주의 같은 미덕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자는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마할 책임감이나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마크 래텀(Mark Latham) 전 노동당 대표의 말을 반박하기가 힘든 현실입니다. 동등하지 않은 양 쪽 사이에서 거짓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권력과의 결탁에 가까운 행위죠. 우리는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