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본위제 지지자’ 주디 셸튼의 연준 위원 임명을 둘러싼 우려
2019년 7월 10일  |  By:   |  경제, 칼럼  |  No Comment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나라는 금본위제(gold standard)를 폐기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금본위제가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 일부 학자들과 지지자들은 미국이 당면한 통화정책의 난제를 풀려면 금본위제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해 왔죠.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미국의 중앙은행) 위원으로 임명하려는 주디 셸튼(Judy Shelton)도 금본위제를 강력히 지지해온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금본위제는 말 그대로 법정통화를 정해진 양의 금에 연동해 통화정책을 펴는 제도입니다. 대부분 경제학자는 금본위제가 현실에 맞지 않으며, 위험하기까지 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라고 연준 위원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주류 경제학의 주장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닙니다. 경제학도 언제나 반증될 수 있는 과학이고, 다른 생각과 대안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펴는 중앙은행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앙은행보다 건강한 중앙은행일 겁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도 한때 금본위제를 지지했었습니다. 그린스펀 의장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으며 연준 의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셸튼의 문제는 그가 금본위제를 지지한다는 사실보다도 (그린스펀 의장과 달리) 일어나지 않은 일을 근거로 주장을 펴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셸튼은 (금본위제를 따르지 않는) 현재 중앙은행 시스템이 인플레이션을 낳는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또한, 금본위제를 채택하면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둘 다 틀린 말입니다. 정권이 바뀌자 같은 정책에 대해 정반대 조언을 건넨 건 어떤 의미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연방준비제도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펴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곳입니다. 정치적 입김에 흔들리는 모습은 연준 위원으로 가장 심각한 결격 사유라고 할 만합니다.

금본위제가 무엇인지부터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본위제도 시대에 따라 모습과 특징을 달리하며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금본위제를 한 가지 제도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 한 나라의 왕이나 초기 국민국가가 희귀한 금속이던 금이나 은을 이용해 금화, 은화를 주조하던 것을 금본위제의 시초로 볼 수 있습니다. 연준이 생기기 전에 미국 민간은행들은 금이나 은으로 교환할 수 있는 증서를 통화 대신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연준도 초기에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을 발행했습니다.

1933년에 금본위제를 폐기했던 미국은 1944년 브렌튼우즈 협정(Bretton Woods Agreement)에 따라 수정된 형태의 금본위제로 회귀합니다. 브렌튼우즈 체제는 1971년까지 지속됐는데, 법정통화를 직접 금에 연동하는 대신 달러화를 금에 연동한 뒤 다른 통화를 달러화에 연동한 체제였습니다. 달러를 금으로, 또는 금을 달러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중앙은행에만 있었습니다.

통화의 공급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금본위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힙니다. 금본위제하에서는 금의 총량만큼만 통화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돈을 더 찍어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높은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나라가 금본위제를 채택한다면, 혹은 금본위제를 채택한 나라들만 서로 무역을 한다면 체제 안에서는 환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금본위제 지지자들은 정부가 손쉽게 돈을 더 찍어내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을 올리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며, 이를 막아줄 궁극적인 장치가 금본위제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셸튼은 2011년에 같은 주장을 이렇게 폈습니다.

금본위제는 정부의 고삐 풀린 지출을 막아주는 견제 장치다.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내)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해 개인의 자산을 지켜주기도 한다. 금본위제 없이는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금본위제 지지자들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연준이 정부의 방만한 정책으로 떠안은 부채를 갚고자 너무 쉽게 돈을 찍어낸다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셸튼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금본위제 지지자들은 또한, 정치 권력이나 선출되지 않은 소수의 연준 관료들이 이자율을 정하는 것은 자유시장의 원리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비판해왔습니다. 셸튼은 올해 파이낸셜타임스에 현재 연준의 통화정책을 소련의 계획경제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고작 열 명 남짓한 사람이 1년에 여덟 번 모여 진행한 회의 결과 자본의 가격(이자)을 정하는 것과 시장의 수요, 공급을 유기적으로 반영하는 금본위제 통화정책 가운데 어느 것이 나은가? 정답은 무척 상식적으로 나온다. 현행 통화정책을 보면 소련의 국가계획위원회(Gosplan)가 미국 중앙은행에서 부활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금본위제하에서는 정책 결정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환상에 불과합니다. 금본위제에서도 정확히 어떤 기준의 금 얼마를 통화 얼마에 연동할지, 통화별로 금괴의 보유고는 얼마로 정할지(금 지급준비율) 등을 누군가 정해야 합니다.

과거에 금본위제를 채택했을 때도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인플레이션, 실업률, 경제성장률 등의 지표를 고려해 이자율을 정한다면 그때는 여기에 금 보유고의 상황을 같이 고려했습니다. 금이 다른 나라로 유출되거나 사람들이 통화를 금으로 바꿔 보유해 금 보유고가 비어가면 이자율을 높여 다른 나라와 개인의 가정에 쌓인 금을 흡수했고, 반대로 보유고에 금이 너무 많으면 이자율을 낮춰 금을 다른 나라나 시중에 푸는 식이었습니다.

금본위제의 취약점은 이미 과거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정치인이나 선출되지 않은 중앙은행 관료들이 이자율 조정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금 보유고를 바꿔 인위적으로 통화 가치를 조정하거나 금 태환을 중단해 국내 경제가 심각한 혼란에 빠지고 타격을 입었습니다. 1933년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71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폐기한 것도 결국엔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셸튼은 연준이 오바마 정부의 부채를 갚아주려고 돈을 찍어낸다는 비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기업의 수출을 돕기 위해 은행에 저축해둔 개인의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린다는 전형적인 비판이었죠. 셸튼은 이를 가리켜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기만”이라고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 금값은 2012년 온스당 1,700달러에서 2016년 온스당 1,200달러로 떨어졌는데, 셸튼은 이를 두고 느슨한 통화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대부분 금본위제 지지자들은 금값이 내리면 느슨하기보다는 너무 빡빡한 통화정책을 탓할 텐데 말이죠.

그런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셸튼은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정치 권력에 아부하는 데 정신이 팔렸다”며 연준을 비판하던 셸튼이 지금은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필요한 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연준이 이자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중은행이 연준에 맡겨둔 지급준비금에 대해 연준은 이자를 지급하는데, 셸튼은 이렇게 이자를 지급하면 차익거래가 발생해 개인이 은행 예금이나 단기투자신탁에 맡겨둔 돈의 수익이 사실상 0이 된다며 연준이 이자 지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셸튼은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달러를 약하게 유지하려 했다고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적어도 공개적으로 연준이 약한 달러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연준의 통화정책에 관해 의견을 얘기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불문율을 깡그리 무시하고 연준에 이래라저래라 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셸튼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에 극렬히 반대해야 하지만, 셸튼은 과거에 자기가 한 말을 내팽개쳤습니다. 대신 셸튼은 느슨한 통화정책을 펴며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반칙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셸튼의 생각, 트럼프의 주장은 모두 근거가 빈약하다 못해 하나도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던 시점과 비교해보면 달러는 유로나 엔보다 싸졌고, 중국 위안화에 비하면 가격이 거의 비슷합니다. 금의 가격은 오히려 온스당 1,200달러에서 1,400달러로 올랐습니다. 금본위제 지지자들은 느슨한 통화정책을 탓할 상황인 거죠.

주류의 통념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 신선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비단 연준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건전한 토론이 일어나고 조직이 발전하겠죠. 그러나 그런 대안이 제 역할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고 정치적인 편견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셸튼이 지금까지 한 말과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린 태도를 보면 셸튼은 연준의 통화정책에 건전한 자극을 줄 만한 역량이 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 Grep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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